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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의왕 청계사 청계사사적기비 義王 淸溪寺 淸溪寺事蹟記碑

경기도유형문화재 제288호





<의왕 청계사 청계사사적기비>는 청계사의 연혁을 기록한 비석으로 1689년(숙종15)에 제작되어 청계사 입구에 세워졌다. 청계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대찰의 사격을 갖춘 것은 1284년(고려 충렬왕10)에 조인규趙仁規(1237~1308)가 사재를 들여 중창하고 원찰願刹로 삼은 이후 대찰이 되었다. 한때 이곳에는 100명이 넘는 수도승이 상주하였고, 자손들이 사원에 조인규의 사당을 짓고 전장田莊과 노비를 두어 대대로 제사를 지내며, 500여 년간 조인규 가문의 원찰로서 중창을 거듭하였다.



청계사사적기비 전경,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당시 조인규 가문 출신의 천태종계 승려들은 과천 청계사와 수원 만의사 일대에서 활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말선초 이후 조선 불교계를 주도하게 되는 무학 자초와 그의 제자 철호 조선이 주지에 재임하였다. 조선초기 불교 사원을 정리하는 와중에도 과천현을 지키는 자복사資福寺로 지정되어 천태종에 소속되었으며, 이후 왕실과도 원당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 후 1689년(숙종15) 3월에 청계사에 화재가 일어나 성희性熙가 사찰을 다시 중건하게 되었고, 이때 다시 새로운 비석을 세워 그 전말을 기록하였다.


청계사사적기비 전면,후면,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비석의 형태는 방부개석方趺蓋石 양식으로 지붕 모양을 단순화해서 개석으로 얹었으며, 받침돌은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비신은 화강암을 수마水磨하여 마련하였다. 이 사적비는 조인규의 11대손인 조운趙橒이 글을 짓고, 윤창적尹昌績이 글씨를 썼다. 청계사의 창건과정과 조선시대 이후 청계사의 재정적 사정을 알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1689년 3월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6월에 중건했던 사정들이 기록되어 있다.


청계사사적기비 측면,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청계사 사적기비는 조선이 유교사회이지만 여전히 사회적 역할이 컸던 사찰이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자료이다. 특히 고려에서 조선까지 한 집안의 원찰로 기능하였던 청계사의 사적을 고찰하는데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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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조선시대(1689년)

    규모/ 1기 / 높이 약 176cm

    재질/ 석재

    주소/ 의왕시 청계동 12

    지정일/ 2014.05.09

    소유자/ 청계사

    관리자/ 의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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