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실학박물관

네모난 인생이 쌓아올린 나선의 욕망

배우 정동환



배우 정동환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여전히 무대와 브라운관을 활발히 오가며 활동하는 현역인 탓도 있고, 크게 변함이 없는 체형과 외모 탓도 있다. 그는 이제 곧 일흔이 된다. 나이나 차분한 인상과 말투에 비해서 정동환은 매우 에너제틱하다. 그의 학구적인 열정과 진정성 있는 태도는 이미 연극계에서도 유명하지만, 성실함 뒤에 살짝 감춰놓은 삶의 욕망은 여간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정동환을 네모난 무대나 브라운관 밖으로 끌어내면 동그랗고 단단하게 농축되어 있던 에너지는 훨씬 더 분명하게 도드라진다. 그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나선형이다.




요즘 그리스, 페르시아에 푹 빠져있었어. 헤로도토스 <역사>를 내가 이제야 읽은 거야. 단테 신곡, 셰익스피어의 그 수많은 고전, 희랍비극을 했는데도 사실 배우가 그 시대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거잖아. 그때그때마다 만나는 단편적인 순간들만 겨우 이해하는 거지. 그것들이 전부 생생하게 살아있는 진짜 이야기들이었다는 걸 이제야 이렇게 알게 되다니. 내가 얼마나 놀라고 있는지 몰라. 지금 내가 바다건너 저쪽 나라의 기원전 2천 년 전을 돌고 있는데, 조선의 200년 전, 300년 전 실학이야기로 들어오려면 아직 좀 시간이 걸려야 하려나. (책들을 뒤적이며) 오, 오, 이것 좀 사가야겠다. 공부를 해야겠어.


뒤적이던 정약용 실학 전문 서적들을 당장이라도 외울 기세다. 정동환은 “이것저것 하나씩 깨달아 갈수록 아무것도 모르고도 섰던 젊은 날의 무대가 한없이 부끄러워진다”고 했다. 그래서 실학박물관의 뮤지엄 숍에 놓인 정약용 책만 보아도 부질없이 마음이 좇기는 모양이었다.


재작년인가. 크레타 섬을 갔어. 사람이 서 있기도 힘든 거센 바람, 어마어마한 절벽. 사람들은 그곳이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여행지라고만 생각하겠지만, 내게 그곳은 굉장한 실체였어. 피터 쉐퍼 연극 <고곤의 선물>말야, 거기 배경이 크레타 섬이거든. 뭐랄까. 예술과 연극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나, 크레타 섬에 가서야 깨닫게 된 것 같아. 예술과 연극이 바로 서 있어야 사람이 제대로 설 수 있다는 것. 크레타 섬에서 이루어졌던 당시에 문명은 하루아침에 무너졌지만, 예술과 역사가 시대를 넘어서 기억하고 있잖아. 지금의 우리는 그 흔적과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거니까, 그게 예술과 연극이 중요한 이유인거지.





4월부터 한 달 동안 공연된 2인극 <하이젠버그>(사이먼 스티븐스 작, 김민정 연출, 두산아트센터)에서 정동환은 70대의 독신남성 알렉스를 연기했다. 40대의 미혼모와 우연히 만나서 사랑을 느끼는 알렉스는 사람과 사랑의 불완전하고 불확정적인 ‘사이’를 그려낸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모티브로 하는 작품으로 두 남녀의 조합은 시작부터 끝까지 불완전하고 불확정적이다. 그런데 이 불안한(?) 무대 위에서 정동환의 알렉스는 꽤 매력적이다. 알렉스라는 인물을 억지로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처음부터 그였던 것처럼 정동환의 말투와 손짓은 그대로 알렉스였다. 매순간 무대에서 성실하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은 느리지만 진하게 우러나오는 법이다. 일흔에도 여전히 성장점이 열린 배우처럼 보이는 정동환의 비결은 태생적인 호기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산행일기? 어랏, 그런데 어떻게 정약용은 북한강을 남한강에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을까. 황포돛대라도 달았나? 어떻게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갔던 거지? 워낙 탐사를 많이 하던 사람이라서 물길 읽는 방법을 알았던 걸까. 어 신기해, 궁금해.



실학박물관의 특별전으로 기획한 <정약용, 열수로 돌아오다>(7월15일까지)에는 정약용의 북한강 기행문인 <산행일기>, <천우기행권>이 소개되고 있다. 정약용이 조카의 혼사와 손자의 혼례에 동행하면서 춘천을 오갈 때 남긴 여행 기록문이다. 정약용의 여행기는 북한강을 따라 나 있는 수려한 강산의 아름다움과 감상만을 적은 것이 아니라 생활권을 중심으로 조사하고 탐사한 기록들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여행기를 꼼꼼히 들여다보던 정동환은 당시 정약용이 남한강 지역에서 북한강 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는 점에서 멈칫했다. 그의 질문은 그럴싸했다. 전시를 준비한 정성희 학예사가 직접 들려준 답변은 “뱃길이 거의 대부분의 운행 수단이었던 시절이고, 대부분 배로 이동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당시에는 댐이 없었기 때문에 물살이 지금만큼 거세거나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북한강을 여행하는 뱃길에 강물이 거세어서 애를 먹었다는 기록을 따로 보았던 기억은 없다”는 것이었다.





전문가 답변과 별개로 정동환의 질문이 공감을 일으켰던 이유는 당시 정약용이 언급한 ‘곡운구곡’을 그린 조선후기의 그림들 때문이기도 하다. 1823년에 기록한 정약용의 북한강 여행기에 곡운구곡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조선후기 화가 조세걸의 ‘곡운구곡도’를 보면 실제로 바위들 사이에 보이는 여울의 물결이 정말 빠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동환의 생각과 질문은 먼발치에서 팔짱끼고 바라보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애써 들여다보면서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의 삶의 자세 또한 그러하다. 엄홍길 대장과 높고 낮은 산을 누비며 네팔을 다니고, 광주에 전원주택을 얻어 살다가 일흔에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기 시작한 정동환, 그는 자유와 방만의 욕망을 살짝 감추고 있는 배우 모범생이다. 그가 스스로에게 채워놓았던 인생의 네모난 족쇄들 - 무대와 브라운관에서 그는 매순간 최선의 노력으로 신뢰를 얻었다. 그랬기 때문에 일정한 궤도를 벗어난 그의 작은 일탈들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네모난 인생으로부터 한껏 둥글어지고 싶어 하는 그의 욕망의 질주는 끝이 없다. 그가 멈추지 않는 성장점을 가지게 된 것은 그 둥글고 건강한 나선형의 욕망들 때문일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 틀림없이 조금 더 젊어져 있을 배우 정동환을 실학박물관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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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학박물관/ 뉴스레터83호

    스페셜 토크토크/ 배우 정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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