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무한상상실 사례로 본 공공기관의 메이커 문화확산


『문화정책』은 경기문화재단이 국내외 문화정책의 동향을 파악하고,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추진하는 다양한 문화정책의 방향과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2017년 여름부터 발행하고 있는 계간지입니다. 본문은 『문화정책』6권 논단 내용입니다.



유만선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무한상상실은 ‘창조경제’를 이야기하던 이전 정부시절, ‘과학기술 혁신역량강화’라는 국정과제의 실현을 위해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메이커스페이스’였다. 2013년 8월 과천과학관에서 국내 최초의 무한상상실을 기획·설치하고 운영했던 경험, 그 동안 만났던 많은 국내외 메이커들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국내 공공기관의 메이커문화 확산 사업에 대한 생각을 적어 본다.


2013년 나는 과학관 내에 전시물의 시제작 공간 구축을 목적으로 지하 수장고 일부를 비워내고 각종 가공장비들을 구비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레이저커터나 수치제어조각기(CNC router)와 같은 디지털 가공장비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고, 이로 인해 과천과학관에 무한상상실 구축에 대한 업무를 받게 되었다.

과학관 뒷마당에 있던 작은 두 개의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2013년 8월, 국내 최초로 무한상상실을 개소하였다. 하나의 건물은 ‘상상토의실’이라고 이름 붙였고, 이곳에서 아이디어의 발상을 위한 ‘상상반짝 프로그램’과 아이디어의 실현을 위한 설계 및 제작과정을 정의하는 ‘상상노하우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하였다. 또 하나의 건물은 ‘상상공작실’이라 이름을 붙였으며, 이곳에 대표적 디지털 제조 장비인 3D 프린터와 레이저 컷, 수치제어조각기 등을 두고 ‘상상토의실’에서 건너온 설계 자료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실제 물건으로 탄생시키는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었다.


운영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아이디어 발상을 위한 ‘상상반짝 프로그램’은 기존에 각종 교육기관에서 하고 있는 어린이 ‘창의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이해되어 많은 이용자들과 함께 좋은 성과를 내었으나 거기까지였다. 대다수의 이용자가 초중등학생에 머물다 보니 다소 난해할 수도 있는 제작방법에 대해서는 고민하기 싫어하거나 피로감을 느끼는 경향이 강했고, 오히려 무한상상실이 아이디어만 도출해 내면 시제품을 제작해 주는 곳으로 오해를 산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 국내 발명대회에 출품되고 있는 작품들 중 많은 수가 아이디어 보유자의 손에서 제작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지 않게 놀랐다. 독일의 교육전문가 한 분과 만나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독일은 발상수업 이전에 풀이나 가위, 더 나아가서 못이나 망치, 끌 등의 수공구 사용법을 먼저 아이들에게 가르친다고 하였다. 이에 비해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아이디어를 글로 적어 제출하고, 때로는 ‘지식재산권’ 교육을 통해 ‘내 개념’으로만 하고 만족하는 국내 현실을 듣고 보면서 무한상상실이 해야 하는 일이 ‘발상수업’보다는 내가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 보는 ‘창작경험의 제공’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아이디어의 구현방식을 설계하는 ‘상상노하우 프로그램’의 인기가 저조했던 반면, 자유롭게 디지털 제조 장비를 쓸 수 있도록 서비스했던 ‘상상만들기 프로그램’은 인기가 많았는데 이용자들은 주로 성인들로 이미 3D 프린터, 레이저 컷 등의 사용에 익숙한 예술가, 건축가 및 프리랜서 엔지니어 등이었다. 특정한 조직에 몸담고 있지 않은 이들은 무한상상실의 개소시간인 주간에도 쉽게 방문하여 장비를 사용하였고, 재미난 아트 작품이나 구조모형, 작동기기 등을 만들어서 다른 방문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또한 필자에 비해 이미 ‘메이커 운동’에 대한 철학과 경험이 있던 이분들 덕분에 추후 무한상상실이 확장되는 데 많은 조언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상상공작실’을 운영하면서 이들 성인 메이커들이 단순한 서비스 소비자로서 무한상상실을 이용하는 것을 넘어 서비스 생산자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운영기간 중 이들은 다른 아마추어 메이커들에게 때로는 자연스런 조언이나 교육 등을 제공하였고, 때로는 메이커들 간의 상호교류를 통해서 서로의 분야를 넓히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또 한 가지는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메이커스페이스가 자칫하면 민간에서 어려운 조건 속에 운영 중인 메이커 스페이스나 소공인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실제 무한상상실 사업이 전국적으로 실행되면서 유료로 메이커 워크숍 등을 진행하던 몇몇 메이커스페이스들이 문을 닫는 모습을 목격했다. 또한, 전국적으로 많아지는 메이커스페이스들이 청계천이나 문래 등에서 영업 중인 소규모 가공집들의 먹거리를 위협하지 않는지도 고민했던 부분이다.

이듬 해 무한상상실이 500평 내외의 대형 공간으로 확장하게 되었고 고민하던 부분들을 담아 새롭게 공간을 구성하였다. 우선 아이디어 발상수업은 최소화하였고 다양한 ‘만들기 경험’의 제공이 가능한 장비와 시설들을 구축했다. 추가된 것에는 별도의 디자인실, 전자부품 작업실, 전통적인 수공구 및 전동공구 보유공간, 페인팅 부스 외에도 녹음 및 촬영 공간 등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메이커 구호인 ‘배우고(Learn), 만들며(Make), 공유하라!(Share)’에 맞게 운영 프로그램들의 카테고리를 나누었다. ‘다빈치 아카데미’란 이름 아래 기존의 아이디어 발상프로그램과 더불어 성인대상 워크숍이나 세미나, 외부 기관과의 공동 프로그램 운영 등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들을 진행하였다. 또한 메이커들로부터 공공성 있는 주제에 대한 제안을 받아 아이디어 실현에 필요한 재료비나 시설이용을 지원하였으며, ‘메디치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지막으로 도출된 성과품들에 대해 전시를 하거나 메이커들이 모여 서로 경험을 공유하는 이벤트를 ‘장영실 두레두레’라고 불렀다.

