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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연구원

고려시대 경기지역 사원의 성격 ④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이 글은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천백주년 기념 학술대회’ 자료집에 수록된 발표주제문입니다.

고려시대 경기지역 사원의 성격


이승연 | 경기문화재연구원



|목차|

  Ⅰ. 머리말

  Ⅱ. 고려시대 開京과 京畿지역의 변화

  Ⅲ. 고려시대 開京과 京畿지역 사원의 종파와 기능

  Ⅳ. 맺음말


Ⅲ. 고려시대 開京과 京畿지역 사원의 종파와 기능


2. 願刹


고려시대 王室과 佛敎 세력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태조는 訓要를 통해 후대 국왕과 공후, 후비들이 願堂을 함부로 지을까봐 근심을 표하였다.1* 실제로 역대 왕에 의해 건립된 사원 대부분이 원찰이었으며, 여기에 王이나 王妃의 眞影을 모신 眞殿[願堂, 眞堂]이 세워졌다.


역대 왕과 왕비의 능은 개경 주위 1~2리 내에 있고 멀리 있어도 하루에 왕복하기 어렵지 않은 곳에 위치하였다. 『新增東國輿地勝覽』의 開城府 陵墓ㆍ佛宇條를 통해 능과 원당의 위치를 알 수 있는데, 태조의 현릉 이하의 능명과 그 위치가 분명한 왕릉, 왕후릉 그리고 추존왕릉뿐만 아니라 능명을 잃은 현존 왕릉 또는 기록에서 그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왕릉들은 江都時代에 江華에 조영된 壽陵과 恭讓王陵을 제외하고 모두가 開城을 둘러싼 주위의 開豊郡과 長湍郡에 집중해서 위치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1916) 고려대 왕릉의 위치는 명종대까지 송악산과 개경 주변, 송림현, 장단현 등이었으며,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후에는 강화에 자리하였고, 원 간섭기 이후에는 충목왕, 충정왕, 공민왕 등의 무덤을 제외하고는 고려후기 왕릉의 위치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김인호 2010).


願堂은 일반적으로 어떤 사원에 대해 창건ㆍ중수ㆍ시납 등으로 관련을 맺게 된 개인이나 친족 혹은 집단이 그 사원에서 발원을 위한 불사를 열 뿐만 아니라, 그 운영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원으로 규정될 수 있다. 왕실원당은 父王과 母后의 원당을 중심으로 경영되었으며, 광종대에 원당(奉恩寺ㆍ佛日寺ㆍ崇善寺)이 창건되기 시작하였고, 현종대부터 인종대까지는 부왕과 모후를 위한 원당을 새로이 창건하여 지정하였다. 인종 이후 원종까지는 새로운 원당이 창건되지 않았고, 기존의 사원이 이용되었다. 고려후기에는 신효사, 묘련사, 민천사, 운암사 등을 중창한 외에는 새로운 사원이 창건된 적 없이 기존사원이 원당으로 지정되었다. 원의 압제 하에 들어간 충렬왕대에는 鮒馬國이 된 만큼 元 公主 출신의 父王을 위한 원당이 함께 지정되었다. 태조-봉은사, 목종-숭교사(유가종), 현종-현화사(유가종), 문종-흥왕사(화엄종), 순종-홍원사(화엄종), 숙종-천수사(천태종), 예종-안화사(선종)로 이어지는 원당 건립은 조상숭배시설이자 교단통제의 구심점이며 왕실의 재정기반이라는 현실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韓基汶 1998: 220~262).


왕실원찰은 도성 내에 주로 분포하며, 도성 외곽의 경우 능 주변에 건립되었다. 많은 사찰들이 왕실이나 개인의 기복을 비는 원찰로 화함에 따라 팔관회나 연등회 외에도 무차대회, 인왕도장, 나한재 등 대규모 불교법회나 행사가 사찰 내에서 수많은 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이루어졌다.


① 장단 佛日寺 (화엄종-고려 태조의 원찰)


- 위치 : 개성시 판문군 선적리 불일동 (松林縣 북쪽-고려사)


951년(광종 2)에 창건하면서 縣治를 동북으로 옮겼다.2* 광종의 어머니 神明太后 劉氏의 원당으로 삼았으며, 戒壇에 나아가 戒를 받는 곳으로 두루 등장한다.


그림 5. 불일사 배치도

그림 6. 불일사 서편구획 강당지


사지는 당간지주, 오층석탑, 초석, 담장지가 잘 남아있으며 크게 세 구획으로 나뉜다. 사지의 규모는 동서길이 230m, 남북너비는 중심구획에서 115m, 가장 뒤쪽 건축 터까지 175m이다. 중앙구획은 중문지와 석탑, 대웅전지, 강당지가 중심축선에 놓이고 좌우에 승방지가 배치되어 있다. 서편구획은 중앙가람지보다 한 단 낮은 대지에 조성되었는데 문지와 사면 회랑 그리고 중앙에 정면 3간 측면 3간의 중앙전지가 있고 그 북쪽에 강당지가 있다. 동편구획은 남북 두 구획으로 구분되며, 북방구획에는 한 개의 전지와, 우물 2개소, 석조 1개가 있다(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91). 이 가운데 서편구획 강당지의 평면구성을 주목해 볼 만하다.



1. 『高麗史』 卷第2, 世家, 테조 26년(943) 4월.

2. 『新增東國輿地勝覽』 권12, 장단, 古跡 佛日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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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주제/ 중세고고학과 고려시대 경기의 위상 변화

    일시/ 2018.06.15.(금) 13:00 ~ 18:30

    장소/ 경기문화재단 3층 다산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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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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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문화유산의 가치 발견, 경기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