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실학박물관

right now, turn on empathy

설원기 작가

right now, turn on empathy


먼 데서 오는 손님처럼 그는 가끔 실학박물관을 찾곤 했다. 때로는 가죽 차림에 커다란 헬멧을 쥐고, 때로는 검은 세단 승용차를 타고. 마지막으로 그가 실학박물관을 찾았을 때, 우리는 볕이 잘 드는 강변의 멋진 레스토랑에서 모두 함께 멋진 식사를 했다. 식사 끄트머리 어디쯤엔가 누군가의 시작으로 10월 뉴스레터로 '설 작가' 인터뷰가 농담처럼 나왔다. 자리를 털고 나서는 그를 돌아 세워 다시 물었다. 그렇게 잡힌 인터뷰 날짜는 퇴임식이 끝나고 이틀 뒤였다.


이젠 인터뷰로 묘기를 부릴 정도는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어지간히 애매한 상대였다. 실학박물관의 특별한 초대석에 왜 그인가. 10월호를 기다리던 박물관 안팎의 독자를 나는 만족시킬 수 있을까. 그를 통해 나는 무엇을 보고 듣게 해야 하는가. 2만 명의 독자를 대신해 전사처럼 서 있을 나는 그와의 관계를 어디까지 어떻게 설정해야 옳은가. 수많은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고 그가 있는 아산을 향해 1시간쯤 달렸을 때, 차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망했다.


너무 막막할 때, 나는 가장 가까운 것부터 정확히 보려고 애쓴다. 그때 나는 가장 정직해진다. 나는 거름종이다. 나는 정직하게 상황을 묘사하고 투과시켜 그들에게 그를 전달해야 한다. 내가 만나는 상대는 설원기 전 경기문화재단 대표. 나의 독자는 그의 마지막 퇴임식을 보지 못해 아쉬웠던 이들, 설원기 작가를 작가와 학교 교수로만 알던 2년 전 이들, 설원기 작가를 경기문화재단의 대표로만 알던 2년간의 이들, 설원기 작가가 누군지 몰랐던 이들까지다. 이제 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설원기는 덕성여대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퇴임할 때까지 20년 넘게 대학 강단에 섰고 국내 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서 50회 가까운 전시회를 가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던 현역 작가다. 2016년 9월에 경기문화재단 대표로 취임했던 그는 지난 9월 7일, 2년간의 여정을 마쳤다. 퇴임식이 있던 날, 그는 마지막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2년 동안은 내게 큰 일탈이었다. 배도 나오고. 결과보다 의미 있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일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 칸막이 없애고 'ㄷ'자형으로 앉아서 모니터를 눕히고 서로 얼굴보고 대화할 수 있었으면 했는데, 그걸 못한 것이 많이 아쉽다. 뭔가를 하고 있을 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고, 아쉽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행복한 감정은 전자보다는 후자 쪽이란다. 나도 여러분에게 고맙다."


많은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한다. 결과보다 과정, 일보다 사람, 게다가 행복. 도덕 교과서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그가 말하면 아이러니하게 도덕교과서도 검정고무신 같은 만화책이 된다. 좀 더 용감하게 솔직하자면, 건전한 만화책보다는 건강한(?) 15세이용가 플레이보이지(誌)다.


"여러분은 행복을 전수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여러분이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 어떤 연구에서 그러는데, 행복지수를 나타내는 그래프의 정점이 결혼 날짜였단다. 그러니까 결론은 뭔가. 결혼을 자주 하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그게 어려우면 연애라도 자주 해야 하는 건가(모두 웃음). 행복해지려면, 하고 싶고 아쉬워지는 일로 24시간을 채워야 한다고 하다. 그게 개인의 행복지수를 결정한단다.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은가. 그러니 옆에 있는 동료가 그렇게 되도록, 행복해지는 시간이 많아지도록 서로 도와야 한다. 그러려면 반드시 각자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이건 중요한데, 하고 싶은 일만 계속 해도 안 된단다. 그것만 하고 싶어서 뇌가 그 버튼 누르기만 몰두하다가 굶어죽을 수 있다니까. 실제 연구 결과다. 그러니 스트레스와 직원간의 피할 수 없는 충돌 같은 건 성취감을 위한 과정쯤으로 여기는 지혜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외국생활을 오래해서, 경기도 사람이 아니어서, 행정전문가가 아니어서 '부적절하다'고 경기도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렀던 설원기 작가는, 지난 2년 동안 진심을 다해 경기문화재단 직원들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했고, 소통을 위해 '말하기'보다 '듣기'에 치중하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그 결과, 재단 대표를 마주할 기회가 적었던 남양주 강변의 작은 기관의 직원들조차 그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었고, 조직으로부터 크고 작은 상처가 있던 직원들은 그의 신중함에 감동했다. '직원의 인사 관련 결재에 무엇보다 신중했던 사람', '미술관, 박물관 학예사들까지 세심하게 돌아봐준 흔치 않은 사람.' 실학박물관에서 그는 이렇게 묘사된다. 이것은 그가 오랜 외국 생활로 유연해진 사람이어서, 경기도 안팎으로 넘나드는 게 자유로운 비(非)경기도 사람이어서, 마음과 위로가 필요한 곳에 종이만 들이미는 행정전문가가 아니어서, 혹시 가능했던 일은 아니었을까.




