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도미술관

한-독 현대미술교류전 [아이러니 & 아이디얼리즘]

2017-09-28 ~ 2017-12-03 / 참여작가 안지산 작업 연구



<반지하>_ 얼굴 실종 사건, 그 후.


이정화 (영화 시나리오 작가)



안지산 작가의 <반지하>는 반지하 벽에 낙서하는 아이를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 아이는 자루 위에 서서 팔을 뻗어 벽에 뭔가를 그리고 (혹은 쓰고) 있다. 하필 어른도 아니고 아이라니, 아슬아슬한 모습에 조마조마한 마음이 든다. 낙서를 완성하기 직전, 아이가 바닥에 떨어지고 말거라는 확신이 든다. 성공을 목전에 두고 아깝게 실패하고 마는, 진부한 서사에 길들여진 탓이다. 흔해빠진 비관론이라고? 진부한 서사의 다른 말은, 반복된 현실이 아니던가? 불안한 마음을 부여잡고 그림 속 아이를 향해 다가간다. 그런데, 아이가 얼굴이 없다.


얼굴 없는 신체는 낯설지 않다. 적어도 예술에서는 말이다. 침략자에 의해 머리가 잘려나간 그리스 로마 시대 조각부터, 마그리트의 천으로 감싼 얼굴과, 베이컨의 뭉개진 얼굴까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얼굴은 지워지고 감춰진다. 얼굴이 이토록 중요한 것은, 개별자들에게 ‘독자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천 명의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는 천 개의 다른 얼굴이 있다. 또한 얼굴은 감정을 표현하는 ‘표정의 생산지’다. 말투와 몸짓으로도 감정을 전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모호하고 계산적이다. 반면에 표정은 명확하고 본능적이다. 영화에서 인물의 감정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경우,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런데 <반지하> 속 아이는 얼굴이 없다. 비단 이 작업만이 아니다. 작가의 다른 작업에서도 얼굴 없는 신체는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잔잔한 물결에서의 삶> 속 바스 얀 아델은 손으로 감싸고 있어 얼굴을 볼 수 없고, <낮잠 2> 속 인물들은 천과 에어캡을 뒤집어쓴 채 누워있어, 얼굴은커녕 사람인지 조차 확인할 길이 없으며, <손 씻기 연구>, <손 담그기>, <발끝으로 서다>, <무제> 속 인물들은 얼굴이 아예 프레임 밖에 있다.




이쯤 되니 작가가 의도적으로 얼굴을 지우고 감춘 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작가에게 그것에 대한 이유를 듣고 말았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글 쓰는 입장에서는 말이다. 서사에 빗대어 말하자면, <반지하> 속 아이의 ‘얼굴 실종 사건’은, 범인은 물론 범행동기까지 밝혀진, 맥 빠진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마지막에 사건의 전말이 폭풍처럼 밝혀지는, 익숙한 서사의 길을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이 글은 낯선 서사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작가가 왜 얼굴을 그리지 않았느냐’가 아닌, ‘얼굴을 그리지 않은 작가의 선택이 그림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반지하>를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가정하면, 반드시 찍을 컷은 낙서를 하는 아이의 풀샷과 아이의 얼굴 클로즈업 샷이다. 관객은 풀샷을 통해 인물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클로즈업 샷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전달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감정과 상황이 별개가 아니라,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인물이 놓인 상황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의 감정을 짐작하게 하고, 인물의 감정은 인물이 놓인 상황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긴다. 눈앞의 장면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감정과 상황, 모두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한 이해’는 마침내 우리를 ‘공감’이라는 최종목적지로 데려다 준다. 이것은 도미노와 같다. 인물의 감정과 상황에서 시작해서 공감으로 끝나는. 따라서 얼굴의 부재로 <반지하> 속 아이의 감정과 상황을 모르는 우리는, 결과적으로 아이에게 공감할 수 없다.


