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웰컴 투 더 리얼월드

사회 분야 『송곳』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송곳』

최규석 지음, 창비, 2015









웰컴 투 더 리얼월드


임지희 - 웹툰PD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가끔 고장 난 신호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모든 신호등이 꺼져 있다. 대체 이 신호등들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잠시 현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09년 쌍용자동차는 법정관리 신청을 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곧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석 달 만에 내놓은 기업 회생안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포함된 건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노조는 즉각 총회를 열고 총파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9년이 지난 2018년 9월, 드디어 해고자 119명을 2019년 상반기까지 전원 복직한다는 내용을 담은 합의안을 발표했다. 9년이 걸렸다.


9년어치의 억울함과 분노와 슬픔과 죽음이 켜켜이 쌓였다. 정권이 두 번 바뀔 동안 해고노동자들은 개인의 삶이 파괴되는 것은 물론이요,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의 삶까지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았고 믿을 건 법밖에 없다는 말이 얼마나 무용하며 힘 있는 자들의 입맛에 맞도록 재해석되어 왔는지 경험했다. 국가는 그들을 외면했고 때로는 국가가 직접 공권력을 해고노동자들을 제압하는 데 쓰기도 했다.


최규석 작가의 『송곳』은 노동쟁의의 과정을 2013~2017년 무려 4년의 시간을 들여 천천히 풀어놓았다. 이 책의 배경인 외국계 대형마트 ‘푸르미’는 쌍용자동차뿐 아니라 여느 사건사고 많았던 실재하는 기업명을 끼워 넣어도 비슷할 우리의 이야기다. 대중에 친근하고 누구나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대형마트’를 배경으로, 사측의 부당 해고에 대항하는 노동조합 운동의 과정을 그렸다.


‘네이버 웹툰’에서 『송곳』은 단연 제목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와 독자들의 마음을 찔러댔다. 배경도 사건도 인물도 너무나도 현실적이라 도무지 엔딩이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았다거나, 최소한 내일의 희망을 꿈꿀 수 있도록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고난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2014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JTBC에서 동명의 드라마로도 제작·방영되었다.


이수인은 평생을 남들보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편이었을지는 모르나, 또한 남들처럼 평범하게 출세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바라는 사람이다. 촌지를 가져올 때까지 매질을 멈추지 않는 선생에게 못 이겨 결국 촌지를 바치는 어머니를 보며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다. 적성과는 상관없이. 생도 시절에는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대대장으로부터 특정 인물을 찍으라는 압력을 받자 투표를 거부하고 공개적으로 정당한 선거를 치르자는 건의를 한다. 누구도 나서서 하지 못했던 용기 있는 행동으로 거의 고립된 채 임관한다. 소속된 부대에서도 공익 제보를 하거나 항명하지는 못한 채 대위로 제대한 뒤, 푸르미에 입사했다.


육사 장교 출신이라는 브랜드는 푸르미에서 이수인을 ‘남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사람들은 출세할 거라고 했고, 그가 필요한 만큼 아니 그 이상 존중해주었다. 이때까지 수인에게 세상의 부조리는 ‘가끔 있는 고장 난 신호등’이었을 것이다. ‘모든 신호등’이 꺼져있는 것을 깨달은 것은 회사에서 자신의 파트 판매직 직원들을 정리해고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뒤다. 회사는 집요했다. 관리직이 정리해고를 거부하자 처음에는 타일렀고, 직장 동료를 시켜 회유하려 했다. 그것도 안 되니 마땅히 그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쾌적하게 정리되고 가지런히 진열되어 손님을 맞아야 할 자신들의 매장을 난잡하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그를 버리기로 결심한 회사는 정리해고의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본격적으로 ‘실력행사’에 나선다. 이수인은 노조에 가입하고, 우연히 받은 명함에 적힌 주소(구고신이 소장으로 있는 노동상담소)로 찾아간다.


