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꽃 보고 좋아하듯이 그렇게 서로 좋아하며

아동 분야 『꽃할머니』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꽃할머니』

권윤덕 지음, 사계절, 2010









꽃 보고 좋아하듯이 그렇게 서로 좋아하며


한미화 - 출판칼럼니스트






권윤덕에게 그림책이란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다. 나아가 아이들에게 사람다운 세상을 꿈꾸게 하고픈 간절한 소망이다. 권윤덕이 지금껏 작가로 펴낸 책들은 이 맥락 아래 있다.


권윤덕은 대학에서 식품과학을 전공했는데, 이과 전공자인 작가가 그림책을 만나게 된 것은 졸업 후 몸담았던 지역 문화 운동의 영향 아래 있다. 학생운동에 이어 1990년대 초 안양에서 지역 미술 운동을 하며 우리 것을 알자는 취지로 탱화와 민화를 배웠다. 이 경험이 작가를 그림책의 세계로 이끌었다.


권윤덕의 첫 그림책은 『만희네 집』이다. 지역 운동을 접고 시댁에 들어간 당시의 경험이 그림책으로 태어났다. 만희의 하루를 따라가며 할아버지 집에 있는 오래된 물건들을 보여주는 그림책은 집 안 구석구석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문살무늬 창이며 둥근 소반 등은 지나간 우리의 삶과 시간 그 자체였다. 이후 작가는 제주도 꼬리따기 노래가 바탕이 된 『시리동동 거미동동』을 펴냈다. 제주 우도의 해녀 마을을 배경으로 엄마를 찾아 나선 소녀의 이야기를 그려낸 그림책이지만 정작 작가가 말하고 싶어 한 것은 제주 여성의 삶과 노동이었다. 그림책이라는 거울로 지나간 삶의 흔적과 고달픈 삶과 사회 문제를 비추어낸 작가는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마침내 작가는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꽃할머니』에 이른다.


『만희네 집』에서부터 『꽃할머니』까지 권윤덕의 그림을 구성하는 미학들이 있다. 민화의 영향 아래 있는 화려한 색감이나 꽃 그림 같은 것들은 권윤덕의 그림책을 대표한다. 또 『일과 도구』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등의 그림책에서 보듯 도감을 연상시키는 세밀한 정보성도 권윤덕 그림책을 보는 재미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작가가 지닌 사회의식이다. 이 모든 것들이 담긴 그림책이 『꽃할머니』다.


『꽃할머니』는 1940년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림책이다. 이른 봄 죽이라도 쑤어 먹을 요량으로 언니와 나물을 캐러 갔던 할머니는 일본 군인들에게 끌려간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대만에 주둔한 일본군 막사. 어린 소녀는 이렇게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다. 싫다고 반항하면 군홧발로 차고 총칼로 위협하고 때렸다. 소녀의 몸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마음도 죽어갔다.


소녀가 부여잡은 건 모란꽃 보러 가자던 엄마의 목소리와 꽃 댕기를 묶어 준다던 언니의 목소리뿐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한국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기적처럼 동생을 만나 극진한 간호를 받던 할머니는 동생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정신이 돌아왔다. 근대화라는 절대 가치 외에 다른 것들은 모두 금기시되던 시절, 할머니는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꼭꼭 감추고 50여 년을 살았다. 그러다 세상으로 나와 친구들을 만났다. 마지막 장면에서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가 활짝 웃는다. 그리고 이런 당부를 한다. “사람들이 꽃 보고 좋아하듯이 그렇게 서로 좋아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이 작품은 그림책으로서는 최초로 위안부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 그림책 작가들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함께 만든 ‘한·중·일 평화그림책’ 시리즈의 첫 권으로 태어났다. 기획의 시작은 일본 작가들로부터 나왔다. 2005년 다시마 세이조, 하마다 게이코 등 일본 작가 4명이 일본의 침략을 반성하고 사죄가 없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평화그림책을 제안해왔다. ‘한·중·일 평화그림책’은 세 나라에서 동시 출판하는 것으로 기획되었지만 심달연 할머니의 건강을 우려하여 2010년 한국에서 먼저 출간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이 들어선 후 일본의 우경화는 거세어졌다. 심지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고, 조선인 위안부 강제 연행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까지 펼쳤다. 『꽃할머니』를 출간하기로 했던 도신샤 출판사는 일본 우익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출간에 우려를 표했다. 결국 도신샤는 2013년 『꽃할머니』의 일본 출간을 아예 포기했다.


시간이 흘러 2018년 4월 27일 일본 고로컬러사가 『꽃할머니』를 출간했다. 또한 『꽃할머니』의 출간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싶은 것」의 DVD도 함께 일본에서 출시되었다.


심달연 할머니는 2010년 12월 세상을 떠나셨다. 마지막 시간을 할머니는 정서 치료로 시작한 꽃누루미(압화)에 정성을 쏟았다. 꽃을 사랑하던 할머니의 꽃누루미 작업은 권윤덕의 『꽃할머니』를 관통하는 주요한 정서와도 일치한다.


권윤덕은 스무 살 무렵 알게 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늘 마음의 빚이었다고 고백한다. 그 마음 한가운데는 일본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증오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꽃할머니』를 처음 그리겠다고 마음먹고 완성한 초벌 스케치에는 숨길 수 없는 분노와 복수와 증오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로부터 4년여 동안 작가는 가제본만 열두 차례 만들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그러는 사이 폭력을 자행한 일본제국군에 대한 날것의 감정은 절제되었고 승화되기에 이른다. 작가는 폭력과 아픔의 자리에 어김없이 꽃들을 그려 넣었다. 성폭력을 자행하는 일본군의 얼굴 대신 그 자리에는 꽃잎이 난분분하다. 잔혹한 폭력 앞에 도리 없이 짓밟힌 할머니의 피눈물 역시 꽃으로 형상화되었다.


그림책의 첫 장면에서 할머니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피로 물든 혼란스러운 기억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꽃으로 피어난다.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엄마가 보러 가자던 모란꽃과 언니와 함께 보았던 제비꽃 등 할머니가 좋아하던 꽃들이 피었다. 가해자에게 받은 고통의 기억을 꽃으로 상징되는 평화로 돌려준 할머니는 열세 살 고운 소녀로 돌아가 있다. 마치 그림책을 보고 자랄 아이들에게 전쟁과 폭력의 잔혹함을 기억하되 ‘꽃 보고 좋아하듯이 그렇게 서로 좋아하며’ 사는 세상을 꿈꾸라고 말하는 듯하다.


권윤덕 작가는 2016년에는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한 『나무 도장』을 펴냈다. 그림책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나무 도장』

권윤덕 지음, 평화를품은책, 2016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이억배 지음, 사계절, 2010


『오늘은 5월 18일』

서진선 지음, 보림, 2013






한미화 - 출판칼럼니스트


출판칼럼니스트다. 책을 읽고,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쓴다. 한겨레에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를 연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책 읽기는 게임이야』 『지도탐험대』 『아이를 읽는다는 것』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공저) 등이 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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