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정조사 박종보 어찰첩 正祖賜 朴宗輔 御札帖

경기도유형문화재 제300호





〈정조사 박종보 어찰첩〉은 정조가 처남인 박종보朴宗輔(1760~1808)에게 보낸 친필 어찰 19통을 노랑색과 분홍색의 고급 색지를 사용해 궁중 장황으로 꾸민 중요한 어찰첩이다.

내용은 정조가 박종보의 안부와 궁궐 출입 여부를 묻거나 하사한 선물의 목록이 대부분으로 처남인 박종보와 매우 친밀한 사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박종보는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박씨綏嬪朴氏(1770~1822)의 큰 오라버니이다. 수빈박씨는 1787년(정조11) 2월 8일에 삼간택에서 정조의 빈嬪으로 정해졌다. 박종보의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아버지는 판돈령부사 박준원朴準源(1739~1807)이며 어머니는 증贈 이조참판 원경유元景游의 딸(1740~1783)이다. 1787년 누이동생이 빈으로 간택되자 음보蔭補로 장악원 주부에 등용되고 사옹원 주부와 의빈부·충훈부 도사를 지냈다. 1789년 생원시에 합격했고 이듬해 정조의 아들[純祖]이 태어나자 왕명에 따라 궁에서 원자元子를 보육하는 책임을 맡았다. 1800년(순조즉위) 정조 붕어崩御 후 정순왕후貞純王后가 수렴청정 할 때 가까운 친척을 임금 측근에 두어야 한다고 하여 동부승지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공조참의가 되고 순조가 천연두를 앓았을 때 입직한 공로로 호조참판이 되었다. 1803년 형조참판을 거쳐 성천부사·춘천부사 등을 지냈고 1806년 내직으로 들어와 사도시 제조가 되었다. 그때 대신의 천거로 호조판서에 임명되나 ‘음관蔭官이 한 사람의 천거로 호조판서가 된 것은 유례가 없다’고 세 차례 상소하며 사양했다. 비변사 당상으로 다시 임명되나 나가지 않았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정조사 박종보 어찰첩 표지, 본문, 2009 ©수원화성박물관


어필의 작성 연대는 1788년(정조12) 이후 정조 재위 후년으로 추정된다. 표지는 오조룡五爪龍 두 마리를 직조한 원룡문단圓龍紋緞으로 쌌고, 그 위로 ‘정종대왕어찰正宗大王御札’이란 제첨題簽이 있다. 안쪽 어찰은 장지로 회장했는데, 어찰이 작으면 회장과 어찰 사이를 여러 색상의 쇄금지灑金紙로 붙였다.

보존상태는 제첨의 ‘正’ 자가 벌레 먹고 겉면 비단의 일부 오염을 빼면 양호한 편이다. 안쪽 회장 부분에 위아래로 충식蟲蝕이 있으나 어찰은 크게 손상되지 않았다. 정조가 처가에 보낸 어찰을 모은 것으로 왕실의 일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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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유형문화재 #전적류 #정조 #수원시

@김영화 @김다혜

    • 시대/ 조선시대(1788~정조연간)

      규모/ 1첩 19점 / 38×24.5cm

      재질/ 종이

      주소/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1

      지정일/ 2014.08.29

      소유자/ 수원시

      관리자/ 수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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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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