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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세계철학사를 읽어야 할 이유
인문 분야 『세계철학사』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세계철학사』
이정우 지음, 길, 2018
오늘, 세계철학사를 읽어야 할 이유
임종수 - 성균관대 초빙교수
철학사를 뒤적일수록 늘 뭔가 헛헛했다. 그 헛헛함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톺아보면 철학사가 서양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관념 위주의 서술이다 보니 철학의 탄생과 구체적 배경, 역사에 대한 서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한국철학은 ‘세계’ 안에 들어가지 않고, 변방처럼 다루어지거나 아예 이야기조차 되지 않았다. 이러한 허전함이 느껴지는 까닭은 철학사가 서양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다른 나라의 철학자나 철학사 저자를 말하기 전에, 대부분의 국내 철학자들이 서양철학 전공자인 것도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동양철학 전공자가 늘었다 해도 사정은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만남을 말하지만 각자 전공 영역을 넘어 ‘세계’라는 맥락에서 철학을 이야기하고 철학사를 쓰려고 용기를 내는 철학자를 만나기 어렵다.
이러한 허전함을 채워준 책이 내게는 이정우 교수의 세계철학사였다. 워낙에 방대한 분량의 책이라 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야기하기보다, 저자의 문제의식과 세계철학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중심으로 책을 소개하고 싶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몸담아 살아가는 세계는 그냥 주어진 세계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자본과 권력으로 얼룩진 세계” 속에 살아간다.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저자는 “거시적인 비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로써 저자가 단순히 철학사로서의 철학사, 역사적 기술을 위해 책을 쓰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오늘 우리가 처한 ‘현대’의 문제를 정확히 응시하고 진단하며 더 나은 세계를 모색하려는 저자의 목적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장점 중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서술 면의 두 가지 특징이다. 하나는 내용이 단조롭게 서술되지 않았고, 폭넓은 역사적 토대 위에 역동적으로 서술되었다는 점이다. 역사적 배경을 통해 바로 철학사상의 탄생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철학 역시 역사 속에서 태어났고 철학자 역시 역사 속 현실을 살면서 당대의 문제를 고민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늘 철학사를 접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역사적 맥락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이 책은 그러한 답답함을 일소해주기에 충분할 만큼 역사적 맥락을 자상하게 설명해놓았다.
다른 하나는 풍부하고 친절한 각주로 본문의 이해를 돕고 있다는 점이다. 각주가 단순히 보조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본문을 깊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철학에 관심이 있거나 인류의 사유가 어떻게 철학 개념으로 집약되었는지 살펴보려는 독자에게 더없이 유익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전공자는 물론이고 처음 철학사를 접하는 독자에게 귀중한 안내 역할을 해줄 것이다.
책의 1권은 지중해의 철학, 2권은 아시아 세계의 철학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 두 철학의 구도에서 그리스 철학과 고대 동북아 철학의 출발점을 어떻게 설명할까. 저자에 따르면 “그리스 철학의 출발점과 고대 동북아 철학의 출발점은 크게 달랐다.” 어떻게 다른가. 저자는 그리스 철학이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출발했고, 퓌지스를 탐구하고, 이론적인, 과학적인 철학, 형이상학적인 철학이었다고 한다. 반면 동북아의 철학적 사유는 ‘난세’를 극복하고, ‘치세’로 가려는 정치적 관심사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리스의 철학이 자연철학·형이상학에서 시작했다면, 동북아에서의 철학은 정치철학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저자는 두 철학의 차이가 이후 철학적 방향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그리스 철학과 동북아 철학의 출발점에 대한 차이로 보아 둘의 철학적 태도 역시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중해 세계의 철학과 아시아 세계의 철학을 비교해볼 때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들 중 하나는 경험적 세계에 대한 상이한 태도에 있다. 대체적으로 말해, 지중해 세계의 철학이 현상 세계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 데 비해 아시아 세계의 철학 특히 동북아 세계의 철학은 현상 세계의 실재성을 긍정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출발했다.”
저자는 두 권의 방대한 분량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철학의 흐름을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최초 철학자들의 사유 실험을 보여주는 고대, ‘~교’의 모양을 갖게 된 중세, “새롭게 등장한 근대성이 전-지구적 보편성의 지평을 획득해간” 근대, 그리고 근대성을 비판하며 나온 탈근대적 실험의 장인 현대라는 도식을 바탕으로 유라시아의 동과 서에 펼쳐진 철학의 흐름을 비교철학적으로 담아낸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작업이 단순히 지적 희열로 그치지 않기를 희망한다. 왜냐하면 저자가 진단한 대로 현재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서양’ 근대성의 극단화된 형태들을 극복할 대안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근대성의 극복을 위하여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봐야 한다고 인식하면서도,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적 사유들을 다시금 음미하여 근대성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순수학문과 제국주의의 이름으로 강제된 근대성을 극복하려면 근대성의 그늘 아래 외면된 전통 사유에 대한 ‘새로운 반추’가 필요하다. 이럴 때, 고대와 중세 철학을 가로지르기는 ‘탈-근대를 향한 길’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책의 두께에 부담으로 느끼는 독자라면 우선 1권 1장 「철학의 탄생」 만이라도 먼저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철학의 탄생」은 그리스의 지리적 구조와 전쟁과 정치가 어떻게 민주주의와 철학을 낳았는지 생생하게 전해준다. 철학의 탄생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장을 읽은 후 당시 사회상이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고, 철학의 탄생 배경에 대한 탄탄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첫 장을 읽은 독자라면 자연히 다른 장을 읽을 힘이 생길 테다. 그리고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좋겠지만, 특히 기존 철학사에서 소홀히 서술되었던 이슬람철학이 담긴 1권 ‘지중해세계의 철학’의 이슬람 세계의 철학, 2권 「아시아 세계의 철학」에 실린 동북아 철학 형성사, 힌두교와 불교, 동북아의 유불도 삼교사상, 조선에서 성리학의 논쟁에 대한 장들은 일독을 꼭 권하고 싶다.
세계철학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저자는 “무한히 복잡하고 다채로운 역사의 흐름을 간단한 도식으로 밀어 넣어 정리하고픈 유혹을 경계”하면서 분석 대상이 되는 철학 원전을 일일이 직접 읽고 검토하여 서술한다. 그러기에 시간이 소요될 것이나 그만큼 3권이 기다려진다. 이 마지막 권이 완결된다면 처음으로 한국어로 쓰인 세계철학사를 갖게 된다. 그때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오늘의 ‘나’와 ‘우리’를 알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세계철학사의 독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
이정우 지음, 인간사랑, 2012
철학고전강의
강유원 지음, 라티오, 2016
한국철학사
전호근, 메멘토, 2018
임종수 - 성균관대 초빙교수
대학에서 동아시아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연구원 생활을 거쳐 지금은 대학과 여러 인문학 공동체, 문화센터에서 동서양고전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마을 독서모임에도 관심이 많고, 인문학 주제와 관련된 책들과 함께 청소년을 위한 철학소설과 인문서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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