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생활의 발견자 - 생활권을 재생하는 디자인 (1)

수원 행궁동 피큐알(PQR) 천인우


이 글은 《우리동네 펍》 본문 글입니다.


김진주/시각작가


수원이라는 도시는 오래된 성곽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흔히 사람들은 이곳을 ‘역사 도시’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꽤 나이든 도시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성곽은 한국전쟁 이후로 새로 보수된 부분이 많다. 성곽의 옛 돌을 받치고 있는 새 돌처럼 이 도시에도 청년들이 꽤 많다. 대학 캠퍼스도 많고 이들을 위한 문화 활동도 적극적으로 유치된다. 경기청년네트워크, 따복공동체, 청년몰 등 만 19세에서 만 39세까지의 ‘청년’을 찾는 제도적 프로그램이 최근 수원을 주 무대로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청년을 부르는 공공적 움직임은 생활 속에 잠자고 있는 문화적 가치를 살려 내는 활동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방치되었던 공간을 재구성한 곳을 작업장으로 삼아 그림도 그리고, 물건이나 책도 만들고, 탐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행동하는 주체로서 주로 ‘청년’이 호명되기 때문이다. 여엔기 아무래도 노년보다는 청년을 생동하는 상태로 손쉽게 규정하는 탓도 있다.




도시는 왜 젊은 활력을 필요로 할까? 지금은 보살핌 없는 노년도 문제이지만, 좌절하는 청년도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에게 도시 재생이 또 다른 책무가 되고 있지는 않는지, 청년의 발언으로 전해 보려 한다. 수원의 청년들을 만났던 때는 겨울이었다. 겨울을 죽음의 은유라고 볼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이 시기 숨을 고르고 자신을 찾는 시간으로 만들고 있을지 모른다. 겨울처럼 재생을 위해 필요한 시간, 즉 완성된 모습보다는 준비하는 상태, 긴장과 휴식 속에서 과거를 반성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섣부르지 않는 태도를 청년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수원 행궁동에 자리한 작은 책방이자 디자이너들의 창작 공간 ‘피큐알(PQR)’의 천인우 아트 디렉터를 만났다.


천인우 디렉터는 이런 인터뷰가 오랜만이라고 했다. 그는 서점 ‘피큐알북스(PQRBOOKS)’를 작년(2016년) 봄 오픈하고 나서는, 지역 신문, 문광부 웹진에서도 취재를 오고, 찾아 주시는 분이 많다가 겨울이 되니까 아무도 안 찾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수원 행궁동에서 책방을 하는 이유, 독립출판에 대한 시각, 디자인 활동 이력, 소소한 에피소드에 관한 궁금증은 그가 이미 나눴던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참고로 독자들은 생소한 철자로 구성된 이름의 의미를 가장 먼저 알고 싶을 텐데, 이 인터뷰들에 따르면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알파벳 O, P, Q, R, S, T, U 중에 세 가지를 골랐을 뿐이라고 한다.✽ 별 뜻이 없다고 하니 더 궁금해진다. 인터뷰 말미에 흔하게 등장하는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에 ‘문화는 여러 생물종처럼 다양한 성향의 창작자들이 살아가는 정글 생태계’라고 자기 주장을 펼치는 천인우 디렉터의 생각을 더 들어 보고 싶어진다.




✽ PQR에 굳이 의미를 붙이자면 ‘소통하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자.’라고 한다. 박찬학, 『우리동네: PQR를 소개합니다』 저자는 이우학교 역사교사, 당시 이우고등학교 2학년 안혜림, 류호림, 최지수 학생이 쓴 고2 수업 ‘사회체험: 도시재생’ 프로젝트. 2016. 8. 29. https://brunch.co.kr. 다른 인터뷰들 출처는 다음과 같다. 천한얼, 『이곳에 우리의 모험과 당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피큐알북스(PQRBOOKS)』, 인문306°, 2016. 10. 17. http://inmun360.culture.go.kr. 김지수, 독립 디자인컴퍼니&책방, PQR 인터뷰, 알럽인디, 2017. 2. 27. http://iloveindi.com.



