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천 경기천년 기자단] 지명이 품은 경기도 남양주

경기도의 이야기


천천천 경기천년 기자단은 2018년은 경기천년의 해를 맞아 천년을 이어온 경기도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미래의 꿈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 경기도 내 거주자와 학생, 직장인들로 꾸려진 기자단입니다.



천년기자단에서는 경기천년의 해를 맞이하여 경기도 31개의 도시에 붙어진 이름의 유래에 대해 알아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알아볼 지역은 남양주시입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도시와 농촌이 조화를 이룬 남양주시는 팔당유원지와 정약용 선생의 묘, 조선조 왕릉인 광릉, 홍릉, 유릉등이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저는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에 위치한 남양주 종합촬영소를 가본 적이 있는데요, 남양주 종합촬영소는 국내최대규모를 갖춘 한국영화제작의 메카로 여러분들도 많이 아실만한 영화 수리, JSA공동경비구역, 취화선, 신과함께 등 최고의 영화가 만들어진 곳이랍니다. 그동안 남양주는 명산이 많고 경치가 좋은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2018년 경기천년의 해를 생각하니 문득 남양주의 지명은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경기천년인 만큼 그 역사가 오래되었을까요?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경기도 행정구역                                                                   남양주시 행정구역과 지명



1980년 양주군에서 분리되어 별도의 행정구역이 될 때, 양주의 남쪽지역이라해서 남양주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지금의 진접, 진건지역은 고구려 시대에 ‘골의노(骨依奴)’라고 불렀습니다. 이 지명은 통일신라시대가 되면서 황양(荒壤)으로 바뀌었고, 이것이 고려시대에는 풍양(豊壤)으로 다시 바뀝니다. 이렇게 현재의 남양주시 진접, 진건지역은 양주와는 별도의 지명이 있었습니다. 양주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고려시대인 936년(태조19년)으로, “후백제왕 견훤에게 양주를 식읍으로 주었다.”는 [고려사]의 기록이 처음입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양주라는 명칭이 지방 행정구역 이름으로 꾸준히 이어옵니다.


그러나 당시의 양주라는 명칭은 지금의 남양주시 영역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양주라는 명칭과 영역이 일치하는 시기는 1410년(태종10년) 양주목으로 승격되고부터입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지금의 진접, 진건지역은 풍양현이라는 별도의 명칭을 지니면서 양주목의 속현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후 풍양이란 명칭은 영, 정조대까지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풍양현 지역이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접동, 진벌, 건천, 진관 등의 면지명으로 표기되는 것으로 보아 풍양현 자체는 없어진 것으로 보이고 이때가 되면 남양주지역도 양주의 한 부분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다가 1980년 4월1일 법률 제3169호에 의하여 구리읍, 미금읍, 별내면, 진접면, 진건면, 수동면, 화도면, 와부면의 2읍6면68리를 갈라 남양주군이 새로 설치되면서 남양주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됩니다.


다산기념관


남양주시는 조선후기의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이 태어난 곳입니다. 1762년 마재마을에서 태어난 정약용은 ‘목민심서’등 수많은 저서를 남겼고 19세기 초 실학파를 통해 ‘다산학’을 완성하였습니다.


다산유적지


남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남양주시 조안면에는 다산 정약용의 생가인 여유당과 다산 선생의 묘, 다산문화관, 다산기념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선생은 2012년 유네스코가 기념한 세계기념 인물로 남양주시의 자랑입니다.


남양주 홍릉과 유릉


남양주시 금곡동에는 518년 동안 이어 온 조선왕조의 종지부를 찍은 홍릉과 유릉이 있습니다. 둘을 통틀어 홍유릉으로 부릅니다.


유릉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릉인 유릉은 마지막 황제 순종과 순명효황후, 계비 순정효황후가 한 능에 모셔져 있습니다. 유릉은 하나의 능에 세 명이 합장되어 있는 유일한 왕릉입니다. 19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했습니다. 따라서 고종황제의 무덤은 명나라 태조의 능을 본 떠 만든 중국 황제릉의 양식으로 이전의 조선오앙릉과 여러 면에서 다릅니다.  



홍릉


조선의 왕 중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고종과 명성황후는 홍릉에 함께 잠들어있습니다. 일본인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명성황후는 동구름 인근 홍릉에 묻혔습니다. 그 후 홍릉은 청량리 지역으로 옮겨졌다가 고종이 세상을 떠나자 1919년에 남양주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능 이름은 그대로 홍릉이 되었는데 홍릉은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왕이 아닌 왕비의 능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홍유릉 유적지 내에는 홍릉과 유릉, 영원, 그리고 덕혜옹주 묘까지 함께 조영되어 있습니다. 묘역을 살펴보면 힘없던 나라의 마지막모습을 볼 수 있는 가슴 아픈 역사현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가는 지표가 되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천마산은 북서쪽의 철마산과 함께 광주산맥에 속합니다. 멀리서 보면 달마대사가 어깨를 쫙 펴고 앉아 있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모두 각자의 이름이 있듯, 경기도의 지명은 ‘경기’, 남양주의 지명은 남양주, 이처럼 지명은 인류의 사회생활 더불어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지역의 주변 환경과 역사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다양하게 얽히면서 발생하게 됩니다. 경기천년을 통해 경기도 남양주 지명에 대한 유래를 살펴보니 남양주의 깊은 역사까지 알아가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2018년 경기천년의 해를 기념하여 우리 지역의 어제와 오늘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이상 천천천 경기천년 기자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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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식

    • 사진출저/ 남양주시청 홈페이지, 경기관광포럼, 한국지명유래집, 한국관광공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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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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