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정조사 조심태 어찰첩 正祖賜 趙心泰 御札帖

경기도유형문화재 제299호





〈정조사 조심태 어찰첩〉은 정조가 수원부사, 화성유수, 장용대장을 역임한 조심태趙心泰(1740~1799)에게 보낸 어찰을 모은 첩이다. 어찰은 모두 13통인데 2통은 2장의 종이에, 나머지 11통은 1장의 종이에 썼다. 조심태가 수원부사로 임명된 1789년부터 장용대장으로 활동하던 1798년 사이에 정조가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정조가 수원부유수 조심태에게 보낸 어찰(1796년 9월경), 2009 ©수원화성박물관


정조가 수원부유수 조심태에게 보낸 어찰(1793년 12월경), 2009 ©수원화성박물관


조심태는 1740년(영조16) 1월 25일에 충청수사, 경기수사, 삼도통제사 등을 역임한 조경趙儆(1677~1743)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고려후기의 문신이었던 조인규趙仁規의 후손인데,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집중執中, 시호는 무의武毅이다. 조심태는 병마절도사를 지낸 죽산竹山 안윤남安允福의 딸(1736~1799)과 결혼하여, 아들 조기趙岐를 두었다. 조심태는 1768년(영조44) 무과 급제하고 여러 무관직을 두루 거쳐 1789년 수원부사를 역임하였다. 이때 현륭원顯隆園을 옮겨오는 일과 수원의 도시 기반 시설을 구축하는 일 등 어려운 임무를 차질없이 처리하였다. 이후 총융사·금위대장·어영대장 등을 지내다가 1794년 승격된 화성유수로 다시 제수되었고 수원화성 축성의 주요 직책을 겸하였다. 정조가 번암 채제공과 함께 가장 총애하던 무반계 신하였다.


정조가 수원부유수 조심태에게 보낸 어찰(1796년 8월경), 2009 ©수원화성박물관


조심태는 1740년(영조16) 1월 25일에 충청수사, 경기수사, 삼도통제사 등을 역임한 조경趙儆(1677~1743)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고려후기의 문신이었던 조인규趙仁規의 후손인데,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집중執中, 시호는 무의武毅이다. 조심태는 병마절도사를 지낸 죽산竹山 안윤남安允福의 딸(1736~1799)과 결혼하여, 아들 조기趙岐를 두었다. 조심태는 1768년(영조44) 무과 급제하고 여러 무관직을 두루 거쳐 1789년 수원부사를 역임하였다. 이때 현륭원顯隆園을 옮겨오는 일과 수원의 도시 기반 시설을 구축하는 일 등 어려운 임무를 차질없이 처리하였다. 이후 총융사·금위대장·어영대장 등을 지내다가 1794년 승격된 화성유수로 다시 제수되었고 수원화성 축성의 주요 직책을 겸하였다. 정조가 번암 채제공과 함께 가장 총애하던 무반계 신하였다.


정조가 수원부유수 조심태에게 보낸 어찰(1795년 2월경), 2009 ©수원화성박물관



정조가 장용대장 조심태에게 보낸 어찰(1798년경), 2009 ©수원화성박물관


어찰을 살펴보면 정조는 수원에 있던 조심태와 수시로 편지를 교환하면서 현지의 사정을 파악하고 수시로 필요한 조치를 처리해 나갔으며, 모종의 비밀 업무도 지시한 후 그 결과를 기다렸음을 알 수 있다. 조심태는 정조와 서로 밀서를 주고받던 핵심 측근 관료였다. 현재까지 알려진 조심태 관련 정조 어찰첩으로는 유일하며 수원과 관련된 정조어찰을 대표할만하다. 아울러 수원을 중심으로 요동치던 당시의 정국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어찰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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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조선시대(1789~1798년)

      규모/ 1첩 13점 / 38.2×26.7cm

      재질/ 종이

      주소/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1

      지정일/ 2014.08.29

      소유자/ 수원시

      관리자/ 수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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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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