설 작가의 작업실은 아산에 있다(위치는 특별히 비공개를 부탁받아서, 부러운 이들을 전멸시킬만한 구조를 상세히 적는다). 예전에 도자기 공장이었던 곳을 리모델링했는데, 학교 학생과 함께 의논하며 직접 설계했다. 서너 개 층계를 오르면 출입구가 있는데 문을 열면 다시 왼쪽과 오른쪽에 문이 나 있다. 거실은 왼쪽이고 작업실은 오른쪽이다. 들어서면 기막힌 주방을 겸한 남향의 거실인데, 전면에 탁 트인 커다란 창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미닫이문으로 공간을 나눈 안쪽에는 단정한 침실이 소박하게 마련되어 있고, 설 작가 작품이 가득 걸린 갤러리는 주방과 나란히 놓인 식사 공간이다. 주방 뒤쪽으로 좁은 복도가 있다. 후배나 동료, 학생들의 작품으로 채운 복도에는 샤워실과 화장실이 일자로 나란히 놓여있다. 길을 따라 들어가면 다시 거실만한 크기의 공간이 나온다. 오른쪽 왼쪽 각 벽의 절반을 차지하는 창이 적절하다. 작업실에는 대략 1,000장쯤 CD가 꽂힌 CD장이, 그 앞에 중앙을 향한 책상이 놓여 있고 정면에는 두 개의 이동식 작업대가, 왼쪽에는 납작한 서랍이 가득한 작품보관함, 적당한 크기의 쇼파와 테이블이 있다. 정면의 벽은 작품을 걸고 내리기 좋게 비워놓았다. 촬영 콘셉트로 실학박물관이 선물한 작업 앞치마를 입히고 작전상 붓까지 손에 들려주고는 아까부터 이상하다 싶던 점을 중얼거렸다. 작가 작업실이란 데가 이거 뭐, 너무 싱겁게 깨끗한 거 아닌가?


“내가 원래 잘 묻히질 않아. 작업한다고 군데군데 묻히는 사람들이 난 더 이상해. 난 옷에도 잘 안 묻히거든. 그래서 작업 앞치마도 별로 안 입고 해. 안 묻거든.”


인터뷰 시작 전에 설 작가는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내줬다. 음식을 내줄 때마다 그는 빈 그릇과 사용한 도구들을 부지런히 싱크대로 넣었고, 열린 뚜껑들은 이내 조용히 닫히고 덮였다. 그의 이러한 일상적 취향은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평론가 강신선은 그가 물감 흡수가 좋은 캔버스나 종이를 사용하지 않고 얇은 구리판, 설계도면용 폴리에스터 필름(마이러)을 바탕으로 선호한 데에서 그의 ‘취향’을 읽었다. 흡수가 전혀 없이 붓질 흔적이 예민하게 남는 바탕. 밑바탕이 비치도록 투명하게 겹치고 또 겹쳐내는 끈기, 흔적을 지우기보다 남기는 쪽을 선택하는 이성적인 터치의 신중함. 한편, 뉴욕의 평론가 칼 리틀은 설원기의 취향을 그의 독특한 제목 붙이기에서도 읽어냈다. 설 작가의 작품에는 ‘하나의 작업에 대한 반응이나 사후의 생각처럼, 아이러니컬한 해석을 유발하는’ 제목이 많고, 그것들은 칼 리틀의 표현처럼 ‘건전한 자기 비판적 경향’을 보여주며 ‘번득이는 유머’를 유발한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완벽하게 정상적인 동시에 비상하게 완벽한 인간”이 되기를 바랐다는 그의 부친의 소망을 현현시키려는, 마치 설 작가의 희망처럼도 읽힌다. 그 추상적인 감성은 그의 그림처럼 그다지 해석이 어렵지 않은 착한 구상으로, 혹은 유머러스하거나 센스있는 제목으로 다가온다. 추상 위에 명쾌한 제목들을 조합시키는 재치있는 작가 설원기는 생활에서도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나는 성격에 어쩔 수 없는 양면이 있다. 미국에서 절반, 한국에서 절반을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과 한국이라는 서로 다른 두 세상을 살았으니 환경에 따라 온-오프가 되는 게 자연스럽기도 하다. 사람들도 나를 자유분방하게만 보는 사람도 있고, 무슨 사업가처럼 보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저 상황에 적절한 온-오프를 할 뿐인데."




그는 천재적인 기질의 그림쟁이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보인 재능 정도였는데, 사학을 전공하려고 입학한 대학에서 취미처럼 시작한 그림이 평생 직업이 되어버렸다. 뉴욕에서의 삶은 치열했다. 돈벌이도 궁리하면서 병행하는 작품 활동이었기 때문에도 그랬지만, 세계 중심인 도시에서의 경쟁은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휩쓸리듯 떠밀려 가는 분위기를 외면할 수 없었고, 자연히 계속해서 단계를 밟아 오르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과 아이 등으로 환경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결국 뉴욕을 떠나기로 결정한 순간, 그는 다시 한 번 온-오프의 스위치를 켰다. 뉴욕의 경쟁라인을 달리며 느끼던 쾌감과 흥분의 성취감은 오프(off). 걸어야만 보이는 여유 속에서 전체를 관망하는 미학적 관점으로 온(on).


