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 사는 예술가] 문자와 형상의 날개

파주_안상수 작가의 작업실





안상수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시각디자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1991~2012), 제2대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2012). 한국의 대표 글꼴인 ‘안상수체’를 개발했으며(1985년), 다수의 서적, 포스터 등의 편집 디자인과 전시를 통해 한글을 기반으로 한 독보적인 디자인 실험을 선보였다. 2013년에는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를 설립하여, 교장으로서 대한민국 디자인 교육을 이끌고 있다. 2007년에 독일 라이프치히 구텐베르크상을 받았으며, 현재 국제그래픽연맹(AGI) 회원이다.








안상수 작가의 개인 작업실인 '날개집' 전경.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전경.

이곳은 안상수 작가의 '이상집'이기도 하다.


파주출판도시, 은석교사거리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띄는 하얀 건물. 담쟁이가 건물 전체를 디디고 푸릇하게 자라고 있다. 그 건물 한 동에 교장인 날개의 집무실인 ‘날개집’이 자리하고 있다. 맞은편 건물 2층에는 파티가 세운 첫 번째 독립 협동조합 밥집인 ‘천천히’가 있다. 여기서 15분여 하천을 끼고 출판사 건물이 일렬로 보이는 산책로를 걸으면 지난해 새로 지은 파티의 새 건물인 ‘이상집’이 보인다. 입구부터 한글 자모를 새긴 도자기 타일이 눈에 띄고, 안상수 작가가 직접 쓴 현판인 ‘이상집’과 학교명으로 구상한 문자도가 기둥에 붙어 있다. ‘생생하게 당당하게 이상 상상 상상 이상’…… 기둥마다 멋지게 새겨진 글귀와 문양들, 스승과 배우미들의 이름을 하나씩 새겨 가마에 구워 만든 명패 등 한눈에 봐도 여기가 디자인 학교임을 그 색채와 문자로 뿜어낸다. 이 건물은 1층부터 가운데 기둥을 사이에 두고 뱅글뱅글 돌면서 모든 층을 오르내릴 수 있는 특이한 구조다. 배우미들이 수업을 받는 층을 지나갈 때마다 감각을 자극하는 오색의 풍경을 접할 수 있어 흥미로우며, 공연장으로 변신하기도 하는 지하 공간에는 전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이 방문 기념으로 벽 곳곳에 그래피티(graffiti)를 남겨 놓아 그저 신기하다. 이 장소에서 매년 《ㅍㅍㅁㅍ. 파주자유음악잔치》가 벌어진다. 오감을 열게 하는 이 장소에서 한글이라는 소중한 우리 문자를 자산으로 디자인 작업의 새 물길을 연 안상수 작가의 프로젝트가, 파티의 배우미들이 자신만의 디자인을 삶으로 체화하고 꿈꾸고 성장하는 중이다.





한글로 ‘멋’ 지어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1985년 한글 글꼴 디자인이 전무한 이 시기에 ‘안상수체’를 개발, 한글을 실험하여 우리말 서체의 현대화를 시도한 날개. 안상수 작가는 한글이라는 형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현대적인 형태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우리가 한글이 지닌 힘과 아름다움을 감응하는 순간부터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alpha_to_hiut_wallpainting, 515×481㎝, 2002


“한글은 인간의 혀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었지만 일례로 기억 자를 발음해 보라. 실제로 발음해 보면 혀가 그렇게 꺾이지 않는다.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이러한 형상으로 처음 디자인한 힘, 그 디자인적 상상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더욱이 이 어마어마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에 발휘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그 시기가 바로 르네상스 시절이다.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전시키고 나서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우리 역시 한글이 생겨나고 난 뒤에야 전체 인구의 1퍼센트도 안 되는 양반의 전유물이던 우리 문학과 해외 문화들이 두루 번역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중요한 한글을 우리는 그동안 촌스럽다는 이유로, 가치가 떨어진다는 편견으로 무시해 왔다. 마치 예전 어머니나 할머니가 쓰던 찬장처럼. 삶에서 그만큼 중요하고 멋스러운 것이 없는데 값나가는 골동품만 챙기고, 영어만 좋아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참된 멋을 잊고 살아온 것이다.”



2017년 3월부터 5월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날개. 파티》展 전시장 전경과 날개의 작품들.




PaTI 아카이브,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2017


안상수 작가는 지난 3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날개, 파티》(2017년 3월 15일~5월 14일, 세마 그린)전을 열었다. 초유의 관람객이 방문한 이 전시는 현장 디자이너이자 교육자로서 그간 타이포그래피, 편집 디자인, 드로잉과 설치, 문자 퍼포먼스 등 독보적인 형식 실험으로 ‘한글’을 작업해 온 작가의 지난, 그리고 현재의 작업들이 전시되었다. 뿐만 아니라 2013년 국내 최초 디자인 학교로 개관한 이후 전 세계가 주목하는 디자인 학교로 성장한 파티의 지난 5년들이 아카이브 되었다. 무엇보다 전시를 통해 우리는 안상수 작가가 생각하는 디자인이 공간에서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체험할 수 있었다. 작가는 생각하는 디자인은 “멋있는 것을 해내는 것”이다. 그는 ‘멋’이라는 낱말 한 자가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또한 안상수가 파티를 통해 어떤 프로젝트를 이어 나가고 싶은지를 드러낸다.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멋 짓는 행위’다.



