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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도시농부, 별을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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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도시농부, 별을 심다


수원 <도토리시민농장> 대표 이진욱


수원시 호매실동에 위치한 칠보산 아랫마을인 '자목마을'에는 도시농업 공간인 ‘도토리시민농장’이 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던 호매실동은 1990년대 아파트 단지가 생겨나면서 옛 모습은 간 데 없고 콘크리트 도시로 변하게 되었다. 아직 개발되지 않고 유일하게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마을이 자목마을이다.



▲ <도토리시민농장> (좌) · (우)photo ©김주원


마을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진욱 대표는 칠보산 놀이숲, 경작체험, 자연물 목공교실, 텃밭 동물농장 등을 운영하며 도시농부로서 살아가고 있다.


칠보산과 함께 시작된 자연 속의 삶


현대자동차에서 홍보업무를 하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시작된 수원에서의 삶이 오늘을 만들어 낼 줄은 처음엔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그는 17년 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수원으로 이주해 2004년부터 '칠보산 도토리교실'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숲과 하천 생태활동을 벌여 왔다.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된 '숲연구소 아카데미 강좌'가 그를 생태환경교육의 장인 '칠보산도토리교실'로 이끌었다.


'칠보산도토리교실'에서는 아이들의 체험학습을 위해 텃밭도 운영하였다. 그러던 중에 '수원시 도시생태농업 육성조례'가 제정되고 '도시농부 양성을 위한 농부학교'가 개설되었다. 이진욱 대표는 도시농부 과정과 더불어 CEO 과정까지 이수하면서 텃밭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시를 썼던 그는 초등학생들과 함께 칠보산 중턱에서 글쓰기도 시작했다. 택지개발이 되기 전까지 숲 속 학교에서 아이들과의 글쓰기 수업은 몇 년간 지속되었다.


2010년부터는 6000여㎡(2000여 평)의 농지를 빌려 체험농장인 '도토리시민농장'을 시작했다. 환경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텃밭을 운영할 때도 친환경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에 수원의 민간농장에서는 친환경적으로 농장을 하는 곳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비닐, 비료,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 도토리시민농장을 운영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8년째 친환경농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 <도토리시민농장>에서 운영하는 칠보산나무공예연구소(좌) · 도토리시민농장 풍경(우) photo ©김주원


도토리시민농장에 텃밭농사를 하러 오는 분들과 처음 인터뷰를 할 때 그가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첫째, 이곳은 도시농부들이 쉼을 위해 오는 곳이니 작물에 너무 예민해 하지 말고 자기 것에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곳이기도 하고, 내 것에 욕심을 가지게 되면 서로 맘을 다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둘째, 친환경 농사를 위해 비닐 사용을 하지 못한다든가 하는 여러 원칙으로 인해 번거롭고 힘든 점이 있다는 것.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는 이야기한다. 별을 심으라고. 농부는 별을 심는 사람이다. 삶에 지칠 때 깜깜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힘을 얻을 수 있게 작은 별의 씨앗을 심으라고 한다.


진정한 농부는 하늘을 본다. 왜냐하면 농부가 짓는 농사에는 날씨가 굉장히 중요하니까. 반면 도시농부들은 대개 날씨에 민감하지 않다. 도시농부는 날씨에 영향을 받기보다는 자신의 일이나 업무가 없는 시간에 주로 밭에 나온다. 하지만 마음과 정성만은 농부들이 하늘을 보는 것처럼 농사에 임하라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수확할 때도 욕심을 내려놓고 이웃들과의 나눔을 생각하라고 한다.



▲ <도토리시민농장> 주민 풍경 photo ©김주원


개발과 함께 사라지는 자연, 그리고 꿈


텃밭 농사를 하다보면 여러 가지 불편함을 경험하지만 또 새로운 가르침을 얻는다. 바로 비워내고 받아들이는 법이다.


"가지려고 하기보다 내어줄 때 더 많은 것으로 채워지는 것을 체험하고 깨달았습니다. 자연은 삶을 가르칩니다."


농사를 마치고 맞는 저녁이 되면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가지만, 낮 시간에 쌓인 육체적 고단함은 인문학보다는 잠으로 이끌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칠보산이 품어주는 삶 그 자체로서 인문학적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


"건강한 땅과 하늘이 건강한 생명을 내어 줍니다. 도시농업은 도시 근교에서 단순하게 농업을 체험하는 것을 넘어 나 자신을 찾고 마을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지치고 힘든 이들이 건강한 노동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달래는 영역이 바로 도시농업이고,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자연에 기대어 살아갈 미래입니다."


도시농업을 통해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일궈낼 수 있는 것은 물론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 우리 농산물에 대해서도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이다.



▲ <도토리시민농장> 대표 이진욱 씨 photo ©김주원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그를 힘들게 하는 것들도 늘었다. 자연이 아프면 그의 몸도 마음도 아프다. 이전에는 이곳에 지금보다 더 많은 숲이 있었지만, 개발로 인해 많은 나무들이 베이고 사라졌다. 숲들이 하나 둘씩 사라질 때마다 그곳에서의 추억도 함께 베이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상실감을 시로 토해내곤 했다. 지금 그가 있는 곳도 자신의 소유가 아니기에 언젠가 이곳에서 꿈꾸고 있는 것들이 숲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워내는 삶을 배운 대로 또 새로운 몸짓과 노력으로 채워질 것을 기대한다.


그는 2016년부터 시작된 '칠보산나무공예연구소'에 새로운 꿈을 담았다. 자연물을 이용한 목공예 작업을 통해 자연을 느끼고 만지며 교감하는 시간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여전히 칠보산이 품어주는 삶을 이어나갈 것이다.



▲ <칠보산나무공예연구소> 풍경들 photo ©김주원


스스로 짓고 만드는 ‘자작(自作)’의 삶


"생각해 보면 나는 많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도시농부의 삶, 아이들과 함께 자연물 목공을 하는 삶, 글 쓰는 삶. 제 본명은 이진욱이지만, '자작나무'라는 닉네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하나. "제가 왜 자작나무인지 아십니까?" 칠보산의 나무인 걸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답을 몰라 고개를 저었다.


"자작나무의 자작은 '자작(自作)', 즉 스스로 짓다, 만든다는 뜻이지요. 글을 만들고 짓는다는 뜻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것들을 손수 짓고 만들며 자족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처음 도토리교실에서 글을 쓸 때 자작나무의 껍질을 벗겨 편지지로 썼던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덧붙여 주었다. 또 '자작(自作)'에는 '땅에 자기가 직접 농사를 지음'이란 뜻도 있다. 글을 쓰고 농사를 짓는 그에게 '자작나무'라는 이름은 그를 정확하게 말해주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자작(自作)이라는 이름이 품은 뜻처럼 사라지지 않을 땅에 오랫동안 별을 심길.


2018.05.18



김현주


골목잡지 <사이다>를 발행하는 수원의 ‘더 페이퍼’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출판기획과 취재, 원고 작업 등 프리랜서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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