“예전엔 차로 드라이브를 즐겼다. 그런데 한국에 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오토바이를 탔다. 차는 과정이 목표가 아닌데, 오토바이는 과정이 목표다. 과정을 보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오토바이는 나랑 닮은 점이 많다. 나는 내 삶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 나를 즐겁게 만들도록 애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일탈하려고 노력한다. 운동도, 음식도, 오토바이도 일탈이 되면 즐거운 거다. 커다란 목표보다 작은 성취감이 중요한 것 같다. 아이들에게 부자나 대통령을 꿈꾸라고 하는 건 평생 우울하게 살게 할 수도 있단다. 직장에서도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을 많이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정이 괴로우면 안 되지 않겠나. 칸막이해놓고 혼자 우울해하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원기는 경기문화재단에서 대표로 있는 동안 특히 미술관과 박물관에 신경을 많이 썼다. 유독 기관의 직원들에게 신경을 많이 쓴 까닭은 “지난 10년 동안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도 위축되어 있던 환경을 바꿔보려는 노력”이었다. 선구적인 연구도 많고 훌륭한 인재들도 많은 공간인데 많은 직원들이 이상할정도로 우울해한다고 느꼈다. 적당한 수준까지만 맞추려는 수동적인 태도와 시도도 않고 주저앉으려는 모습을 볼 때에는 속도 상했다. 적은 인력과 적은 예산도 문제지만, 돈 없고 사람 없어서 우울한 건 아니다. 기관에는 좀 더 다른 건강한 관점이 필요했다.


“박물관이 제일 안타까웠다. 보편성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한번 달리 해보면 안 될까. 지방 박물관이 성공하려면 나름의 독창적인 정체성이 필요하다. 모든 걸 잘할 수도 없고, 잘하려고 해도 안 된다. 적은 인력과 예산에는 물론 물리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지난 10년 동안 문제였던 소장품 예산을 올해 처음 마련한 것도 그래서다. 박물관에 집중했지만 6개 기관 전체를 대상으로 했고, 11억 정도였던 올해 예산 이후에도 지속적인 출구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내년부터는 도비와 국비가 매칭해서 3개년 계획으로 70억 규모의 개조개선 작업이 들어갈 거다. 좀 더 있었다면 나는 아마도 박물관의 정체성과 역량 강화에 좀 더 힘썼을 것이다. 다 할 수는 없다. 다 잘 할 수도 없다. 적더라도 정확하고 분명하게, 그게 중요하다.”


평론가 칼 리틀은 설원기가 말하는 '화가'를 이렇게 설명한 적 있다. ‘자기 자신을 통해서 발산되는 모든 감정이입(empathy)을 숨김없이 토해내는 사람’. 엠퍼시는 공감, 혹은 감정이입이다. 다른 사람의 느낌과 감정을 마치 제 자신의 것 인양 나누는 능력, 혹은 감정의 특수한 친밀성에 근거하는 깨달음. 그것이 경기문화재단의 대표로서의 그가 함께한 공동체의 일원을 감싸 안던 방법이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은 알고 있었다.




설원기 작가는 인터뷰를 마치고 3주간 친구들과 함께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의 피레네 산맥으로 오토바이 여행을 떠났다. 퇴임을 앞두고 피레네 산맥의 오토바이 일주를 계획하는 남자라니. 살아가는 시간을 즐겁게 만들기 위한 노력, 작은 성취감, 스트레스와 릴렉스의 적절한 온-오프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자연 속을 달린다는 건 정말 최고의 일탈이다. 하루에 300km정도 달리는데, 가다가 경치 좋은 카페를 만나면 차도 마시고 구경도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동안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한 번도 없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그 정리가, 내게도 필요하다."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진정한 행복이란 주변의 경치를 보면서도 동시에 숟가락에 담긴 참기름 두 방울, 자신에게 부여된 목표를 기억하는 것.' 그를 우리가 진정으로 부러워하는 이유는 코엘료의 말마따나 주변의 경치를 보면서도 동시에 참기름 두 방울을 기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떠났고 선택은 우리 몫이다.


To be happy, turn on empathy.



세부정보

  • 실학박물관/ 뉴스레터87호

    스페셜 토크토크/ 작가 설원기

    / 김수미(실학박물관 기획운영팀)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6

    문의/ 031-579-6000

    실학박물관 홈페이지/ http://silhak.ggcf.kr

    이용시간/ 10:00~18:00

    휴일/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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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은 실학 및 실학과 관련된 유·무형의 자료와 정보를 수집·보존·연구·교류·전시하며 지역 주민에게 교육과 정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다목적 차원의 문화복합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건립한 국내 유일의 실학관련 박물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