문자도 영상, 원화 안상수, 재제작 스튜디오 호호호, 사운드디자인 지미레스, 2017


“어떤 것이 그 자체로 창의적이고 상상력을 뛰어넘을 때 우리는 ‘멋있다.’고 표현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말처럼 체화되었기에 우리는 멋을 이미 안다. 그래서 멋은 지어내는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디자인이란 말에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저의가 느껴진다. 그런데 멋있게 지어내는 것은 교육을 받든 안 받든 경험 유무와 관계가 없다. 소박하고 촌스러운 멋. 그 멋 자체에 대해 자격지심을 갖는다거나 서구적인 것의 구속을 받지 않아도 된다. 우리말로 그 멋을 소환했을 때의 멋스러움을 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바우야 놀자》 전시장 전경.



지난 2014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인간, 공간, 기계》(2014년 11월 12~2015년 2월 22일)전을 열어 파티의 멋짓.놀이를 선보였다. 이 전시를 위해 열세 명의 한배곳 배우들의 작업장이 그대로 옮겨져 전시장에 재현되어 전시의 일부가 되었으며, 바우하우스의 토어스텐 블루메가 진행하는 워크숍에서는 바우하우스의 과장되거나 추상적인 단순한 형태를 응용해 파티 배우미들과 옷을 만들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또한 전문 무용수들과 협업하여 문화역서울을 포함한 장소에서 총 5회에 걸쳐 한글 활자춤을 추고, 시를 낭송하고, 거리 퍼레이드를 벌이는 등 한글이라는 문자로 형상화하는 다양하고 감각적인 형식 실험들이 이어졌다. 한편 지난 5월에 개최된 《2017 서울국제핸드메이드 페어》에도 파티 배우미들이 꾸민 손맛과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부스가 마련되어 손이 그리운 방문객들의 흥미를 끌었다. 파티가 꾸민 공간은 어디든 멋짓이 돋보이고 멋들어지게 그저 놀.뿐이다.





 《2017 서울국제핸드메이드》展 파티 부스 설치 모습.




배움을, 배곳을, 디자인을 새로이 멋 짓는 곳 PaTI


파티는 배움을 멋짓고, 배곳을 멋짓고, 디자인을 새롭게 멋지음으로써 자유로움과 아름다움과 창조성과 가치가 생생하게 뒤섞이고 운동하는 한국의 학교 디자인 프로젝트다.

– 함돈균, 「PaTI 학교 선언문」에서



《광주 IDC_ㅍㅂㅍ 잔치》 모습.


안상수 작가는 2013년에 경기도 파주출판도시에 국내 최초로 디자인 학교(‘멋지음 배곳’)이자 교육 협동조합인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를 세웠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던 그는 홀연히 학교를 떠나 한글을 초석 삼아 출판, 전시, 퍼포먼스 등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다, 2013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파티의 기반을 든든히 잡기 위해 힘을 쏟아 왔다. 그가 파티라는 대안대학을 만든 이유는 새로운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작가는 삶에서의 선택과 집중을 ‘교육’에 걸었고, 학교를 디자인하는 것을 자신의 과업으로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좋은 학교에 보내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경쟁을 부추긴다. 성적순으로 전공 만들고, 룰에 의해 목적지도 종착지도 이미 정해져 있다. 하지만 실제 교육은 10년, 20년 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경쟁은 창의를 죽인다. 그래서 틀을 다시 짜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장 디자이너로서의 경험, 삶에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경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오래 고민했고, 그 두 가지로 뭔가를 해야겠다는 내 속의 바람이 커왔던 것 같다.”

