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작가의 유년 경험을 담은 전쟁 문학의 최고봉

문학-현대-산문 분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05








작가의 유년 경험을 담은 전쟁 문학의 최고봉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달개비만큼 흔하게 나 있는 풀,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벗겨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나서 입에 군침이 돌게 만드는 싱아는 작가에게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원천이다. 소설로 그린 작가의 자화상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작가에게 생기의 젖줄인 개성 박적골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의 유년기인 1930년대부터 6·25를 맞아 온 가족이 풍비박산 나던 1950년까지를 유려한 필치로 그려낸다. 이 시기에 작가는 일제 강점기 말과 해방을 거쳐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는다.


소설은 굶주린 자식을 위해 기생 옷을 바느질해가면서 아들딸을 억척스럽게 키워낸 비장하고 맹목적인 모성애의 소유자인 엄마와 그에 버금가는 기질을 가진 작가의 대결 의식을 다룬다. 양반 가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교육열이 강한 엄마는 복막염으로 남편을 잃은 것을 무지몽매한 시부모 탓으로 돌리고 자식들이라도 어떻게든 번듯하게 키우겠다는 욕심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영리한 여자아이인 화자인 나는 글을 읽고 쓰는 것을 무척 좋아하여 가족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어 한다. 똑똑하고 의지가 강한 오빠는 의용군에 강제로 끌려갔다 온 뒤 만신창이가 된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엄마의 말뚝』 연작을 비롯한 작가의 작품들에서 소설적 탐구의 대상이 되어 온 작가의 가족 관계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작가의 문학적 모태 또는 원형을 파악할 수 있다. ‘유년의 기억’을 다룬 이 소설이 인기를 얻자 작가는 1951년부터 1953년 결혼할 때까지 20대의 이야기를 그린 후속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내놓았다. 이 작품은 일부 평론가로부터 ‘전쟁 문학의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작가는 인터뷰집 『박완서의 말』에서 “서울에 오고 중일전쟁, 2차 세계대전, 가난, 쌀 배급, 해방, 6·25, 나를 스쳐 간 문화의 부피를 생각할 때 500년은 된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천부적인 이야기꾼’이 될 경험을 내부에 충분히 축적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장석주는 『장석주가 새로 쓴 한국 근현대문학사』에서 “박완서는 직접적인 체험이라는 자산이 풍부한 작가다. 그래서 자기가 겪은 세월, 보통 여자로 살아온 체험을 ‘우려먹은’ 소설들을 부지런히 써내 나라 안에서 손꼽는 대작가로 우뚝 선다. 자기 체험을 알뜰하게 ‘파먹는’다고 누구나 다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장석주는 같은 글에서 “작가의 실제 체험이 투영된 『엄마의 말뚝』 연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은 ‘허구를 완전하게 배제한’ 악몽 같은 시대 체험을 특유의 살아 있는 문체 속에 담아내 문학적 평가와 대중의 지지를 함께 끌어낸다. 그에게 소설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밟힌 개별자가 쏟아낸 울음이다. 박완서 소설은 약자들이 쏟아내는 울음이고, 신음이며, 비명”이라고 격찬했다.


1993년 중앙문화대상을 수상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20만 부가 팔린 다음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아가다가 2002년 2월 「느낌표」 추천 도서가 되어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박완서가 1989년에 출간한『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또한 이미 밀리언셀러에 올랐었다.


한 번 결혼한 적이 있는 이혼녀 차문경과 아내와 사별한 홀아비인 김혁주는 35세로 대학 동창이다. 두 사람이 오다가다 우연히 만난 건 3년 전, 각각 비슷한 시기에 외로운 신세가 되고 난 지 얼마 안 돼서였다. 그 우연의 일치 때문에 그들은 그 만남에 우연 이상의 운명적인 걸 느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합하는 데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여주인공 문경이 가부장제 질서와 여성 차별의 사회적 통념에 맞서서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는 당당함을 보여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개인의 삶을 중시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에 젊은 여성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소설 속에서 문경은 자신의 아들에게 거는 유일한 꿈이 “남자로 태어났으면 마땅히 여자를 이용하고 짓밟고 능멸해도 된다는 그 천부적인 권리로부터 자유로운 신종 남자로 키우는 거”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면서 자신의 가장 찬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아이를 자신이 키우겠다고 선언한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1990년이었다.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자마자 맞이한 1990년대는 개인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여성을 지배했던 사랑(결혼)이라는 전통적 가치에서 자기실현을 위해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새로운 가치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남자가 여자를 억압하는 사회에 대한 고발이라 볼 수 있는『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여성신문〉에 연재하는 동안에 ‘페미니즘’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2003년에 MBC에서 드라마로 방영하기도 했다. 국내 최초로 북디자이너를 천명한 정병규가 디자인한 이 책의 표지는 당시 유행하던 큰 글씨와 원색을 배격하고 단색에 작은 글씨로 잔잔하게 디자인한 파격을 선택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공격적 페미니즘’ 소설들이 봇물을 이뤘다. 장석주는 같은 책에서 박완서가 여성 문제를 다룬 소설들을 “남성 지배의 역사가 강요한 죽음의 침묵을 뚫고 솟아오르는 여성의 ‘울음이자 노래’”라고 평가했다. 1992년에는 양귀자의『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공지영의『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경자의『혼자 눈뜨는 아침』 등이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페미니즘 소설이 봇물을 터지게 만든 소설이라 볼 수 있다.


박완서는 마흔이 되던 해에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나목』이 당선되면서 뒤늦게 문단에 나왔다. 이후 장편소설로는 『휘청거리는 오후』 『도시의 흉년』 『아주 오래된 농담』 등을, 소설집으로는『엄마의 말뚝』 『저문 날의 삽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등을 발표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엄마의 말뚝』

박완서 지음, 세계사, 2012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박완서 지음, 세계사, 2012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05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이자 출판평론가다. 1982년 출판계에 편집자로 입문해 1983년 창작과비평사(현 창비)로 옮긴 뒤 만 15년 동안 영업자로 일했다. 1998년 삶의 방향을 바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설립했다.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를 창간해 올해로 19년째 발간해오고 있다. 2010년 한국 최초의 민간 도서관 잡지인 월간 〈학교도서관저널〉을 창간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책 읽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열정시대』『베스트셀러 30년』『마흔 이후, 인생길』『나는 어머니와 산다』『인공지능 시대의 삶』『하이콘텍스트 시대의 책과 인간』 등 20여 권의 지은 책과 다수의 공저가 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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