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토크토크]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다는 것은

탤런트 박웅

탤런트 박웅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다는 것은



낚시를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실학박물관을 찾아오는 남양주 길이 유난히 반가웠던 이유다. 더벅머리 총각 시절부터 낚시 가방 하나 둘러메고 이 길을 그렇게나 많이 오갔다. 이제는 제법 풍경도 사람도 많이 달라졌지만, 시간과 공간이 기억하는 추억과 감정은 고스란히 남았다. 애틋한 길의 추억이 팔순 고개를 넘어가는 박웅의 젊은 시절을 소환한다.




“저기, 저기서 낚시했어. 그때 젊은이들은 낚시가 유일한 취미야. 여기가 전부 낚시터였어. 청정지역으로 바뀌고서는 여기서 낚시 안했지만, 그때는 차도 없어서 버스타고 기차타고 왔다고. 이십대 중반쯤? 삼십대까지도 그랬지 아마. 여길 어찌나 많이 다녔는지, 그래서 지금도 여기는 멀지도 낯설지도 않아. 그때 있던 식당 카페 모두 다 없어졌지만 길은 그대로야. 길은 없어질 수가 없지.”






탤런트 박웅은 경북 문경 출생이다. 십대는 부산에서 보냈다. 고등학생 때 부산사투리로 원술랑 주인공을 했던 경험이 연극은 전부였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오니 연극반 선생님은 방송드라마 PD, 친구는 성우가 되어 있었다. 성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960년대 가난한 집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야 하는 장남에게는 연극이나 예술에 대한 고민이었다기보다는 직장이 필요해서였다. 부산 문화방송국 성우를 거쳐서 1962년에 서울 동아방송국 성우가 되었다.




“난 연극 경험이 없었어. 배우가 될 수 없는 사람이 배우가 된 케이스였지. 우연한 기회에 직장을 선택한 것이 성우였을 뿐인데 이렇게 평생 배우로 살게 된 거지. 별다른 요령이 특별히 없는 사람이라서 그래.”



동아방송국 1기 동기들은 박정자, 사미자, 장미자, 전원주 등이다. 성우가 되어서보니 사람들이 모두 연극 이야기를 했다. 성우를 훈련하는 선생들도 모두 연극인이었다. 제대로 된 성우가 되려면 연극을 알아야 한다고 믿던 시절이다. 1960~70년대에는 보편화되지 않은 TV보다 라디오드라마의 위력이 더 컸다. 방송국 내 연극동아리를 거쳐서 제작극회에서 본격적인 극단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극단 자유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극단 자유는 유학파 연출가와 무대미술가가 주축이 되어 상명하복의 상하관계보다 작업동료로서의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는 동인제 형식으로 꾸려졌던 집단이었다. 화술부터 연기까지 갖춰진 성우 출신의 실력있는 배우가 많았던 극단 자유는 탄탄했다. 유학파 연출가와 무대미술가 덕분에 해외 공연이 많지 않던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해외로 눈을 돌려 초청무대의 경험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독보적인 한국적 정서와 색채로 세계무대에서 활동한다는 자부심이 컸다.




1970년~1980년 극단 자유의 작품은 다소 파격적이었다. 지금은 배우가 객석 사이로 걸어들어 오거나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거는 일이 자연스럽지만, 당시에는 배우도 부끄러워했고 보는 관객들도 매우 낯설어했다. 배우가 무대 밑으로 걸어내려 간다든가 무대에서 옷을 직접 갈아입는 것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일은 배우들에게도 과감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게 지나보니까 그렇게 파격적인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 진짜를 어떻게 보여주나, 사실적인 게 뭔가를 예술적으로 고민하는 과정이었을 뿐이지. 그런데 그건 이미 우리나라 연희하는 사람들은 다 하고 있던 거야. 마당놀이나 탈춤을 봐. 우리한테 다 있던 것들이라고. 관객들과 짓거리를 한다는 것도 방법이 조금 달랐을 뿐이지 새로운 무슨, 그런 걸 개발한 게 아니었어. 괜히 연극이란 게 굉장히 근엄하고 우월한 예술행위처럼 교육된 탓에 그런 행동을 터부시하는 시대적인 오해나 편견이었을 뿐. 관객과의 열린 연극을 지향하고 한국적 색깔을 찾아내려는 극단 자유 활동은 다른 예술인들에게도 여러 방면에서 영향을 줬던 것 같아. 김덕수 사물놀이를 대중화시킨다거나 품바가 대중화되는 데에도 극단이 분명히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




박웅은 적극적이거나 활력이 넘치는 사람도 아니고 말주변이 화려한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느리고 과묵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연극을 대표하는 단체의 회장직이 유난히 많았던 게 이상할 정도다. 박웅은 한국배우협회장을 3회나 연임했고,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연극협회장을 맡기도 했다.




