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여주 매룡리 고분군 驪州 梅龍里 古墳群

경기도기념물 제180호




<여주 매룡리 고분군>은 여주시에서 동남쪽으로 3㎞쯤 떨어진 황학산黃鶴山(175.3m)의 북쪽 능선이 매룡리를 지나 남한강변의 상동까지 이어지는 해발 80m 내외의 능선과 동으로 뻗은 가지능선 일대에 해당한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의하면 상리에는 고분 10여기가, 매룡리에는 50여기의 고분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1916년 일본인 이마니시今西龍(1875~1932)가 처음 상리1·2호분을 조사하여 보고하였다. 1927년에는 매룡리 2·8호분의 실측도와 유물을 소개하였는데, 이 중 2호분은 1916년의 상리 1호분을 지명과 호수를 바꿔 소개한 것이다. 보고된 3기는 모두 회장방형橫長方形 석실로서, 연도羨道는 남쪽 긴 벽의 중앙에 돌방보다 높게 단을 이루며 연결되어 있다. 북·동·서 3벽을 내경하도록 쌓은 다음 편평한 천장석을 덮고 돌 틈을 회로 막은 구조이다. 바닥에는 시상屍床이 동서 양쪽에 2개씩 있으며, 1호분에서는 석침石枕 5개, 금동귀고리 2점, 도자刀子 2점이 출토되었고, 8호분에서는 석침 1개가 출토되었다.



여주 매룡리 고분군 이전 복원된 전경,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매룡리 고분군 일부 전경, 1927 ©국립중앙박물관


그 후 1987·88년에는 한림대학교박물관에서 고분군의 가장 남쪽에 있는 매룡리 용강골 고분을 발굴하여, 신라 석실분 13기와 고려시대 토광묘土壙墓 2기를 조사하였다. 이 고분군의 석실분은 모두 장방형 평면에 경사면 아래쪽의 짧은 벽에 연도가 나 있는 것이어서 상리 석실분과는 다른 구조이다. 석실은 약간 굴광하여 축조한 반지하식 구조이다.


여주 매룡리 고분군, 2006 ©여주박물관


 

매룡리 고분군 제8호분, 제154호분, 1927 ©국립중앙박물관 


석실벽은 할석割石을 이용하여 내경하도록 축조하고 천장에 큰 편평석 2~3매를 덮은 구조이나, B-1호분만 말각조정抹角藻井 천장이다. 연도는 중앙에 있는 것도 1기 있으나 대부분 오른쪽에 편재해 있다. 연도 바닥과 시상대가 석실 바닥보다 20~50cm 높게 되어 있는 점은 상리 석실분과 같다. 석실 안에서는 석침, 철도자, 단경호, 병형토기, 단각고배, 병, 반, 보주형꼭지 뚜껑, 적갈색파수부옹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D-2호분에서 출토된 병의 동체부에는 ‘井(정)’자가 음각되어 있기도 하다.


매룡리 고분군 출토 토기, 2000 ©경기문화재연구원


여주지역은 백제 한성기에 술천성述川城으로 비정되고 있으며, 한성 함락(475) 이후에는 고구려의 골내근현骨乃斤縣이 되었다가, 신라 진흥왕의 한강유역 진출(552) 이후 신라 영역으로 편제되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는 6세기 중·후반 이후에 축조된 신라의 지방고분군으로서, 일부 5세기 이후의 고구려계 석실요소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백제 묘제는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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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신라시대

      규모/ 일원 / 지정구역 177,607㎡

      주소/ 여주시 매룡동 산1-1

      지정일/ 2002.09.16

      소유자 / 김홍식 외 35인

      관리자 / 여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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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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