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남이장군 묘 南怡將軍 墓

경기도기념물 제13호





조선전기의 무신인 남이南怡(1441~1468)의 묘이다. 남이는 의령남씨宜寧南氏로 1457년(세조3) 17세 때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세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여러 무직武職을 역임하였다. 이시애李施愛의 반란 때 대장으로 출정하여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여진의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할 때도 선봉으로 적진으로 쳐들어가 적을 무찌른 공으로 이등군공二等軍功에 책록된 후 26세의 나이에 병조판서가 되었다. 예종이 즉위하자 유자광柳子光의 무고로 처형되니 28세였다.

이것을 소위 남이의 옥獄이라 하는데 장군이 궐 안에서 숙직 중 혜성이 나타나자 ‘혜성이 나타남은 묵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을 나타나게 하려는 징조다’라고 말한 것을 유자광이 엿들었다. 유자광은 남이가 역모를 꾀한다고 모함하여 문초 끝에 죽였다. 이 사건으로 임진왜란 전까지는 그는 난신亂臣으로 인식되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일부 야사野史에서는 유자광의 모함으로 날조된 옥사獄死라고 규정하고 젊은 나이에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은 영웅적 인물로 기술하고 있다. 그 뒤 1818년(순조18)에 이르러 남이의 후손인 우의정 남공철南公轍의 주청으로 관작이 복구되었다.


남이장군 묘,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남이장군 묘 문인석(좌),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묘역은 2단으로 쌓인 석축대 위에 조성되어 있고 사성莎城으로 둘러 싸여 있다. 봉분은 쌍분으로 부인과의 합장묘이며 최근에 설치된 호석護石으로 단장되어 있다. 원래의 석물은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 문인석 1쌍이 있을 뿐이다. 묘비는 1971년에 건립한 것이며, 상석·혼유석·향로석, 그리고 망주석 1쌍은 최근에 조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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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조선시대

      규모/ 1기

      / 쌍분, 묘비 1기, 상석 1기, 문인석 1쌍, 망주석 1쌍

      주소/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산145

      지정일/ 1973.07.10

      소유자/ 의령남씨 의산위파 대종중

      관리자/ 의령남씨 의산위파 대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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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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