“회장을 맡게 되는 경우는 두 가지 같아. 뭘 맡겼을 때 무난한 사람, 또 하나는 사람들이 다 안한다니까 어쩔 수 없이 맡는 경우. 사실 난 회장감은 아니야. 난 사람들이 하도 안하겠다고 미뤄서 된 케이스지. 나는 그렇게 그냥 어쩌다가 맡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 단체장은 혼자 유능하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주변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하는 것 같아. 담당자를 믿고 맡길 줄도 알아야 하고 사고가 나면 나서서 해결하느라 애써야 하는 일이지. 세밀한 분야에 대해서 간섭 안하는 건 사실 내가 잘 몰라서 그렇기도 해(웃음).”




직책을 맡아보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본 적은 없었다. 작품에서 마음에 드는 역할을 달라고 연출가에게 말 한마디 건네 본 적도 없다.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순리를 따르고 이치에 순응하는 평온함과 평상심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이치를 볼 수 있는 평상심은 사물이나 현상의 원리를 뚫어보는 힘을 갖게 한다.



그러나 왕관을 쓰려는 자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무게를 견딜 수 없다면 왕관이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배우협회 회장을 세 번이나 연임하면서 박웅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한 배우들의 환경 속에서 그들의 얼굴을 대표하는 일에 책임감을 많이 느꼈다. 특히 한국연극 사회에서 배우라는 존재가 품고 있는 불가항력적인 열악과 허약, 그것들과 대면해야 할 때마다 조직을 위한 올바른 욕망과 강한 의지가 왜 필요한지를 절감하기도 했다. 한국배우협회 회장을 거쳐서 배우로서는 드물게 한국연극협회의 회장직을 맡았을 때 그 책임감이 배가 된 것은 그때의 깨달음과 절실함 때문이었다. 그 덕분인지 박웅 이후로 한국연극협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공연예술 관련 조직에서는 배우가 한국연극을 대표하는 단체장을 맡는 일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박웅은 얼마 전에 2018년 대한민국예술원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1955년에 제정된 대한민국예술원상은 국내 해당분야에서 가장 오래된 상이고, 그만큼의 상당한 권위를 가진 상이다. 60년 넘게 이어진 예술원상은 문학, 미술, 음악, 연극영화 분야의 4개 분야에서 시상되는데, 1회 수상자에는 작곡가 현제명과 극작가 유치진도 있다. 올해는 2개 분야에서 수상자가 선정되었다. 연극영화 분야의 수상자는 박웅이다.




“돌아보면 난 별로 상복이 없었어. 뭐 별로 그렇게 크게 들고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데 대한민국예술원상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나도 좀 놀랬지. 그것도 누가 말을 해줘서 알았어. 이 상이 대단한 상이랍니다, 하더라고. 근데 뭣보다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들이 직접 뽑아준다는 사실이, 그게 나는 영광스러워.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그 분야의 최고 동료들로부터 인정받는 일이잖아. 평생 그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 있을까. 이제 더는 다른 상 못 받는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아(웃음).”




그를 인터뷰했던 녹음을 듣다가 문득 발견한 한 가지가 있다. “그래, 맞아” “응응, 그렇지” “어, 그래그래” - 호응하는 감탄사들. 이 사소한 말투는 박웅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 그의 말마따나 배우의 이름으로 그를 바라보면 빨갛고 파란 공작새 깃털 같은 성질의 것들은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유난하지 않아도 온전한 모습으로 주변을 살펴 자신이 서 있을 자리와 역할을 찾아내는 배우도 있는 법이다. 그런 배우가 근간을 이루는 작품은 잔잔하고 오래도록 깊은 향을 낸다. 2018년의 대한민국예술원상이 주목한 것은 바로 그러한 배우 박웅의 가치와 의미일 것이다.



“실학박물관에서 나는 상당히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을 받았어. 다산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이런 박물관이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안거야. 다산이 내게 특별한 것도 있지. 최근에 수원성에 대한 연극을 만들고 싶어서 자료를 찾다가 정약용의 기록을 우연히 접했는데, 이렇게 정약용 생가도 보고, 정약용을 주제로 한 특별 전시도 보고, 실학박물관을 보게 되다니. 이게 너무 특별한 경험인거지. 홍보가 많이 되어서 학생들도 일반인들도 여기를 많이 왔으면 좋겠어. 그동안 여기를 몰랐다는 게 너무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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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 @김수미 @조연성

    • 실학박물관/ 뉴스레터85호

      스페셜 토크토크/ 배우 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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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031-579-6000

      실학박물관 홈페이지/ http://silhak.ggcf.kr

      이용시간/ 10:00~18:00

      휴일/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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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실학박물관

    자기소개/ 실학박물관은 실학 및 실학과 관련된 유·무형의 자료와 정보를 수집·보존·연구·교류·전시하며 지역 주민에게 교육과 정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다목적 차원의 문화복합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건립한 국내 유일의 실학관련 박물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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