[2016창생공간] 기다림을 통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생활적정랩 빼꼼> - 1

발효하는 시간으로 사유하는 인문학적 가치들

‘커뮤니티스튜디오104’는 2015년 7월 서수원 문화자원 연구프로젝트 ‹웨스턴 스토리›를 계기로 모여 본 단체의 거점공간을 서둔동 104에 두고 있다.


연구프로젝트로서의 공간의 용도는 종료되었지만 열악한 문화 여건상 동네문화공간의 필요성이 내부적으로 제기되었다. 무엇보다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문화기획자, 예술가들은 목표 지향적이지 않은 교류와 소통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리고 그 공간을 작업자들을 매개하는 플랫폼 공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들은 동네 연구, 문화적 사건 만들기, 비슷한 관심 가진 주민, 예술가, 기획자 초대하기를 주요 관심활동으로 하고 있다. 우연히 자리 잡게 되었던 서둔동과의 인연을 이어가며 '생활적정랩 빼꼼'이 탄생했다.


공간으로서의 <생활적정랩 빼꼼>을 '창생공간'이라고 부른다. 창생공간은 만들기를 실천하는 시민과 작업자를 위한 열린 제작공간이다. 생산과 연구, 기록, 네트워크, 자립에 대해서 고민하는 물리적 공간이자 인적 네트워크망을 의미한다. 발효, 재활용, 천체관측, 재봉 등 생활 기술을 매개로 지역 문화를 만들어간다.


경기문화재단은 삶터를 중심으로 주민들의 자발적인 동기를 이끌어내고 지역문화와 연결할 수 있는 '공간'개념의 확장을 고민해왔다. 경기문화재단은 '창생공간'으로서 활력을 잃은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의 가치와 문화를 새롭게 창출하고자 한다. 지역공동체 기반의 제작공간을 통해 자립, 자생이 가능한 생산적인 제작 문화 확산 및 자립 기반 구축을 도울 것이다. 지역 삶터 안으로 파고든 창생공간은 개인과 공동체 활동의 문화적 근간으로 자리할 '제작 문화'가 새로운 문화적 동력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다.




'생활적정랩 빼꼼'은 거창하지 않은, 본래 누구나 살며 익혀 왔을 일들을 통해 좀 더 살가운 삶의 언어로서 예술을 대한다. 편리함과 이성적 합리성을 추구해 왔던 이면에 잃어버리고 소외시켰던 시간과 노동의 감각, 감수성을 읽어내는 인문적 태도를 지향한다. 이와 관련된 다양한 작업들이 이 동네와 이곳에서 살고 일하거나 경유하는 이들에게 공유되고 기억될 수 있는 기록도 ‘빼꼼’의 중요한 활동이다.


빼꼼은 상점에서 유통이 지난 잉여물을 발효하는 커뮤니티 키친을 운영한다. 이름에는 발효가 되어간다는 뜻의 ‘become’과 주민들 누구나 ‘빼꼼’ 고개를 내밀고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뜻을 담았다. 발효제조기술을 지닌 지역 장인을 발굴하거나 작은 가게와 연계하여 발효 가공을 한다. 누룩, 발효종, 술, 식품, 발효 조미료 등을 연구하고 제작한다. 하지만 발효의 전문성을 지향하기보다는, 발효의 기다림과 정성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인문학 분야를 나누는 것으로 공간 정체성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빼꼼>은 ‘어느 날 가게’라는 이름의 마켓을 여는 행사로 창작자와 주민들을 한데 불러모아준다. <빼꼼>은 크게 세 가지의 공간기능을 한다. 발효키친이자 지역 리서치, 아카이빙의 장소이며 종종 잡화점 ‘어느 날 가게‘를 주도한다.




2015년 서수원문화자원 조사연구 프로젝트에 이어진 수원문화재단과의 협업 사업의 일부이기도 했던 팝업 마켓 ‘어느 날 가게’는 개인의 자작물을 공유하는 문화 활동이다.