새롭게 구성된 무한상상실은 다양한 만들기 도구들이 가득 찬 공간이었으며, 미국의 테크숍 운영모델을 참고하여 안전 및 장비 기본교육을 수료하고 테스트가 끝난 이들에 한해서 개인카드(능력카드)에 해당 장비 스티커를 붙이고, 장비 이용을 허가해 주었다. 그로부터 약 3년 간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무한상상실을 운영했다. 많은 메이커 분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이 진행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다만, 이 기간 동안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들에게 ‘만들기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얼마나 성공했는지 따져 본다면 아직 무한상상실은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무한상상실의 주 이용자들은 ‘전문’ 메이커들이었고 평범한 일반인들에게는 무한상상실을 이용할 ‘이유’도 ‘여유’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이들에게 ‘여유’를 줄 수 없었다면 무한상상실을 방문할만한 최소한의 ‘이유’나 ‘명분’을 제공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실제로 전문 ‘메이커’들이 참여한 여러 의미 있는 ‘다빈치 프로젝트’의 과정과 성과가 일반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을지 생각해 보면, 프로젝트의 의의나 가치에는 공감해도 그 ‘전문적인’ 손길을 거친 결과물들을 볼 때 무한상상실 이용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다. 오히려 내 아이의 망가진 장난감을 수리하거나, 탁자 위에 둘 간단한 인테리어 소품 등을 만들 수 있다는 등의 생활 속 니즈를 충족시키는 사례를 보였다면 일반인들을 보다 많이 ‘메이커계’로 끌어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 메이커나 코딩교육에 VR이나 드론, 3D 프린팅 등 전문적인 주제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씁쓸함이 생기는 것은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또한, 예전 독일의 뮌헨에 있는 팹랩(Fab Lab)을 갔을 때 만났던 메이커들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주로 야간에 메이커로 활동하는 이들은 실은 보쉬(Bosch)나 SAP 같은 기술분야 회사에 근무 중인 회사원들이었다. 이들에게는 ‘디지털 제조기술’이 회사에서 급여를 받으며 일하는 데 사용하는 것임과 동시에 퇴근 후에는 팹랩에서 개인적으로 만들고 싶었던 무언가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한상상실에서 만났던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일하는 한 메이커는 본인의 취미생활 조차도 회사에서 아는 것에 대해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직원이 보유한 ‘기술’이나 ‘지식’의 경우, 그것이 회사가 사업을 위해 비밀스럽게 그 직원에게 전수한 것이라면 해당 직원이 그것을 악의적으로 퍼뜨리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충분하겠으나, 그로 인해 한 개인이 본인의 취미생활조차 자기검열을 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사회라면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예전 메이커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여유 시간의 기술’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기술 보유자들이 쉽게 사회 속에 나와 열린 모습으로 그들의 노하우와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한상상실의 성인 이용자는 꼭 청년이나 대학생이어야 할까?’하는 물음이 든다. 현재에도 공공기관에서는 청년 창업을 외치며 운영자 본인도 해보지 못한 ‘창업’이라는 위험한 도전에 청년들을 내몰고 있다. 대기업 중심에서 벤처 및 중소기업으로의 산업구조 개편이 국가적으로 옳은 방향이라 할지라도 젊은 청년 하나하나의 인생을 운영자가 쉽게 재단하고, 어려운 길로 몰아세우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정책들의 뒤에는 이미 ‘창업’을 해서 수십 년 이상 삶을 영위하고 있음에도 주목받지 못하고 사그라져 가는 ‘소공인’들이 있다. 이들은 지난 세월 어려운 경기 속에서도 신발이면 신발, 옷이면 옷 등등 나름의 노하우를 개발하고, 또 판로를 개척해 가며 ‘생존’해 왔다. 이들에게 ‘디지털 제조기술’이 접목됨으로서 나타나는 시너지는 이제 갓 사회에 발을 내딛고 있는 청년들에 비해 그 효과가 결코 적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메이커 운동은 어찌 보면 청년들의 ‘창업이나 창직’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 미래 꿈나무인 아동 및 청소년들의 ‘새로운 교육’에 관한 것일 수도 있으며, 보다 근본적인 ‘문화’와 관계된 것일 수도 있다. 조직이 있고, 역할별로 부서가 분리된 공공기관에서 ‘메이커 운동’이라는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세계적 흐름을 정책화하여 실행하려 할 때에 이것을 ‘창업운동’으로 볼 것인지 ‘교육운동’으로 볼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문화운동’의 영역에서 다룰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공공기관의 어느 조직, 어느 부서에서 사업화되던지 간에 ‘소비에서 생산으로의 사회변화’에 ‘메이커 운동’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점이고, 급격한 산업화로 인하여 여유시간에 기술을 가지고 놀아본 역사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공공기관의 ‘메이커 운동’에 대한 올바른 참여가 분명 그 ‘변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직장인 메이커가 제작한 아기 걸음마 훈련로봇(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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