헬로 피큐알!


피큐알은 즐거운 상상으로 변화하는 세상을 디자인하는

크리에이티브 컴퍼니입니다.

반갑습니다.

우리의 모험과 당신의 이야기.

- 피큐알 블로그 소개글에서


Q : 피큐알은 수원에 있는 독립출판사이자 서점이자 디자이너 스튜디오로 꽤 알려졌지요? 명함에는 ‘피큐알’ 옆에 ‘크리에이터스 라벨(creators label)’이라 썼네요. 새로움을 좇는 창작자로서 한 자리를 늘 지키는 서점 주인 역할이 답답하다고 느낀 적은 없나요?


(천인우, 이하 천) : 수원에서는 터줏대감 같아 보이지만, 독립출판계에서는 갓난쟁이죠. 수원에 오기 전에 서울 신사동에 3년 정도 있었고, 짧게 외국 경험을 했어요. 그래도 저희 멤버들은 대체로 박혀 있는 걸 좋아하죠.


천 : 피큐알에서 저는 주로 기획을 맡고 있고, 일러스트레이터인 요코, 그리고 디자이너 박가희 씨와 함께 일해요. 원래는 이 공간 전체를 서가로 썼는데 지금은 작업 공간과 서점 공간을 나눴어요. 작업 공간은 비밀 공간이에요. 집중해야 하니까요. 제가 저희 활동을 밖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지만, 에너지가 넘치게 뛰어다니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실은 내향적이라서(웃음) 추진력 부재로 인해 아직까지도 여러 가지 골머리를 썩고 있어요. 저희가 좋아하고 바라는 태도는 유형의 결과물에 집중하기보다는 과정에 가치를 두는 것이에요. 비록 서툴지라도요.

그리고 저희는 모두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에요. 보통 디자인 회사에서 기대하는 그래픽 디자인, 시각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등의 전공자가 없어요. 저는 패션을 전공했고, 요코도 섬유디자인과 출신이고. 그러다 보니 사고가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다양한 정체성이 저희 장점일 수 있어요. 컴퓨터 밖에 있는 것들을 많이 이용하죠. 제 아내이기도 한 요코를 처음에는 클라이언트로 만났어요. 명함을 파 달라고 하면서 고등어 한 마리를 사오더라고요. 고등어에 반짝이 붙이고, 자기 이름도 펠트로 잘라서 붙이고, 사진을 찍자고 했어요. 제가 기존에 생각 못 했던 것이었죠. 요코의 제안이 제 사고를 모니터 밖으로 전환시켰어요. 컴퓨터를 조금 만질 줄 아는 저와 아날로그 작업만 하는 이 친구가 만나서 협업을 하면 정말 재미있는 것들이 나올 것 같았어요. 그렇게 피큐알이 시작됐죠. 경기상상캠퍼스 경기청년문화창작소 오픈 페스티벌 일환이었던 〈비밀의 숲 원정대〉 포스터 원안도 요코가 펠트를 가지고 만든 거예요.



“저는 문지방에 올라와 있는 경계인이에요!” 피큐알의 또 다른 멤버 디자이너 박가희 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진에서 보이는 서가 칸막이 너머 자리가 그녀의 자리다. 작업 사무실에서 진득하게 작업에 열중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반대로 밖에 나가 활동하기를 즐긴다는 뜻이다. 짧지만 단단한 자기 발언만큼 반가운 인사가 있을까?



Q : 디자이너는 주로 클라이언트의 용도와 개성을 반영해서 작업을 하죠. 그런데 피큐알의 작업물은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남한테 맞춘다기보다 자기 발언을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줘요. 시각적 특징이 정보를 배치한 레이아웃이 아닌, 개성 강한 한 사람의 머릿속 세계를 전해 주는 이야기 같아요.


