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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연구원

3. 만월대, 선죽교…개성의 고려유산을 기억해야 하는 까닭


이 글은 경인일보에 실린 '경기에서 찾는 고려 1100년의 흔적' 시리즈 입니다.


서울에서 약 80km, 승용차로 불과 한 시간.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나서면 거기 북한 땅 개성이 나온다. 개성은 고려 건국 이듬해인 919년 수도가 된 이래 강화로 수도를 옮겼던 기간(1232~1270년)을 제외하고 440여 년 동안 고려의 중심지였다. 비 오는 날 개성에서 국제무역항 벽란도가 있는 예성강까지 처마 밑으로 비를 맞지 않고도 갈 수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올 정도로 개성은 번창한 도시였다.



개성 만월대 전경 / 이광표 제공


개성에 남아 있는 고려의 흔적 가운데 가장 먼저 꼽아야 할 것은 북한 국보 122호인 고려왕궁 만월대(滿月臺)의 터다. 만월대는 송악산을 북쪽에 배경으로 두고 남쪽의 구릉 지대에 널찍하게 펼쳐져 있었다.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 / 이광표 제공


동서 길이 373m, 남북 길이 725m, 둘레 2170m. 만월대는 흙을 높이 돋운 뒤 건물들을 세웠다. 송악산 자락의 지기(地氣)를 그대로 살리고 고려 왕조의 권위와 위엄을 드높이기 위해서였다. 만월대라는 명칭은 당초에는 높은 축대를 쌓고 지은 정전(正殿)인 회경전(會慶殿)의 앞뜰을 가리켰는데, 훗날 궁궐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만월대는 개성에 있는 여러 고려 궁궐 가운데 가장 중요한 법궁(法宮) 역할을 했다. 외곽의 황성과 내부의 궁성으로 이루어졌으며 궁성 권역은 크게 회경전 중심의 외전 일곽, 장화전(長和殿) 중심의 내전 일곽, 서북쪽의 침전 일곽으로 이뤄져 있었다.


만월대는 현종 때 거란의 침임, 인종 때 이자겸의 난, 고종 때 몽골 침입 등으로 인해 소실과 중건을 거듭하면서 시련을 잘 견뎌냈다. 하지만 1361년 공민왕 때 홍건적의 침입으로 큰 화재를 입고 폐허로 변해 버렸다. 지금의 만월대 터는 그때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폐허가 된 만월대 터에서 인상적인 것은 회경전에 오르는 장대한 33계단이다. 쓸쓸함과 웅장함이 교차하는 그 모습 속에 고려 오백년 영욕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만월대의 서쪽 구역에서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남북 공동발굴이 진행되기도 했다.


비극적인 사연이 담겨 있는 선죽교(善竹橋, 북한 국보 138호)도 빼놓을 수 없는 고려 문화유산이다. 고려의 명운이 다한 1392년, 고려의 충신인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1337~1392년)는 이곳에서 이방원(李芳遠, 흣날의 조선 태종) 일파에 의해 피살됐다.



개성 선죽교 / 이광표 제공


선죽교는 1216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애초의 이름은 선지교였다. 정몽주가 죽고 난 뒤 그 자리에 참대나무가 자랐다고 해서 대나무 죽(竹)자를 넣어 선죽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선죽교에는 아직까지 정몽주의 핏자국이 남아 있고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선죽교 아래로 붉은 빗물이 흐른다고 한다. 선죽교라는 이름이나 핏자국 이야기에서 고려 충신의 일편단심(一片丹心)을 기억하고픈 후대인들의 바람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불교의 나라답게 수도 개성에는 수많은 석탑들과 거대한 목탑이 세워졌다. 그러나 세월과 전란을 이기지 못하고 대부분 사라졌고, 지금은 영통사(靈通寺) 5층 석탑(북한 국보 133호), 불일사(佛日寺) 5층 석탑, 현화사(玄化寺) 7층 석탑 등만이 남아 고려 석탑의 순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독특한 모습의 화장사(華藏寺) 지공(指空)화상 승탑은 고려 석조불교미술의 파격을 구현한 명품으로 꼽힌다. 태조 왕건릉(顯陵, 북한 국보 179호)과 공민왕릉(공민왕의 玄陵과 노국대장공주의 正陵, 북한 국보 123호)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고려의 문화유산이다.


북한 땅 개성은 쓸쓸하다. 도처가 분단의 상흔이다. 그렇지만 개성이 고려의 수도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천년을 견뎌낸 고려의 문화유산들이 이를 웅변한다. 최근 남북 화해 분위기에 힘입어 개성에 남북연락사무소를 개설하기로 했다. 만월대 공동발굴도 재개될 것이란 소식이 들려온다. 개성의 고려 문화유산은 통일시대 경기도의 소중한 역사문화의 당당한 한 축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개성과 고려’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 / ◎ 이광표(동아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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