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백천장선생 묘 白天藏先生 墓

경기도기념물 제86호





고려시대의 문인인 백천장白天藏(생몰년미상)의 묘이다. 백천장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수원 백씨 중시조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 문과에 급제한 후, 고려 조정에서 한림원 정4품 학사로 왕명을 받들어 외교문서를 작성하고 과거를 관장하며 서적을 편찬하였고, 서연관으로서 왕에게 강의하고 시종관으로서 왕을 시종하는 등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이후 중서문하성의 정당문학으로 국정을 논의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원나라에 유학하여 이부상서를 거쳐 우승상·금자광록대부 등을 역임하였다. 원나라의 순제에게 나이가 많아 고국에 돌아갈 것을 청하여 귀국한 후 수성백隨城伯에 봉해졌고 그 후 수원에 살다가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을 들은 고려 충선왕이 애도하는 마음에 예관을 보내 제사를 치르게 하고, 시호를 문익文益이라 하였다.

백천장의 묘는 기안동 기안초교 뒤편의 구릉에 동향하여 있다. 부인 삼한국부인 월성최씨月城崔氏와 단분으로 합장하여 있으며, 묘역 아래에는 1975년에 제작한 신도비, 숭모재라는 재실 등이 있다. 백천장의 묘는 고려말의 원형이 남아있지 않으며, 전체적인 묘제 및 대부분의 석물은 현대에 제작한 것이다.


백천장선생 묘,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묘비는 봉분의 동쪽에 2기가 있는데 1기는 1813년에 세운 것이고, 1기는 1980년에 새로 세운 것이다. 묘소 입구 약200m 지점에는 1975년에 건립한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묘역 석물로는 신도비 1기, 호석護石, 묘비 2기(新1980·舊1813), 혼유석 1기, 상석 1기, 계체석, 향로석 3기, 장명등 2기(新·舊), 석양 1쌍, 망주석 1쌍, 문인석 2쌍(新·舊)이 있으나 대부분 현대에 제작한 것이다. 이 중 옛 석물로는 1813년에 세워진 묘비, 장명등 1기, 문인석 1쌍이 있다.

1813년에 세워진 묘표는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의 단순한 형태이다. 비제는 「정당문학 수원백천장지묘政堂文學 水原白天藏之墓」이고 건립자는 17세 후손인 백홍수白鴻洙이며, 뒷면에는 간략한 음기陰記가 있다.


백천장선생 묘 문인석(좌), 문인석(우),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백천장선생 묘 장명등,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장명등은 조선초기의 양식을 지니고 있으나 머릿돌과 몸돌의 형태가 다소 어색하다. 개석은 사모지붕의 형태이고, 체석體石과는 다른 재질이다. 화창火窓이 매우 크며, 대석이 간주형태로 얇고 긴 15세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문인석 1기는 조선전기의 양식이고, 1기는 현대에 새로 제작한 것인데 조선초기의 문인석은 마모가 많이 진행되었다. 형태는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이고 홀을 쥐고 있는 형상이나 세부 장식은 명확하지 않다. 얼굴표현과 뒷면의 문양표현은 거의 마모되었으며, 옆면의 3단 옷주름은 계단식으로 단순하게 표현하였다.

백천장의 묘는 조선 정조 때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을 화산花山으로 옮길 때 10리 이내 묘소는 이장하게 했으나, 이 묘는 조정에서 보호하여 옮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 묘역은 백천장이라는 인물과 경기지역 주요 토착성씨의 묘역을 살펴볼 수 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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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고려시대

      규모/ 1기

      / 단분, 호석, 묘비 2기(구·신), 혼유석 1기, 상석 1기, 향로석 3기, 장명등 2기(구·신), 석양 1쌍, 망주석 1쌍, 문인석 2쌍(구·신), 계체석, 신도비 1기

      주소/ 화성시 기안동 140-1

      지정일/ 1985.09.20

      소유자/ 수원백씨 종중

      관리자 / 수원백씨 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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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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