공감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 그러나 이것은 난해한 예술작품 앞에서 느끼는 예술애호가의 답답함과는 명백히 다르다.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예술작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어 한다. 반면, <반지하> 앞에서 느끼는 답답함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답답함이다. 완성된 그림으로서 <반지하>를 이해하고픈 마음이, ‘소수의 선택적 욕망’이라면, 하나의 장면으로서 <반지하>를 이해하고픈 마음은, ‘다수의 보편적 욕망’이다. 나는 다수에 속한다. 따라서 다수의 보편적 욕망의 실현이 우선이며, 이를 위해 우리는 <반지하> 속 얼굴 없는 아이에 대해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타인을 상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이 돼보는 것이다. 이것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이가 많은, 흡혈귀가 한 말이니 믿어도 좋을 것이다. 영화 <렛미인>에서 흡혈귀 이엘리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평범한 소년 오스카에게 말한다. “잠깐이라도 내가 돼봐.” 오스카는 눈을 감고 이엘리가 되어 본다. 여기서 이엘리가 되는 것은, 이엘리의 입장에서 이엘리의 시간을 살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타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서사를 만드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행위다. 나는 <반지하> 속, 얼굴 없는 아이가 돼보기 위해,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음과 같다.


# 반지하. 낮.

황급히 뛰어 들어온 사윤(여, 9세)은 겁에 질린 커다란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더니, 벽 한 쪽에 놓인 자루를 향해 달려간다. 자루는 공사판에서 쓰는 모래로 가득 차 있다. 사윤은 자루를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사윤의 콧등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뺨은 상기돼 있으며, 짧은 머리는 헝클어져 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자루에 오른 사윤은, 주머니에서 몽당연필을 꺼내, 벽에 남자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다. 어린아이의 서툰 솜씨지만, 남자의 특징이 모두 들어간 제법 괜찮은 몽타주가 완성된다. 사윤은 남자의 얼굴 아래, ‘이 남자가 범인이다.’ 라고 적어놓는다. 그런데 그 순간,


(E)

저벅-저벅- 저벅-저벅- (계단을 내려오는 구둣발 소리)


사윤은 놀라 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그 순간, 몸이 휘청하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사윤이라는 이름마저 가진 아이의 얼굴은,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이제 얼굴이 완성됐으니, 공감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런데 완성된 아이의 얼굴을 보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얼굴이 완성되는 순간, 아이의 나이, 성별, 생김새, 성격까지, 모든 것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얼굴을 그리는 행위는 ‘너는 누구다’라고 단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대부분의 단언이 폭력적이며 긍정이건 부정이건 간에 진실에서 멀다는 것이다. 짧은 머리모양은 사윤을 사내아이 같은 아이로 규정 지을 것이며, 겁에 질린 사윤의 눈동자는 ‘사윤은 겁이 많다.’라는 문장으로 쉽게 치환될 것이다.


얼굴을 그리려는 지난한 노력 끝에, 역설적으로 얼굴의 부재가 <반지하>에 내린 수혜를 발견한다. 얼굴이 없기에, 아이는 단언을 피할 수 있으며, 아이가 처한 상황 또한 다양한 가능성 아래 놓인다. 물론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순간, 아이의 얼굴은 또다시 완성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로부터 강제된 것이 아닌, 각자가 만든 것이기에 언제든지 수정이 가능하다. 최소한 영구불변은 아닌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반지하> 앞에 선다. 여전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답답하지는 않다. 아이는 여자일수도, 남자일수도 있으며, 화가 났을 수도, 겁이 났을 수도, 즐거울 수도 있다. 또한 이것은 과거, 현재, 혹은 미래의 한 장면일 수도 있다. 이 무한한 선택의 기회 아래, 어떤 이야기들이 만들어질지 가능성의 범위가 너무 넓어 상상할 수조차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천 명의 사람이 <반지하>를 본다면, 거기에는 천 개의 이야기가 생성될 거라는 것이다. 그것은 천 명의 이야기꾼들 모두가, 다른 얼굴을 지닌 까닭이다.





세부정보

  • 경기도미술관 한-독 현대미술교류전/ <아이러니 & 아이디얼리즘>

    기간/ 2017.09.28.~12.03.

    장소/ 경기도미술관

    주최/ 경기도미술관, 한국국제교류재단, 쿤스트할레뮌스터

    후원/ 경기문화재단

    협력/ 주한독일문화원, 주독한국문화원

@참여자

글쓴이
경기도미술관
자기소개
경기도미술관은 경기도가 지원하고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도립미술관으로서,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한 현대미술작품의 수집, 동시대적이고 창의적인 기획전, 그리고 관람객과 경기도민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는 미술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