천 : 저희는 자기 세계가 있어요. 저는 그걸 끄집어내서 좀 더 정제된 모양으로 내보이는 거죠. 피큐알북스 바깥 벽 색깔이 핑크인데, 그게 저희의 정체성이자 요코의 세계관이에요. 요코와는 대략 5년 이상을 같이 작업했으니까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이 가죠. 작업을 수정해 달라 할 때도 많은데, 그때는 작업물이 별로라는 게 아니라 대중에게 사랑받으려면 일차적으로 이런 부분은 정제를 하는 게 좋다는 뜻이에요. 늘 하는 말이지만, ‘나는 너의 작업이 정말 좋다.’는 생각을 암묵적으로 전제하니까 가능한거죠. 내부적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이 강해요. 그게 깨지면 끝나요. 제가 욕심이 많은 것 같아요. 꿈은 거창해요. 그런데 몽상가죠. 그렇다면 또 다른 행동력, 강하고 추진력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해요. 내향적인 사람들은 꼼꼼하다든가 장점이 있잖아요. 다른 사람은 밖에서 뭔가를 긁어 오고.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진 않아요. 실패를 해도 내가 수습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의 일과 개성


Q : 서로 의지가 되겠어요.


천 : 그걸로 버티는 거죠.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어요. 책방 수입으로 운영되진 않지만, 사람들이 계속 관심을 가져 주시니까요. 책 판매로 수입이 나려면 늘 여기 두세 명은 앉아 있어야 하거든요. 지금처럼 겨울에는 손님이 하루에 한 명도 안 올 때도 있어요. 바로 옆에 있는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손님들도 가끔 오는데, 대부분은 작정하고 찾아오는 분들이에요. 블로그 활동을 하긴 하지만, 아직 정제되진 못했어요. 저희가 약한 부분이 마케팅이라고 생각해요. 유명 한 홍보 회사와도 함께 일해 봤고, 어떤 톤의 매너로 일하는지도 아는데, 저희 것은 안 되더라고요. 제가 어떤 부분에서 원하는 걸 좀 내려놔야 할 거 같고, 충분한 시간도 필요하고요. 그런데 그럴 시간에 다른 사람의 마케팅을 만져 주고 있죠.


Q  : 그 말은 피큐알에 대한 일, 그러니까 자기 일의 비중이 많아지길 바라는 건가요?

천 : 그렇죠! 클라이언트도 우리 일을 존중해 주길 바라고요. 그중 〈비밀의 숲 원정대〉 디자인은 가장 훌륭한 경험이었어요. 우리가 진짜 잘해서라기보다도 우리의 개성을 존중해 준다고 생각했거든요.



작업실 쪽 입구에 형형색색의 천이 드리워 있다. ‘직원 전용(staff only)’이라는 문구에 귀여운 고양이 그림을 덧붙여 위화감보다는 친근함이 든다. 이곳에서는 피큐알의 마지막 세번째 멤버 일러트스레이터 요코가 주로 작업한다. 공간 내부 한쪽 벽면에는 〈비밀의 숲 원정대〉 펠트 일러스트 작품이 걸려 있다.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캐릭터들의 얼굴 속에 두려움과 흥분이 뒤섞여 보인다.



Q : 이렇게 개성이 강한데 다른 클라이언트와의 일은 어떤가요? 클라이언트 중에 수원에서 사업하는 청년들은 얼마나 되나요?


