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책이라는 키워드로 조선을 이해하다

인문 분야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2007








책이라는 키워드로 조선을 이해하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한문학자 강명관 부산대 교수는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에서 책벌레 22명을 통해 조선 사회를 재조명했다. 이 책은 책이라는 매우 좁은 시선(키워드)으로 바라보지만 정치사, 사상사, 문학사, 사회사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를 통합한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기기 하나로 전문 검색을 하고 전체를 조망한 다음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조선시대에 『사서오경』은 과거시험의 출제 기반이 되는 책이었다. 이 책들은 사대부의 생존 수단 그 자체였다. 이 책들을 읽고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은 족보에 오르지 못했다. 낙제한 사람들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기에 책은 권위의 상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당시 지식인에게 책은 생존 수단이자 권위였으며 ‘유일한 지식의 저장고’였다. 그러니 ‘책’으로 조선시대를 살펴보는 것은 그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는 방법일 수 있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정도전과 태종, 세종, 조광조, 이황, 이이처럼 성리학이라는 ‘유일사상’의 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책의 생산과 보급 그리고 독서문화 창출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양반·남성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책을 좋아한 호학(好學)의 군주이자 ‘개혁군주’로 알려진 정조마저 가장 보수적인 정통 주자학에 따라 세상이 완벽하게 작동하기를 원했기에 새로운 사유를 결코 허용하지 않은 ‘책과 사상의 탄압자’로 규정된다. 저자는 이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다른 한 부류는 18세기 이후 중국에서 유입된 최신 서적들을 탐독하며 새로운 사유를 할 줄 알았던 사람들이다. 1763년 홍대용이 베이징을 찾은 이후 조선의 수많은 지식인은 ‘새로운 사유’가 담긴 책을 그곳에서 ‘수입’해 오기까지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하나의 트렌드였다. 이 책은 바로 그 시기 인물들에 방점이 찍혀 있다. 대량의 독서로 박학(博學)을 추구했던 지식인들은 때로 실학과 같은 ‘이단적 사유’를 드러냈다. 당연히 저자는 이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낸다.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정조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다. 정조는 중국 지식시장의 동향을 꿰고 있었고, 읽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로 다독가였다. 하지만 그는 베이징에서 수입한 책이 조선의 지식인을 오염시키고 주자학을 해체한다고 판단해 베이징 서적의 수입을 금지한다. 한편 지식인들의 저작을 검열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문체반정을 지시함으로써 18세기 후반의 새로운 사유를 질식시켜 스스로 ‘개혁 군주’의 길을 포기하고 ‘절대군주’의 길로 들어선다. 그래서 강 교수는 허균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고, 성리학에 철저하게 각을 세운 이탁오의 『속 분서』를 읽고 사유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면 조선의 미래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탄식한다. 개명천지인 21세기 한국 사회 또한 여전히 ‘이단이 나올 가능성을 뭉개버리는 사회’라는 개탄과 함께.


저자는 이 책에서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온갖 사료와 선인들의 방대한 문집, 저 비할 데 없이 거창한 『사고전서(四庫全書)』까지 연구실에 앉아 컴퓨터로 읽고 검색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며 시대의 변화를 정리했다. 이처럼 앞선 사유를 할 수 있었던 그는 2009년에 펴낸 『열녀의 탄생』에서 데이터베이스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었다.


조선시대 남성·양반은 자신들의 권력적 의도에 부합하는 ‘여성’을 만들기 위해 특정한 지식을 구성하고, 그것을 여성의 머릿속에 ‘설치’하려고 『소학』 『삼강행실도』 『내훈』 등의 텍스트를 활용해왔다. 『열녀의 탄생』은 그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의부(義婦), 열부(烈婦), 열녀(烈女) 등의 단어가 『조선왕조실록』에서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되었는지 일일이 제시하고 있다. 이런 세밀한 사례들은 디지털 데이터로 검색하지 않고서는 쉽게 확인할 수 없다. 이렇게 그는 앞으로도 디지털 데이터의 힘으로 더 많은 것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중국의 방대한 역사책을 모아놓은『사고전서』는 『조선왕조실록』의 1000배 규모다. 이렇게 모아진 방대한 디지털 자료가 검색이 가능한 상태로 보관돼 있다. 지식인이라면 그 데이터에서 하나의 키워드로 자료를 검색해 빠르게 한 권의 책을 쓸 수도 있다. ‘데이터베이스적 생산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IMF 외환위기에 이어 카드대란이 터진 2003년부터 한국의 인문시장에서는 상상력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때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 이덕일의『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등의 인문적 실용서가 득세했다. 이 흐름을 강 교수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 선도했다. 이 책들은 임팩트가 강한 테마(키워드)를 갖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처럼 책이거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처럼 인물이거나,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처럼 16세기를 상징하는 미암 일기일 수도 있다.


이처럼 사람·사물·사건 등 시대를 관통하는 팩트를 찾아 풍부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인문서들이 이후 대세였다. 이 책들은 역사의 비주류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발상의 전환이라는 확실한 주제를 담았으며, 실사구시 혹은 이용후생의 철학을 품었고, 문명의 전환기인 18세기를 다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날로그 문명에서 디지털 문명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던 단경기(端境期)였기에 독자들의 욕망에도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우리는 ‘커다란 이야기’가 힘을 잃은 포스트모던의 시대를 걷고 있다. 대중의 관심은 갈수록 잘게 쪼개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더 쉽게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인류가 생산한 수많은 지식이 데이터베이스화된 소비적 환경에서 이야기는 어떠한 형태로 살아남을 것인가. 당장 우리 눈앞에 ‘날 잡아 봐라’ 하고 깃발을 펄럭이며 유혹하는 것은 역사적 상상력인 팩트와 허구적 상상력인 픽션을 결합한 팩션이다. 지금 영화, 드라마, 책 등에서 팩션이 아닌 것은 명함을 내놓기가 어렵다. 인문서라고 예외는 아니다. 앞에서 제시한 책들은 발랄하고 경쾌하며, 때로는 삐딱하기까지 하다. 독자는 글에서 저자의 거친 호흡마저 느낄 수 있다. 이런 점이 굴곡 많은 근현대사를 가진 우리 민족의 입맛에 맞았다. 바로 그런 흐름을 잘 수용했기에 많은 인기를 끌 수 있었다. 그 흐름을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강명관이라는 학자였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2003


『열녀의 탄생』

강명관 지음, 돌베개, 2007


『조선풍속사』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2010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이자 출판평론가다. 1982년 출판계에 편집자로 입문해 1983년 창작과비평사(현 창비)로 옮긴 뒤 만 15년 동안 영업자로 일했다. 1998년 삶의 방향을 바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설립했다.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를 창간해 올해로 19년째 발간해오고 있다. 2010년 한국 최초의 민간 도서관 잡지인 월간 〈학교도서관저널〉을 창간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책 읽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열정시대』『베스트셀러 30년』『마흔 이후, 인생길』『나는 어머니와 산다』『인공지능 시대의 삶』『하이콘텍스트 시대의 책과 인간』 등 20여 권의 지은 책과 다수의 공저가 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참여자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