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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서희장군 묘 徐熙將軍 墓

경기도기념물 제36호





고려시대의 문신인 서희徐熙(942~998)와 부인 청주한씨淸州韓氏의 합장묘이다. 960년(광종11)에 갑과로 과거에 급제한 뒤, 광평원외랑·내의시랑 등이 되었다. 983년(성종2) 병관어사가 되고, 얼마 뒤 내사시랑평장사를 거쳐 태보, 내사령의 최고직에 올랐다. 서희의 가장 중요한 외교적 활약은 993년(성종12)에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한 거란의 장수 소손녕蕭遜寧과 담판해 유혈의 전투 없이 적을 물리친 것이다. 그 결과 994년부터 3년간 압록강 동쪽의 여진족을 축출하고 성을 쌓아 압록강까지 영역을 넓히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서희장군 묘, 1978 ©여주시


묘역은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봉분은 상단에 위치해 있으며 사각 호석護石이 둘러져 있다. 쌍분의 중앙 전면에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 묘비가 있는데, 비음에 글씨가 없다. 각 봉분 앞에는 혼유석 없이 4개의 고석으로 받친 상석이 있다. 중계에 장명등과 석인 2쌍이 배치되어 있다.

장명등은 동측에만 남아있는데, 체석의 화강암 석질이 주변 석물과 다르고 옥개석과 맞지 않아 후대에 다시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옥개석은 2개가 겹쳐있는 특이한 형태인데, 원래 옥개의 원수가 파손되어 하나를 더 올린 것으로 보이며 이 둘은 원래 한 쌍의 장명등 옥개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모지붕형 옥개로 하단에 화사석과 연결되는 부분을 두 줄로 파내어 끼우도록 되어 있다. 화창을 요凹자형으로 윗부분까지 파낸 것으로 보아 15세기 중·후반 양식 장명등으로 생각된다.


서희장군 묘,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봉분 쪽의 문인석 1쌍은 홀을 든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인데, 복두의 각은 X자로 교차한 교각交脚이다. 손은 숨겨져 있고 저고리 소매는 노출되어 있다. 무인석은 갑옷이 아닌 철릭天翼을 입고 소모자小帽子를 쓴 채 세장한 장검을 잡고 있다. 고려와 조선초기 묘제 연구에 의미가 있는 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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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고려시대

    규모/ 1기

    / 쌍분, 호석, 묘비 1기, 상석 2기, 계체석, 장명등 1기, 문인석 1쌍, 무인석 1쌍

    주소/ 여주시 산북면 후리 산53-1

    지정일/ 1977.10.13

    소유자/ 서씨종중

    관리자/ 서씨종중(서강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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