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법고창신 혹은 성(聖)과 속(俗)의 변증

문화 분야 『우리문화의 수수께끼』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문화의 수수께끼』

주강현 지음, 서해문집, 2018






법고창신 혹은 성(聖)과 속(俗)의 변증


진경환 - 한국전통문화대 교양기초학부 교수






공부는 흔히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민속학 관련 공부는 발로 해야 한다. 그렇다고 엉덩이로 시간과 싸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말이 쉽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기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큰 문제 없이 오히려 조화롭게 진행하는 연구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주강현이다.


현재 국립해양박물관장의 직책을 맡아 중단된 상태이지만, 그는 최근까지 해양 문명 탐구에 깊이 빠져있었다. 한 해의 거의 절반은 해외 답사에 할애할 정도였다. 주위에는 ‘그렇게 해외 답사를 다니면서도 언제 그 많은 책을 쓰느냐’고 놀라는 사람도 많다. 내가 알기로 그것은, 그가 젊어서부터 강도 높게 훈련해온 내공 덕분이다. 지금 우리가 함께 생각해볼 『우리문화의 수수께끼』도 바로 그 온축된 내공의 결과물이다.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한겨레〉에 연재된 다음 해에 출간된 이 책(1~2권)은 이후 여러 번 개정 증보판을 내오다가 올해 한 권으로 된 완결판을 내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60여만 권이 나간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민속학을 포함한 인류학, 신화학과 종교학 분야에서 거의 독보적인 지위를 점유하고 있다. 오랜 세월 ‘우리 문화 교과서’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이 책은 우리가 평소에 궁금해하거나 알 듯 모를 듯 지나쳐 왔던 여러 가지 문화 현상에 대해 상세하고 깊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하다. 근대의 분과학문의 관점과 체계를 가뿐히 넘어서고 있다. 모름지기 문화란 어느 특수한 전공 분야에 한정해 논할 성질의 것이 아님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 민족의 영원한 태 자리인 구들에서부터, 금줄과 왼새끼, 도깨비, 돌하르방, 똥 돼지, 매향(埋香), 모정과 누정, 무당과 신내림, 바위그림, 배꼽, 당나무, 굿, 솟대, 숫자3, 쌍욕과 쑥떡, 여신, 서방질, 장맛, 장례, 장승, 풍물, 황두와 두레까지 실로 우리 문화의 전폭을 풍성하게 담아냈다. 총 스물다섯 장의 파노라마다.


그런데 그것들은 여느 문화 답사기나 문화 해설서처럼 단지 평면적인 설명에 그치지 않는다. 각 장의 구성에는 독특한 방식이 작동하고 있다. 그 구성 방식은 한 마디로 법고창신(法古刱新), 곧 지나간 유무형의 유산을 단지 과거의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물질이나 발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대표적으로 드러난 부분은 제12장 「배꼽, 혁명 혹은 구멍」이다. 이 장은 “배꼽에서 자궁을 생각하며” “우리의 탯줄은 어디에 있을까” “세상의 중심, 삶의 중심” “배꼽에서 혁명을 생각하다” “‘배꼽 섹스어필’의 시대” “다시 혁명을 들여다보며”라는 꼭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태아는 탯줄로 생명을 유지한다. 탯줄은 자궁 속 태반과 이어져 있다. 어둡고 비밀스러운 자궁은 태초의 숨결을 머금고 신화를 창조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자궁의 숨결을 ‘태동(胎動)’이라 불렀으며, 그래서 새로운 움직임을 태동이라고 표현한다. (중략) 배꼽은 바로 이 탯줄의 출구이다. 태아를 세상과 이어주는 구멍이다. 또한 배꼽은 생명의 근원지 그 자체다. 어두컴컴한 자궁에서 탯줄을 따라 생명은 숨을 이어왔다.”


나는 배꼽에 대해 이토록 아름답고도 철학적으로 설명한 예를 보지 못했다. 배꼽은 그리스어로 ‘옴파로스’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두 마리의 독수리를 날리는데 그것들은 세상의 중심에서 만난다. 옴파로스는 바로 그곳, 곧 세상의 중심을 나타낸다. 저자의 설명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구체적이며 포괄적이다.