천 : 스타트업, 청년 창업자들이 저희 주 고객이죠. 최근에 ‘존앤진’이라는 피자펍의 브랜딩을 맡았어요. 오픈한 지 며칠 안 돼서 계속 꾸미고 있죠. 그렇게 큰 돈이 되진 않지만 재미있어요. 이 일 하면서 수원에 요식업 공간들을 너무 프랜차이즈화하지 않고 디자인 센스가 있는, 각자의 브랜드화가 되어 있는 거리로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에서는 프로젝트를 해도 억지스럽게 의미 부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목적은 관광지 조성 프로젝트인데 ‘청년’ 이슈를 끼워 넣는 식이죠. 청년들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데 인력 지원 등 뒷받침이 충분하지 않아요.


Q : 그 청년 클라이언트들이 피큐알의 친구, 동료인가요? 디자인 일의 매력이 고객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사업을 하다 보면 누구나 명함이나 홍보 전단은 만들어야 하는데, 자기 생각을 알아주는, 말 통하는 디자이너를 찾게 되죠.


천 : 친구보다는 더 강한, 동지 같은 느낌이 들죠. 제가 생각하는 가치에 동의해 주고 브랜드를 맡기니까요. 그들과 함께하는 일은 프랜차이즈 하나 확장하는 게 아니라 지역에서 상생할 수 있는 일이죠. 그 친구들은 사람들이 뭐 하나를 사더라도 이 지역에서 구매하도록 이끄는 가치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수원에서 여기 화성행궁 동네가 ‘블루오션이다.’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수원에 오고 나서 다른 디자인 회사와도 협업해 봤고, 멘토 링도 해 봤는데 저희와 생각이 달랐어요. 아직 포토샵, 일러스트, 인디자인을 만지는 사람을 디자이너라고 판단하더라고요.


 

        (왼쪽) 경기문화재단 경기상상캠퍼스 오픈 페스티벌의 〈비밀의 숲 원정대〉 포스터.

        (오른쪽) 두 고양이의 모험을 담은 그림책 『풋 더 캣 다운』의 작업 과정과 일러스트.

         아쉽게도 제작비 지원을 위한 텀블벅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다시 시작한다는 소식이들리길바라본다.



Q : 교육의 차이인가요? 아니 면 세대가 다른, 나이 든 디자이너들이 었나요?


천 : 젊은 사람도 그래요. 지금도 학교에서는 취업 위주의 교육을 받으니까요.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일들은 그렇지 않아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서 그것을 발전시키는 그런 사람들에게 디자이너라는 칭호를 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나머지는 오퍼레이터로 그냥 손과 발이 되어 주는 거죠. 선 하나를 2픽셀만 옮겨 달라는 주문을 실행하는 사람이 디자이너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대부분의 회사들이 그러고 있죠. 서울에서도 그렇고요. 저조차도 그런 경험을 했고요. 어떻게 보면 저희의 경계가 애매해요. 아티스트이기도 하고, 그래픽 디자이너이기도 하고, 전시나 프로젝트 기획자이기도 하고, 이런 여러 가지 정체성들이 혼재돼 있어요.



피큐알이 디자인과 브랜딩 작업을 맡은 존앤진 피자펍의 로고.




생활의 발견자 - 생활권을 재생하는 디자인 (2)에서 인터뷰 계속



세부정보

  • 크리에이터스 라벨 피큐알(PQR)

    주소/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 224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hellopqr

  • 우리동네 펍/ 펍에 실린 12팀의 인터뷰이는 2016년 9월부터 조사한 문화재생 활동단체 중에 선별 추천되었다. 문화재생 활동단체 조사는 문화재생팀 신설 이후, 도내 문화재생 활동에 대한 모집단 규모와 수요 파악을 위해 실시되었다. 조사원은 각 지역에 활동 기반을 둔 청년 중심으로 구성하여 같은 지역 내에서 활동 하고 있는 단체를 심층 조사하였다. 조사 대상은 공동체 철학이 반영된 문화재생 기획과 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단체와 활동 내용을 중심으로, 지역을 거점 삼아 활동하게 된 계기와 계획, 지역 관계 정도, 재원 확보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수집하였다. 조사 결과는 재단문화재생 사업에 반영하여 활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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