5월부터 11월까지 한 달에 한 번 열렸던 어느 날 가게는 창생 사업에서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실질적으로 공간의 쓰임을 다각도로 점검하고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등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감각지다. ‘주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과 이에 필요한 도구는 최대한 세세하고 섬세하게 챙겨야 하는 탓에 공간이 크든 작든 실제로 여러 사람들이 동선을 얼기설기 해가면서 음식을 만들고 먹고 치우는 일련의 과정이 유기적으로 이뤄지기 위한 조건들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문화적 행위가 벌어지는 장소의 하나로서 공간 밖의 사람들, 공간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문화공간이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주는 일이다. 추후 팝업마켓의 방식이나 워크숍 등 여러 형식의 제조활동이 사람들과 밀도 있게 공유되고, 그들의 연대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어느 날 가게' 커뮤니티스튜디오104의 임대료 자급자족을 문화적으로 풀어보려는 하나의 시도였다. 각자의 자작물을 소개하고 판매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가진 손기술을 응원해준다. 우리의 자작물에는 ‘덜 소비하기’의 궁리가 들어있다. 예를 들면 팔리지 못한 사과를 잼으로 가공하여 내놓는 식이다. 만드는 일과 공유, 그리고 잉여를 관찰하고 엮어보려 한다.


평소에는 작업 공간이지만 한 달에 한 번, 하루 정도는 이 관심을 공유하고 나누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다. 대단치 않더라도 품을 들이고 시간을 내어놓은 마음을 생각하며 서로의 작업물을 꺼내어 들춰 본다. 음악을 연주하는 이, 매듭을 만드는 이, 뜨개·바느질을 하는 이, 만들어 놓은 된장을 내어 놓는 이, 모인 이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이와 사진으로 담아내는 이, 그저 함께하고자 멀리서 시간 내어 준 이들이 만들어내는 우연한 저녁 파티까지. 해가 뉘엿뉘엿 질 즈음이면 모두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정리를 한다.


‘어느 날 가게’는 <빼꼼> 안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날씨의 부침이 많지만 되도록 앞집, 옆집, 골목, 길 등 공간의 관계성을 고려해왔다. 대체로 예술가들의 퍼포먼스가 병행되어 그저 마켓이 아니라 문화적 활동, 문화적 사건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동네 주민들은 그런 점을 매우 낯설어 했다. 일상적인 장사가 아닌 다른 것이 동네에서 벌어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가게의 마켓 기능은 오히려 그런 낯설음을 상쇄시켜준다. ‘물건 판매’라는 기능이 있어서 예술을 낯설게 느끼는 이들도 마켓에 호기심을 가지고 둘러볼 수 있다. 낯선 와중에도 마켓만은 보편적인 경험 안에서 이해되고 해석 가능한 양식인 셈이다. 불편함을 감수해준 분들, 당신들의 장소,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마음을 주민들과 나눈 일들은 어느 날 가게의 큰 수확이다.


한마음가정의원은 주차장, 한영종합설비공사와 컴퓨터 카페는 전기를 제공해주었다. 이마트약국은 가게 앞을 내주었고, 전부 언급할 수 없이 많은 주민들이 각자의 재능으로 참여해주었다. 요리와 일손, 홍보, 디자인과 진행, 퍼포먼스, 음악, 인형, 밑반찬 등이 어느 날 가게를 채웠다.


‘어느 날 가게’는 공간의 임대료와 수도, 전기세 60만 원을 우리 식으로 마련해보자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목표를 달성하려면 좀 더 분발해야 한다. 그러나 한 달에 한번 삶의 가치를 고민하는 벗들이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시간이길 바라는 마음은 수치화된 목표 이상의 의미이다. 그 자양분은 어느 날 가게의 내용과 공간을 채우는 요소이기도 하다. 개별적인 작업자들의 연대가 느슨함을 미덕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의 중요성도 ‘어느 날 가게’의 몫이기도 하다.




자작문화를 중심으로 '빼꼼'을 시작하는 것에는 리서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리서치는 청년 작업자 4명이 주축이 되어 진행하였다. 향후 공간의 중심으로 가져가게 될 ‘발효’와 관련하여 각자가 추출한 세부적인 리서치의 기획이 개별적으로 이뤄졌다. 방식도 나름의 계획에 의해 구성되었다.