논의는 그러한 묘사와 해설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그 배꼽에서 역사의 현장을 소환해낸다. “1892년 임진년 여름,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꼭 300년 되던 해다. 세상에는 무언가 큰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하여 민심이 흉흉했다. 그때 선운사 석불의 배꼽 비결(祕訣) 사건이 기름에 불붙”였던 민중의 반란을 불러내는 것이다. 요컨대 저자는 배꼽을 “탯줄의 출구”라는 의미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출구”로 확장한다. 그래서 얻어낸 그의 결론은 “중세 사회를 마감하면서 민중의 혁세사상을 펼치고자 한 동학농민전쟁의 불꽃이 바로 생명의 상징인 배꼽에서 당겨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관념과 현실의 변증법,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르크스가 말한 “추상에서 구체로의 상승”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소위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해석과 그에 따른 서술 구도야말로, 곧 옛것과 새것이 만나 새로운 차원으로 고양되는 ‘법고창신’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풍속의 역사』를 쓴 에두아르트 푹스를 자주 인용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성과 속』을 줄곧 떠올렸다. 엘리아데는 성스러운 것을 속된 것의 반대라고 단언하면서, 그 성스러움은 ‘나타남’을 통해 그 존재를 증명한다고 했다. 소위 성현(聖顯)을 뜻한다. 그러나 그 성스러움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늘 세속적인 것과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성과 속의 변증법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삶은 근원적으로 성과 속의 이중구조를 가진다. 내가 보기에 엘리아데의 이 관점은 『우리문화의 수수께끼』에 변주되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성스러움’에 대한 이해의 방향이나 그 내용은 상이하지만, 둘은 이른바 상동관계에 있는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서술이 여기에 해당한다.


“도깨비굿과 디딜방아 액막이굿이 위기로부터의 집단 탈출에 여성의 성적 상징물을 활용한 것이라면, 줄다리기굿은 집단의 풍요를 비는 풍농굿에서 남녀의 상관(相關)을 적극 활용한 사례다. 어느 경우에도 집단적인 공범의식이 담겨 있다. 적어도 의례 기간만은 어떠한 노골적인 성적 표현도 공식화된다. 성적 상징물을 내세운 일탈된 의례를 통해 성숙한 사회집단으로 성장한다는 면도 있다. 조선시대 지배층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민중은 그야말로 성을 매개로 한 반란의 축제를 곳곳에서 벌였다. 그 축제는 유교적 가치관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기도 했다.”


지극히 세속적인 행위를 통해 현실에서 강력하게 작동하는 지배 권력을 뒤집어엎고, 하비 콕스의 말대로 “세상을 바꾸어 버릴 성스러운 환상”을 꿈꾸었던 민중의 굿, 곧 “성적 제의와 반란의 굿”이야말로 역사 속 ‘성현’의 예라는 것이다.


우리 문화 속에 숨겨져 있는 여러 비밀을 흥미로우면서도 깊게 하나하나 밝혀준 『우리문화의 수수께끼』는 ‘법고창신’과 ‘성과 속의 변증’이라는 사유와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풍속의 역사』

에두아르트 푹스 지음, 이기웅·박종만 옮김, 까치, 2001


『조선풍속사』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2010


『문화의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한길사, 2017







진경환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양기초학부 교수



2000년부터 현재까지 (국립)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양기초학부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전통문화연구소장을 맡아 ‘전통 제대로 알기’라는 장기기획의 일환으로 다양한 주제의 심포지엄을 개최하였고, 그 결과물로 『전통, 근대가 만든 또 하나의 권력』『한국문화와 오리엔탈리즘』『은뢰(恩賴): 조선신궁에서 바라본 식민지 조선의 풍경』 등을 출간했다. 근래에는 ‘조선 후기의 풍속’에 관심을 두면서 『조선의 잡지: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생활상』을 펴낸 바 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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