안상수 작가의 PaTI는 학교가 아니라 배우는 곳이란 의미의 ‘배곳’이다. 배곳에서는 교사와 교수를 스승이라 부르고, 학생을 배우미라 부른다. 배곳은 배우미의 터전이고 배우미는 배곳의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또한 파티는 완료된 학교가 아니라 배우미와 스승이 함께 만들어 가는 진행형 학교 디자인 프로젝트다. 즉 PaTI는 작가 안상수가 스승과 배우미들과 함께 배곳에서 진행하고 있는 작업인 셈이다. 파티는 무경쟁, 무재산, 무권의. 학위도 없고 위계도 없다. 이곳의 모든 관계는 수평적이다. 그는 교장이란 말 대신 날개를 쓰고, 자신은 스승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파티의 배우미들은 처음 입학하면 제일 먼저 자기들이 쓸 책상을 만든다. 재개발 지역에 버려진 가구들을 가져와 자신의 작업 공간을 직접 꾸민다. 오래된 동네에 버려진 나왕으로 된 찬장, 책상 등의 가구들은 겉은 촌스러워도 재료는 원목이다. 새 아파트에서 구매하는 가구들은 겉은 멀쩡한데 속은 합성목인 경우가 많다. 할머니, 엄마가 쓰던 것은 값나가는 골동품만 챙기고 생활 가구는 촌스러워서 버리는 경우가 많다. 파티의 배우미들은 그런 질 좋은 원목 가구를 가져와 자기 식으로 디자인해서 졸업 때까지 사용한다. 이런 모습은 파티의 교육 철학과 닿아 있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에 반응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생각이다. 현대의 구조적인 교육은 이미 만들어진 환경에 개인이 적응해야 하는 구조라면, 파티는 자기의 공간을 자신의 삶에 맞추어 주도적으로 만들어 간다. 표준화되고 기성화된 환경에서는 다름. 창의와 상상력이 키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파티에서는 그래픽, 타이포그래피, 사진, 출판, 미디어 등 다양한 디자인 관련 수업 외에도 인문학을 배우고, 춤, 연극 등의 몸 표현을 배우며, 적정기술과 직조 기술, 활판인쇄 등 손과 마음이 어우러지는 삶의 디자인을 배운다. “멋짓 가르침 자체가 곧 멋지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배우미들은 이곳에서 ‘파티 3ㅅ’을 배워 나간다. 사람(홍익인간), 손(생각하는 손), 세종(한글 얼)이다.







파티는 새로운 바젤, 바우하우스 이상


파티의 저력은 네트워크가 전 세계로 뻗어 있다는 점으로도 입증이 된다. 파티에는 시각, 타이포그래피, 영상, 일러스트, 미디어, 전시, 출판, 문학 등 다중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국내외 전문가들이 스승으로 초빙되어 자신들의 작업 세계를 배우미들과 나눈다. 또 승효상 건축학교, 명필름랩 등의 국내 유명 전문학교와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안그라픽스, 열화당 책박물관, 두성종이, 시민행성 등 다수의 네트워크 시설들과 교류한다. 아울러 스위스 바젤디자인학교, 독일 데사우 바우하우스, 런던 왕립미술학교,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 등의 해외 유수 교육 기관에 교류 및 프로젝트 협업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전 세계 디자인 관련 학교와의 워크숍, 공동 프로젝트 진행 등이 배우미들의 학기 내내 진행된다. 올해 9월 바젤에서도 ‘파티-바젤 주간’이 열려 한 주 동안 바젤디자인학교 배우미들을 대상으로 워크숍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파티는 해외에서 먼저 그 멋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것은 바젤도 하우스도 아닌 파티 그 자체의 멋이다.


놀이에는.목적이.없다..

그저. 즐거이. 노는.데.마음.쏟을.뿐..

몰입이.있고.

그곳에.애지음.뜻(창의).태어난다..

놀이마음에서.창작.싹튼다..

남.이기려.공부하지.않고.

놀이하듯.멋짓는.

그저.‘놀.뿐’이라는.

파티의.또.하나.새김이다..

– 날개




날개는 파티의 힘은 작은 규모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위계가 없고 체제에 속해 있지 않기에 자유롭다는 것이다. 창의나 상상력이나 예술의 새로움은 자유로부터 나온다. 생각의 자유, 조직의 자유로움에서 발생하는 놀라운 일들. 파티는 이제껏 자유로운 환경 자체를 디자인 작업해 왔다. 파티를 멋지게 ‘멋’ 지어 가는 일이 바로 안상수 작가의 프로젝트이므로, 그저 ‘놀.뿐’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이 문학 작품에서 보여 주는 형상 실험을 좋아하던 그는 날개라는 자호를 짓고 ‘이상체’라는 글자꼴을 만들어 이상에게 헌정했다. 그래서 2016년에 새로 지은 이 건물의 이름은 ‘이상집’이며, 그가 거처하는 집이자 교장실은 날개집이다. 날개집과 이상집. 이상의 정신이 휘몰아치는, 멋을 짓는 이 공간에서 한글이라는 문자를 화두로 하여 일어나는 모든 프로젝트와 교육은 디자인 예술을 향한 생생하고 당당한 나날의 ‘날개’다.


글_이정화(미술비평, 독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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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옆집에 사는 예술가

    자기소개/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창작공간이자 때로는 도전적이고 개방적인 실험의 장으로서 끊임없이 진화해 온 창조적인 장소, ‘예술가의 작업실’에 가 보신 적이 있나요? 《옆집에 사는 예술가》는 지역사회의 중요한 문화 자산인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예술가의 일상을 공유하는 대중 프로그램을 통해 창작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활동해 온 경기지역 예술가들을 만나는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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