최규석 작가는 다수의 매체 인터뷰에서 “이수인이 특정 모델이 있는 반면, 구고신은 취재했던 여러 인물의 조합”이라 밝힌 바 있다. 구고신은 뻔뻔해 보일 만큼 자신이 필요하리라 생각되는 현장에 빠르게 나타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시적이든 근본적이든 해결책을 제시하고, 떼인 돈 돌려받게 해주고, 헌법이 규정한 권리를 소리친다. 분쟁의 수라장에서 노동자들과 연대해 어려움을 뚫고 나온 것도 여러 번, 실패하기도 여러 번. 구고신은 철인 혹은 성인의 모습에 가깝게 그려진다. 자기 일도 아니면서,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이 자신의 복직도 아니면서 열심히 뛰는 모습은 사명감을 갖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우리 곁의 노동운동가들과 같다.


이수인과 구고신은 ‘송곳’ 이었다. “분명 하나쯤 뚫고 나오는, 가장 앞에서 가장 날카로웠다가 가장 먼저 부서져 버리고 마는” 그런 인간.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디디고 마는 그런, 인간. 이들이 싸우는 게 간단히 말해 ‘사측’ 그 자체고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했다면 독자들은 속이 좀 시원했을지도 모르겠다. 『송곳』은 집요하리만큼 철저하게 지겨운 현실의 이야기를 들이민다. 그들이 지켜내고자 하는 것은 힘없이 밀려나는 보통 사람들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종일 서서 웃으며 노동한 대가로 백만 원 이백만 원 월급 받아 생활비로 쓰고, 그 돈이 없으면 아이 유치원 보내기도 어려운 빡빡하며 가족 구성원 중 누가 큰 병을 얻으면 즉시 경제 수준이 곤두박질치는. 어떤 취급을 받아도 회사에 버티고 있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노조에 가입하고 사람을 모으고 연대해서 모두를 지켜내기 위한 지난한 과정에서 가장 그 행동을 방해하고 분열시키는 사람들도 바로 그 힘없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사측이라는 거악 앞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하는 게 뭐가 어려울까 싶었지만, 교묘한 사측의 갈라치기와 생존이 걸린 돈 앞에서 사람들은 대의보다 사익을 결국 선택한다. 아니, 선택을 강요당한다. 노조에 가입해 투쟁을 이어나가는 동지들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싸우면서도 곁눈질로 서로를 감시한다. 언제까지 계속할까, 이만큼 했으면 된 거 아닐까, 행동이 좀 수상한데 내가 모를 때 사측에게 제안이라도 받은 건 아닐까. 함정은 도처에 있다.


투쟁이 길어지며 이수인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에 직면한다. 놀랍게도, 그에게도 가정이 있고 아내가 있으며 갓 태어난 아이도 있다. 가정은 어떻게 되어도 좋냐고 소리치는 장모의 일갈은 그 자신 또한 그가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반증이다.


모두 고장 난 신호등을 다시 작동하도록 만드는 그들의 고군분투가 빛나는 노동자의 승리로 마침표를 찍길 바랐지만, 민주화운동의 대가로 고문을 당한 후유증을 껴안고 투쟁 현장을 누볐던 구고신은 쓰러졌고, 이수인은 푸르미의 타점포로 이동했다. 작은 승리를 얻기도 했지만, 무수한 패배도 얻었다. 최종화의 마지막 대사, “노동조합 일상활동입니다”는 그래도 희망적이다. 9년의 세월을 견디고, 무수한 생명이 스러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결국 해고노동자들이 되찾아 온 것도 그들의 ‘일상’ 이니까.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창비, 2008


『100℃』

최규석 지음, 창비, 2017


『우리가 몰랐던 노동 이야기』

하종강 지음, 나무야, 2018







임지희 - 웹툰PD


만화와 음악과 소설과 각종 서브컬쳐에 둘러싸여 살다가 이러다 만화를 그리고 소설을 쓸 수 있게 될 줄 알았지만, 창작물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기자 생활을 2007년에 시작했다. 대중문화잡지 〈브뤼트〉 등을 거쳐 현재 누구보다 빠르게 많은 만화를 보는 웹툰 PD 생활 중이다. 저서로 『좀비사전』(공저)가 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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