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 사는 예술가] 형(形)의 이상에 위트를 담다

이천_조원석 작가의 작업실







조원석 작가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에서 도예를 전공했다. 한국도자재단 소속 입주 작가로 활동했으며(2013~2015), 《조각과 공예》전(국립현대미술관, 2014),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광주디자인비엔날레(2015), 《예술가길드》(서울시립미술관 SEMA창고, 2016), 《미래도》전(동대문디자인플라자, 2016) 등 다수의 개인 및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5년에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특선을 차지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청백리로. 지명 이름이 곱고 쌀과 산수유로 유명한 마을. 들어서면 곳곳이 논이며 들꽃과 풀들, 땡볕에 여문 풀 냄새가 코끝을 기분 좋게 간질이는 한적한 이곳, 외관으로는 여느 집과 다를 것 없는 오래된 양옥집에 조원석 작가의 작업실이 들어서 있다. 집 안에 들어가면 방들과 거실과 주방 등에 가마와 토련기, 전기 물레와 흙들, 초벌을 마친 그릇들과 작업을 마치고 진열되어 있는 도예 작품들이 눈에 띈다. 30여 평 남짓 되는 이 공간에서 생활과 작업이 분리되지 않고 분주히 때로 호젓이 저마다 역할이 한창이다. 테이블 옆 찬장에는 작가가 그간 빚은 화병과 화기 등의 생활 자기들이 은은한 빛깔로 공간의 여백을 만들어 준다. 손님 대접으로 작가가 직접 빚은 차 도구에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역시 직접 빚은 찻잔에 따라서는 마시라 내준다. 백자에 머금은 커피 향을 들이마시며 작가와 마주하니 순박한 미소, 호탕한 웃음마저 백자 안에 녹아든 것 같다.





전통 도자에 현대적, 유희적 형상을 입히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조원석 작가는 학부 때는 회화 및 다양한 형태의 실험 작업을 통해 미술에 대한 호기심과 고민들을 작업에 반영하려 시도했다. 그러던 그가 도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졸업 후 돌석도예박물관에서 일하면서다. 그곳에서 2년간 근무하며 도예와 관련한 다양한 기획을 진행하고 국내외 훌륭한 도예가들의 작품들을 접하면서 도예가 가진 미학적 매력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가 도예 작가로서 보다 깊이 자기 세계를 마련한 계기는 2013년에 한국도자재단 입주 작가로 활동하면서다. 이 시기 작가는 도예 고유의 전통 기법이 주는 아름다움에 본인의 개성과 위트가 녹아든 작품들을 시도하는데, 작가가 특히 주목한 전통 기법은 양각(陽刻), 투각(透刻)1)기법이다.


도예에서 ‘양각, 투각 기법’으로 제작된 도자기는 도구의 정교함과 기물의 습도, 고난이도의 기술력 등이 요구되어 제작 과정이 까다롭고 손길의 정교함을 요한다.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이 기법은 문화 부흥기 때에 활성화되었으며, 생활 자기보다 향로나 장식물 등의 향유품에 적용되었다. 조원석 작가는 이 일반적이지 않은 전통 기법을 재해석하여 일상 오브제(장기, 퍼즐, 필통 등)에 대입하기도 하고, 전통 도자에 현대적이고 유희적인 형상을 입히기도 한다. 기법과 표현을 통한 다양한 시도 속에서 작가의 작업은 회화의 평면적 표현과 소조의 입체적 표현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게 되는데, 삼차원의 기물을 바탕으로 이차원적인 구도를 가설정하는 작가의 깊이는 가히 섬세하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양각 투각 기법은 회화의 평면적 표현과 소조의 입체적 표현 사이다.”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특선을 차지한 작품인  〈백자합,체로봇〉,

