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 舍那寺 圓證國師 石鐘碑

경기도유형문화재 제73호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는 태고화상 보우太古和尙普愚(1330~1382)의 비로, 양평군 옥천면 사나사 경내에 세워져 있다. 보우는 한국불교 전체를 통해서도 손꼽히는 고승으로 평가된다. 그는 고려후기 이후 한국 선불교의 중심 수행법으로 자리한 간화선 수행자로 유명하며, 이 시기 불교계와 사회 전반을 개혁하기 위한 개혁운동가로서의 위상도 함께 지니고 있다.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 전경, 2016 ©경기문화재연구원


그는 13세에 회암사 광지廣智에게 출가하여 26세에 화엄선에 합격하였으며, 1338년(고려 충숙왕복위6) 1월 송도 전단원栴檀園에서 무자 화두를 참구하던 중, 크게 깨달았다. 46세가 되던 1346년 원나라에 들어갔으며, 이듬해 호주 천호암에서 중국 임제종 제18대 법손인 석옥청공石屋淸珙으로부터 법을 인가받고 1348년 귀국하였다. 이후 공민왕의 요청으로 개경에 올라와 머물다가 1356년(공민왕5) 4월 왕사로 책봉되어 광명사에 머물렀다.


  원증국사 석종비 비문,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보우는 한때 신돈과의 갈등으로 인해 속리산에 금고되는 일을 겪기도 하였는데, 공민왕과의 관계가 회복된 이후 1371년 국사로 책봉되었다. 1381년(우왕7) 우왕에 의해 다시 국사로 봉해졌으며, 1382년 소설산으로 돌아와 머물다가 나이 82세, 법랍 69세로 입적하였다. 보우의 입적 이후 영골은 북한산 중흥사에 봉안하였으며, 사리는 사나사, 양산사, 청송사, 태고암 등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그의 시호는 원증圓證이다.


 

원증국사 석종비, 1916 ©국립중앙박물관                                                     원증국사 석종비,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이 비는 보우의 입적 4년 후인 1386년(우왕12) 세워졌다. 정도전鄭道傳(1342~1398)이 글을 짓고, 의문誼聞이 해서로 썼으며, 훈곡薰谷과 명호明昊가 글을 새겼다. 사나사가 자리한 양근楊根, 즉 현재의 양평군은 보우국사 어머니의 고향이다. 이로 인해 보우가 국사로 책봉된 이후 양근은 군으로 승격되는 등 지역 전체가 크게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는데, 이 비에는 특히 보우와 양근 지역의 연고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실려 있다.

이 비는 장방형의 비좌 위에 비신이 놓이고 비신 양 옆에 장방형 돌기둥을 세워 비를 고정하고 위에 덮개돌을 얹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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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고려시대(1386년)

      규모/ 1기 / 높이 167cm

      재질/ 석재(화강암, 오석)

      주소/ 양평군 옥천면 사나사길 329

      지정일/ 1978.10.10

      소유자/ 사나사

      관리자/ 사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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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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