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둔촌 이집 묘역 遁村 李集 墓域

경기도기념물 제219호




고려후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집李集(1327~1387)의 묘이다. 이집의 본관은 광주廣州, 초명은 원령元齡, 자는 호연浩然, 호는 둔촌遁村이다. 충목왕(재위 1345~1348)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문장을 잘 짓고 지조가 굳기로 명성이 높았다. 1368년(공민왕17) 신돈辛旽의 비행을 비판하다 생명의 위협을 받자, 가족과 함께 영천으로 피신하였다. 1371년 신돈이 주살되자 개경으로 돌아와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여주 천녕현川寧縣에서 시를 지으며 일생을 마쳤다. 특히, 목은 이색李穡, 포은 정몽주鄭夢周, 도은 이숭인李崇仁과 같은 여러 명현들과 교유하였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그가 조선조에 벼슬을 지냈다고 잘못 기록되어 있는데, 1611년(광해군3) 8대손인 영의정 이덕형李德馨의 주청이 받아들여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바로잡게 되었다. 저서에 『둔촌유고遯村遺稿』가 있다.



둔촌 이집 묘역,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이집의 묘는 부인 정화택주貞和宅主 영주황씨郢州黃氏와 합장한 단분이다. 묘역은 크게 3계로 구분되어 있다. 상계에는 봉분·혼유석·묘표를 배치하였고, 중계에는 상석·향로석·장명등을 배치하였으며, 하계에는 문인석·망주석 각 한쌍을 배치하였다. 이러한 묘역 배치와 대부분의 석물은 고려말의 원형은 아니고, 후대에 여러번 보수하면서 유지한 것이다. 1985년경에 새로 제작한 묘표, 계체석 등이 있었으나 2008년경 지정당시 대부분 철거하였다.



둔촌 이집 묘역 문인석,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이 중 옛 묘표는 상계의 동쪽 끝에 위치하여 있다. 원수방부형으로 비문은 11대손 이휴징李休徵(1607~1677)이 지었다. 비제는 ‘둔촌선생이공휘집지묘 정화택주영주황씨부장遁村先生李公諱集之墓 貞和宅主郢州黃氏祔葬’이며, 뒷면의 비문은 표면이 떨어져 나가 알아보기 힘든 상태이다. 묘표의 대석은 후대에 추보한 것으로 보이며, 구舊 대석으로 추정되는 석물이 옆에 놓여 있다. 묘표의 총 높이는 168cm이다.


둔촌 이집 묘역 장명등, 향로석,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장명등은 중계에 위치하여 있으며, 사각형태이다. 사모지붕에 화창이 동서로 뚫려 있고 간주형의 대석이 있는 조선초기의 형태이다. 문인석은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으로 두 손을 소매속에 가린채 홀을 쥔 15세기의 형태이다. 이목구비는 평면적이고 의습선은 선각화한 단순한 형태의 15세기의 양식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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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고려시대

      규모/ 일원

      / 단분, 묘비 1기, 혼유석 1기, 상석 1기, 향로석 1기, 장명등 1기,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차일석 4기, 계체석, 신도비 1기

      주소/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243-11

      지정일/ 2008.05.26

      소유자/ 광주이씨 대종회

      관리자 / 광주이씨 대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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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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