이들의 관심은 동네 사람들을 통해 각자의 삶에서 발견하거나 떠올릴 수 있는 발효의 요소였다. 가벼운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여 사람들과 접촉하고 그 가운데 인터뷰 등으로 내용을 심화할 수 있는 대상을 추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빼꼼'의 공간과 사람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익숙해져가는 과정이 목격되었다.


우리는 동네 사람들이 지난 발효 자원을 찾아보았다. 서둔경로당 할머니들과 조우하였고, 아주머니들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보았다. 경로당에서는 전통장 등의 문화를 경험하였거나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을지 모르는 노인분들과 만나는 것이 목적이었다. 팔찌 워크숍, 매니큐어 바르기 등의 매개활동을 하며 정서적 친밀감을 형성하였다. 그 과정에서 '발효'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나눠 주실 수 있는 분들을 개별 접촉하며 추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자작문화는 뭔가를 만든다는 결과와 과정뿐만이 아닌 삶의 태도에서 나온다. 각자의 생애에서 시간과 노동을 들여 삶의 질을 조절하며 살아왔는지, 또는 그런 부분에 관심이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리서치에 참여한 작업자 4명은 각자 관심 있는 세부 주제로 리서치의 목표를 정하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계획에 들어갔다.


다양한 연령, 층위의 주민들을 만나는 것은 리서치의 중요한 내용이었다. 인터렉티브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버스정류장 등 사람들이 다닐 만한 곳들에 홍보물을 붙이는 등 다각적인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화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찾아가서 만날 수 있는 곳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시니어층이었다. 그 외의 연령층을 만나고자 한다면 꾸준한 시도가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렸다. 우리가 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자작문화는 할머니들의 것이었다. 아래는 리서치를 담당한 작업자들의 기록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차월금 할머니 이야기의 8할은 남편에 관한 것이다. 할머니께서 만들어 드리는 간식을 좋아하신다며 금슬 자랑이 끊이질 않았다. 평소에도 남편을 위해 빵이나 쿠키를 집에서 자주 굽는다고 하셨다. 남편이 간식을 먹으며 해주는 칭찬을 듣는 것은 할머니의 큰 낙처럼 보였다.”


“파는 거, 사 입지도 못 하잖어. 나는 내 몸에 맞고 내 맘에 들면 암만 비싸도 사거든. 근디 이렇게 이쁘게 내 몸에 맞게 파는 게 없지. 그러니까 못 사입지...... 다 내 몸에 맞춰서 다 내 입자고 뜬거지.”


노인세대의 자작문화는 그들의 생애사와 함께 심화하여 기록해볼 가치가 있다. 노인세대의 생활문화에서 자작문화는 고단한 노동의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후에 이 주제는 <빼꼼> 청년 작업자들의 스터디 주제가 된다. 또한 리서치를 통해 서둔동의 생활문화에서 과거와 함께 현재를 이해하고 기억해야할 것, 새롭게 만들어 갈 이슈나 과제들에 대해 사유해보게 되었다.




빼꼼의 활동에는 가능하면 다양한 청년 활동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다사리문화기획학교의 학생들, 예술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학생 등 지역문화, 커뮤니티, 리서치, 발효 등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리서치나 공간의 조성, 전시, 워크숍 등에 함께 하였다.


2016년의 경우, 5명의 청년들이 함께 동네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발효문화를 아카이빙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문화기획에 직업적 전망을 두고 있는 청년들이 지역, 동네, 커뮤니티와 같은 화두를 가지고 실행해볼 수 있는 과제를 부여하면서 교류하고 서로가 성장하거나 도움이 되는 활동을 지속하고자 했다. 문화 거점의 성격을 가짐으로써 청년 작업자들이 공부하고 실제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적 기반의 역할도 가져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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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상상캠퍼스

    자기소개/ 옛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부지에 위치한 경기상상캠퍼스는 2016년 6월 생활문화와 청년문화가 함께 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울창한 숲과 산책로, 다양한 문화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경기상상캠퍼스는 미래를 실험하고 상상하는 모두의 캠퍼스라는 미션과 함께 새로운 문화휴식 공간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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