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화성 홍법리 남양홍씨 묘역 華城 弘法里 南陽洪氏 墓域

경기도기념물 제168호




<화성 홍법리 남양홍씨 묘역>은 조선 중·후기 남양홍씨 문중의 집성묘이다. 묘역에는 홍형洪泂(1446~1500), 홍언필洪彦弼(1476~1549), 홍섬洪暹(1504~1585), 홍담洪曇(1509~1576), 홍진도洪振道(1584~ 1649) 등 남양홍씨의 여러 인물의 묘가 넓은 터에 산재하여 있다.

홍언필은 1504년(연산군10) 문과에 급제하였고,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진도로 귀양갔다가 중종반정 이후 사면되었다. 1519년 병조에서 참지·참의 등을 지내고, 우부승지에 재임 중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이 때 조광조趙光祖와 내외종간이어서 그 일파로 지목되어 옥에 갇혔다가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변호로 풀려났다. 이어 형조판서·병조판서·호조판서·대사헌 등을 역임하였고, 1537년 우의정에 올랐다가 곧 좌의정에 이르렀다. 1545년(인종1) 영의정이 되었다. 몸가짐이 검소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 청빈하기로 유명하였다.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홍섬은 홍언필의 아들이다. 홍섬은 조광조의 문인으로 부제학·경기도관찰사·대사헌을 거쳐, 1552년(명종7)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1567년 예조판서가 되었고, 1571년(선조4) 좌의정이 되어 궤장几杖을 하사받고 영의정이 되어 세 번이나 중임하였다. 시호는 경헌景憲이다.

홍담은 홍언필의 조카이고 홍언광의 아들이다. 한성부좌윤으로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병조판서·이조판서·예조판서·좌참찬·우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훈구파勳舊派의 거두로서 김개金鎧와 함께 정철鄭澈 등의 사림파와 대립하였다. 시호는 정효貞孝이다.

홍진도는 아버지가 인조의 외조부인 구사맹具思孟의 사위여서 인조와 이종사촌 형제이다.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이듬해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록되어 남양군南陽君에 봉하여졌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였고, 그 뒤 판의금부사·한성부판윤·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화성 홍법리 남양홍씨 묘역,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남양홍씨 묘역은 화성시 서신면 홍법리 청명산 남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남양홍씨 묘역은 크게 3개 권역으로 구분된다. 제1권역은 홍법리의 홍법사로 가는 입구의 우측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홍형, 홍언필·홍섬·홍담·홍진도 등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이외에도 이근방 일대에는 홍귀해, 홍한 등 남양홍씨의 많은 후손들의 묘가 위치하고 있다.


이중 홍언필의 묘가 비교적 원형 및 석물이 가장 잘 남아있다. 홍언필 묘는 정경부인 봉화정씨奉花鄭氏·여산송씨礪山宋氏의 3개의 봉분이 있다. 묘역은 2계로 나뉘어 상계에는 봉분 3기·묘표 2기·상석이 있으며, 하계에는 향로석·망주석 2기·문인석 1쌍이 있고 묘역 입구에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1549년(명종4)에 건립된 것으로, 비문은 시문에 뛰어났던 정사룡鄭士龍(1494~1573)이 찬하고 해서로 유명한 송인宋寅(1517~1584)이 썼다. 형태는 옥개방부형으로 팔작지붕의 개석이고 대석에는 화려한 당초문을 양각하였다. 묘표는 모두 2기로 홍언필·여산송씨의 묘표는 하엽방부형으로 대리석재질이고, 건립연대가 기록되지 않았으며, 봉화정씨 묘표는 규수방부형으로 매우 단순화하였다. 문인석은 복두공복형이고, 균형이 잘 잡히고 유연한 신체곡선을 지닌 16세기 전반기의 문인석이다.


홍언필 묘,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홍섬 묘는 홍법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우측의 산록에 위치하고 있다. 봉분의 중앙은 홍섬, 서쪽에는 증 정경부인 진주류씨晉州柳氏가 있고, 동쪽에는 정경부인 청주한씨淸州韓氏와 3개의 봉분으로 조성하였다. 묘역은 2계로 나뉘어 상계에는 봉분 3기·묘표 1기·상석이 있으며, 하계에는 향로석·망주석 2기·문인석 2기를 배치하였다. 묘역 서쪽에는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1586년(선조19)에 건립한 것으로, 비문은 김귀영金貴榮(1520~1593)이 찬하였고, 명필 석봉 한호韓濩(1543~1605)가 썼으며, 남응운南應雲(1509~1587)이 전액을 올렸다. 신도비는 옥개방부형의 당당한 형태이다. 묘표는 음기가 없으며 하엽방부형의 16세기 전형적인 형태이다. 문인석은 복두공복형으로 원만한 얼굴과 유연한 신체를 지닌 16세기 후반의 양식을 보인다.


홍섬 묘,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홍진도는 아버지가 인조의 외조부인 구사맹具思孟의 사위여서 인조와 이종사촌 형제이다.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이듬해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록되어 남양군南陽君에 봉하여졌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였고, 그 뒤 판의금부사·한성부판윤·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홍담 묘,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이 외에도 홍형의 묘표는 15세기 말엽의 규수방부형태를 잘 보여준다. 비문은 조광조가 기록한 것을 후에 송시열이 쓴 것이고, 홍형의 묘갈은 1518년(중종13)에 건립한 것으로 좌의정 신용개申用漑(1463~1519)가 지은 것이다. 또한 홍담의 신도비는 1640년(인조10)에 건립한 것으로 대제학 유근柳根(1549~1627)이 짓고, 명필 오준吳竣(1587~1666)이 글씨를 썼다.

화성 남양홍씨 묘역은 조선 사대부 묘제의 원형과 석물이 잘 남아 있는 곳이 많고, 서예사와 금석학적으로 대표적인 묘비가 많이 존재하는 중요한 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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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조선시대

    규모/ 일원

    / 묘 5기(홍언필·홍섬·홍형·홍담·홍진도)

    / 신도비 5기

    주소/ 화성시 서신면 홍법리 산30

    지정일/ 1999.04.26

    소유자/ 남양홍씨 종회

    관리자/ 남양홍씨 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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