8×8×22㎝(S:18.5×12×13㎝, L:18.5×12×25㎝),

White Porcelain, Coblalt precise line inlay, Neodymium Magnet, 2014



이러한 ‘유쾌한 넘나듦’이 가장 빛을 발하는 작품이 2014년에 선보인 〈백자합,체로봇〉이다.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특선을 차지한 이 작품은 여러 개의 합을 포개 올리면 다양한 형태의 백자 로봇으로 변신하고, 사용하는 이가 자유자재로 층을 달리하여 사용할 수 있어 가변적 재미를 준다. 작품 제목도 조선시대의 백자 ‘합’과 합체로봇의 ‘합’을 결합시켜 유희적으로 풀어내 흥을 더해 주었다. 백자로 로봇을 형상화하려는 참신한 발상은 어디서 기인했을까? 이는 작가가 학부 때부터 고민해 온 여러 시도들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작가는 작업을 위해 오랜 동안 고민하지만 작업 자체는 가볍고 재미있게, 작품에는 위트를 녹이려 한다. 즉 도예의 미학을 드러내는 전통 기법을 중시하여 연마하되, 자신이 삶과 작업에서 가장 우선에 두는 재미를 잃지 않으려는 젊은 감각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또한 작가 자신의 재미를 넘어 감상자에게 우리 백자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 주고 싶은 바람과도 닿아 있다. 조원석 작가는 백자로 빚은 도예 작품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쓰임, 즉 전통과 현대성이, 평면과 입체가 어떻게 서로 만나 조화를 이룰지를 고민해 왔다.


   

전통 기법인 양각의 멋스러움과 작가의 개성이 더해진 작품들.

좌) 〈도자기 장기〉, 37.5×38.4×1.8㎝, White Porcelain, 2002

우) 〈백자양각수반〉, 25×25×11㎝, White Porcelain, 2016



백자의 백미에 팝적으로 재해석한 민화


작가의 생활 자기에도 양각과 투각 기법이 반영되었음을 살필 수 있는데, 거기에 작가만의 특징들을 반영하여 개성을 살려 냈다. 우선 컵 손잡이 부분이 눈길을 끄는데, 고리 모양 손잡이 가운데에 모란 문양을 반원 형태로 양각하거나 동그란 모란꽃 모양으로 손잡이를 만들었다. 그래서 컵을 손가락으로 잡을 때 마치 꽃잎을 잡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투각 잔도 독특한데, 작가의 투각 잔에는 해학적 형상으로 미소를 자아내는 민화의 이미지, 자연물의 이미지가 반영되어 있다.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조선 백자의 깊이감에 팝(Pop)적으로 재해석한 민화 이미지”다. 투각 잔의 밑 부분을 자세히 살피면 용, 물고기, 오리, 파초 그림이 투각되어 있다. 여기서 물고기는 부귀와 여유로움을, 오리는 부부의 화합과 장원급제를, 용은 길상과 벽사(귀신을 물리침)를, 파초는 성인과 신선을 상징한다. 작가는 우리에게 친숙한 민화와 자연물의 이미지를 자신의 표현 방식으로 활용하고, 민화 속 동식물들이 지닌 상징성을 작품에 반영하여 쓰는 이의 즐거움과 건강함을 기원한다. 수반, 화병, 그릇과 접시 등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순백의 담담한 아름다움과 만든 이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의 자기는 선물 받은 이에게는 더없이 특별한 동시에, 늘 가까이 두고 쉬이 활용하고 싶어진다.



조선 백자의 깊이감을 팝적으로 재해석한 민화 이미지가 투각되어 있는

〈투각잔〉, 6.5×6.5×6㎝, White Porcelain, 2015



한여름에 펼쳐진 ‘조원석 가정식 그릇전’



우리는 어느 때 행복감을 느낄까? 멋진 경치를 감상할 때, 소중한 이와 시간을 함께 보낼 때, 피로를 풀어 주는 꿀 같은 단잠…… 여기에 당연히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꼽힌다. 먹는 즐거움에는 맛뿐 아니라 시각적 멋스러움이 포함된다. 편안한 공간에서 근사한 접시에 음식을 담아, 화병에 꽂힌 향긋한 꽃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때 행복감은 배가 될 것이다. 백자 접시에 정성스럽게 요리한 음식이 담길 때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맛과 풍미는 어떠할까? 작가는 이전부터 자신의 생활 자기에 다채로운 음식을 담아 보고 싶었다. 본인의 그릇과 접시에 음식을 담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본인의 작품들이 거실과 주방과 화장실과 안방 등의 생활 공간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활용되고 연출되는지를 실생활에 전시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릇과 요리가 결합된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이름 하여 《조원석 가정식 그릇전》. 전시회 공간은 당연히 조원석 작가의 이천 작업실 겸 생활 공간. 전시장이 아닌 일상의 공간에서 연출한 그릇전, 전시일은 조원석 작가의 《옆집에 사는 예술가》시간. 전시의 하이라이트가 될 요리와 공간 디스플레이는 요리는 물론 전시 큐레이팅 경험이 많은 이채윤 작가에게 부탁했다.




