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성혼선생 묘 成渾先生 墓

경기도기념물 제59호





조선중기의 문신 우계 성혼牛溪成渾(1535~1598)의 묘이다. 1551년 (명종6)에 생원과 진사의 초시에 합격하였으나 복시에는 응하지 않고 백인걸白仁傑 문하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선조 초부터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다가 율곡 이이李珥의 권유로 관직에 나가 이조참판이 되었다. 임진왜란 중에는 의정부 우참찬右參贊에 오르고 1594년(선조27)에는 좌참찬이 되었다. 그가 죽은 뒤 동인과 서인의 당쟁인 기축옥사己丑獄死와 관련되어 1602년(선조35)에 관직이 박탈되었지만 1633년(인조11)에 다시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성혼선생 묘,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묘역은 사성莎城이 감싸고 있으며, 용미龍尾가 있는 봉분은 상단에 위치해 있다. 상단과 하단을 구분하는 계체석에 걸쳐서 중앙 봉분 앞에는 상석 구성물이 있고, 동측에는 비석이 있다. 상석과 향로석 및 준석樽石은 근래에 개비하였고, 원래 상석으로 보이는 석물은 묘역 동측 후면으로 옮겨 산신석山神石으로 사용하고 있다.


성혼선생 묘비,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성혼선생 묘 동자석(우), 동자석(좌),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묘비석은 중앙을 향하여 배치되었는데, 팔작지붕형 옥개석은 용마루와 내림마루가 표현되어 있고 하단에는 공포栱包 구조를 뚜렷하게 조각하였다. 화강암 대석은 장식없이 우람하게 조성했다. 비석의 대리석 비신에 새긴 비문은 김집金集이 짓고 윤순거尹舜擧가 써서 1649년 (인조27)에 건립했다. 배계절拜階節에 한 쌍의 동자석이 있는데, 사각기둥형이며 풍화로 인해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쌍계雙紒를 하고 손에는 지물을 들고 있다. 차일석遮日石은 상단과 하단의 좌우에 4개가 있다. 



성혼선생 신도비,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묘역 입구의 신도비는 대리석으로 옥개와 비신을 만들고 화강암으로 대석을 만들었다. 옥개는 특별한 장식 없이 단순한 지붕 모양이며, 비문은 김상헌金尙憲이 짓고 김상용金尙容이 전액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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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조선시대

      규모/ 1기

      / 단분, 상석 1기, 향로석 1기, 동자석 1쌍, 묘비 1기, 신도비 1기

      주소/ 파주시 파주읍 향양리 산8-2

      지정일/ 1981.04.17

      소유자/ 우계문화재단

      관리자/ 우계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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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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