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자수장(민수) 刺繡匠(民繡)

경기도무형문화재 제25호





자수는 실과 바늘의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다채롭고 자유롭게 무늬를 표현할 수 있는 장식수단으로 고대부터 널리 이용되어 왔다. 다양한 색상의 실을 바늘에 꿰어 여러 가지 수법을 응용하여 옷을 지어 입고 그 위에 장식을 더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어 종교적 장식 또는 의례적 행사의 복장과 함께 발달되었다.

자수에 관하여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지三國志』 위지 제30 동이전 부여편으로 ‘부여인은 외국에 나갈 때 에 증繒, 수繡, 금錦, 계罽로 지은 옷을 즐겨 입었다.’고 되어 있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 고구려편에는 ‘관인들이 회의로 모일 때 수놓은 비단 옷을 입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신라에서 수놓은 부채를 소도구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어 자수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834년(통일신라 흥덕왕9)에 복식금령服飾禁令이 내려지는데 금제 중 수와 관련된 금제도 있다. 버선과 신발 등에 계罽와 수놓은 비단[繡錦]을 사용하는 것을 규제하였으며, 안장언치와 안장자리 및 발[簾]에도 수놓은 비단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진골과 육두품은 자수병풍刺繡屛風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이러한 내용으로 볼 때 자수가 복식뿐만 아니라 생활용품에까지 범위가 확대됨을 알 수 있다.


예물함(위), 반짇고리(아래) ©경기무형문화재총연합회


고려시대에는 자수가 한층 새롭게 발전하였다.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에 의하면 상의국尙衣局과 잡직서雜織署 등을 설치하여 수예품을 만들게 하였다. 또한 문종실록에는 왕이 돌아가신 후 각 궁 안에 수를 잘 놓는 사람을 모아 부처를 수놓은 기록이 있어 왕의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수불繡佛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족 일가의 복식 및 기타 용품에 자수 장식을 전담했던 수방繡房이 있었다. 또한 문무관의 관복 앞과 뒤에 흉배를 착용하는 제도가 생기면서 자수의 수요를 증진시키게 된다. 자수는 궁수宮繡와 민수民繡로 크게 구분되는 뚜렷한 특징을 보이면서 발전하였다. 민간에서도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필요한 노리개, 보자기, 방석 등 각종 생활 장신구와 용품에 수로 장식한 자수품을 제작 및 사용하게 되었다.


보유자 신상순 ©보유자 제공


자수장 신상순은 일본 가나가와현縣 태생으로 일본에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1950년대에 마산여고에서 가사 선생인 김난초金蘭草에게서 자수를 배웠다. 1971년 자수원 화린공방을 차려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자수를 일상생활에 보다 가깝게 접목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작품에는 화조도花鳥圖 병풍, 백동자도百童子圖 병풍 등이 있으며 생활 감정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또한 조선시대 자수 유물을 수집하고 재현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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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주소/ 용인시 수지구 죽전로254번길 9

    지정일/ 1998.09.21

    보유자/ 신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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