버스에서 참여자들이 하나 둘 내려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우선 거실에 놓인, 들꽃을 꽂아 놓은 화병, 작가의 작업 공간과 가마, 물레 등의 작업 도구들을 살필 수 있다. 화장실에는 주방의 쓰임에 맞게 제작한 칫솔 꽂이, 비누 접시 등의 욕실 용품들이, 안방에는 접시와 컵, 화병 등의 생활 자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은 방에는 작가의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이 나오고 바닥에 〈백자합,체로봇〉이 전시되어 있다. 이날 참여자들은 거실과 화장실과 안방과 작은 방을 둘러보며 조원석 작가가 작업하는 과정과 시연, 그 결과 탄생한 작품들을 순차적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백미는 주방이었다. 이날 이채윤 작가는 조원석 작가의 그릇에 여름 정식을 플레이팅 해 선보였는데, 라타투이2)와 매쉬드 포테이토, 안초비3)가 들어간 시저 샐러드, 데리야키 소스를 곁들인 연어 구이에 아스파라거스 구이와 상큼한 타불레4)를 곁들였다. 또 콜드컷 햄과 치즈 플레이트, 아망디오 쿠키를 디저트로 내놓아 참여자들 모두 감탄하며 그릇과 접시의 만남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이채윤 작가는 주방에 모인 참여자들에게 식탁에 차린 요리들의 구성과 레시피도 알려 주었는데, 참여자 몇 분은 진지하게 메모하거나 재료와 관련한 다양한 질문을 하며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주었다. 전시 관람 후에는 다 같이 준비한 음식을 맛보며 눈과 입이 즐거운 여름날을 함께 즐겼다.




작가는 그만의 형상을 어딘가에 품다가 어느 날 그가 찾던 질료를 만나 작품으로 형상화한다. 작가가 세상에 드러낸 그 형상은 때로 구체적이고 때로 추상적이다. 작가가 드러내고 싶은 형상의 의도와 깊이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사실 어렵지만, 그래도 괜찮을지 모른다. 찬찬히 들여다보고 느끼며 자기만의 감상을 만들어 내는 즐거움이 가능할 테니. 작품과의 만남은 그저 소중할 뿐이다. 작가와 감상자가 함께 만나 대화하면 그 시간은 더욱 그윽해지고, 감상의 깊이는 더해질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맛을 더했다. 작품을 만나고 작가의 삶을 경험하고, 맛을 통해 그날의 시간을 오감으로 맛보았다. 이러한 체험의 시간은 조원석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와 맞닿아 있다. 진지하게 고민하되 위트 있고 가볍고 상상력이 드러나는 작품을 창작하기. 작품 자체에서 나아가 작품이 세계와 만났을 때의 그 쓰임. 함께 했을 때 일어나는 맛있고 즐겁고 흥미로운 우연적 작용들. 본디 지닌 것들을 유지한 채 낯설고 새로운 것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유연함. 그 태도와 창작의 조화로 인해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유동적이다.



글_이정화(미술비평, 독립 에디터)





1) 양각은 평면상에 문양을 입체적으로 조각하는 조형 기법인 부조 상태로 나타내는 장식 기법을 말하며, 투각은 두껍게 만든 청자의 기벽을 문양의 형태로 칼로 도려내는 장식 기법을 말한다.

2) 라타투이(ratatouille)는 가지, 호박, 피망, 토마토 등에 허브와 올리브 오일을 넣고 뭉근히 끓여 만든 채소 스튜이다. 영화 〈라따뚜이〉에서 심술쟁이 비평가가 쥐가 요리한 라타투이 맛에 반해 개과천선한다.

3) 안초비(anchovy)는 지중해나 유럽 근해에서 나는 멸치류의 작은 물고기, 또는 이것을 절여서 발효시킨 젓갈을 말한다.

4) 타불레(taboulé)는 갈은 밀과 쿠스쿠스, 파슬리, 박하, 양파, 잘게 썬 토마토 등에 올리브유와 레몬 즙을 쳐서 만드는 시리아-레바논식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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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옆집에 사는 예술가

    자기소개/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창작공간이자 때로는 도전적이고 개방적인 실험의 장으로서 끊임없이 진화해 온 창조적인 장소, ‘예술가의 작업실’에 가 보신 적이 있나요? 《옆집에 사는 예술가》는 지역사회의 중요한 문화 자산인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예술가의 일상을 공유하는 대중 프로그램을 통해 창작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활동해 온 경기지역 예술가들을 만나는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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