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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베스트셀러 《택리지》 정본으로 거듭나다

실학가족인터뷰_안대회 교수

안대회 교수


조선의 베스트셀러 《택리지》 정본으로 거듭나다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는 조선시대 인문지리학을 대표하는 저술이다. 이 책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18세기 중반 글을 읽을 줄 아는 식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은 책이다. 하지만, 조선의 베스트셀러 《택리지》는 수많은 이본들로만 전해졌다. 신뢰할만한 택리지 텍스트에 대한 정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2018년 《완역정본 택리지》가 출간되었다. 이 작업은 안대회 교수의 다년간에 걸친 연구의 결실이자, 2012년부터 성균관대의 제자들과 함께 한 공동작업이 성과이다. 또한 실학박물관의 특별전 ‘택리지, 삶을 모아 팔도를 잇다’의 개막을 가능하게 했던 학술적인 바탕이었다.


늦가을 단풍이 아직 남아있는 혜화동 성균관대 교정의 안대회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 《완역정본 택리지》 작업 과정을 취재하라는 특명(?)을 받고 선생님의 연구실에 들어서자 환한 얼굴로 맞아주셨다. 인사를 드리자마자 정본사업에 대한 자연스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정본사업은 왜 필요하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예로부터 중국은 이미 경서(經書)부분에 대한 주석이 한나라때부터 진행되어 왔습니다. 유교 경전의 글자 하나하나까지 교감이 이루어져 주석본이 나왔습니다. 조선시대에도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와 같은 학자들의 경전 주석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유학을 이해하는 기본텍스트로 널리 활용되었지요.

이러한 작업은 동아시아 근대국가 성립과정에서 자국학(自國學)에 대한 관심하에 활발하게 진행되었지요. 일본의 경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굴곡진 근현대사의 과정에서 이러한 학술적인 기초 작업을 진행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후 한국학계에서 국학연구는 본격화되었지만, 이러한 기초 작업에 대한 관심은 매우 미흡했습니다. 최근에 들어와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성호 이익의 저술들에 대한 정본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한국학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대화해보면, 그들은 우리 고전을 번역하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토로합니다. 확정된 정본이 없어 한국의 번역에는 신빙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신뢰할만한 고전 텍스트의 부재속에 학문후속세대의 기초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실정입니다. 고전에 대한 정본 텍스트는 학술연구에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자료입니다. 그 의미와 작업의 필요성은 이 한마디로 가늠할 수 있다 하겠습니다.




힘들었던 《택리지》 정본사업의 진행과정은?


저는 《택리지》 정본사업이전에 《북학의》 등 몇편의 고전에 대한 정본사업을 진행했습니다. 《북학의》의 경우 10여종의 이본을 대상으로 교감했고, 확정한 텍스트와 번역본을 완성했습니다.

《택리지》 정본사업의 경우는 이본의 수가 200여종이라 너무나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2012년 시작한 이 작업은 9명의 박사과정 학생들과 함께 했습니다. 한 학생이 23종의 선본에 대한 교감을 진행하다보니 한 사람당 교감주석이 1천여개가 넘었지요. 이를 책으로 출간하려다 보니 본문의 의미에 영향을 미치는 주석 800여개만을 책자에 반영할 수 있었습니다. 주석을 선별하는 작업만해도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지요.

가장 힘들었던 정본사업이었던 《택리지》, 이본간의 차이가 너무 심해 한권의 책으로 담아내기가 너무 힘들었던 작업이었는데, 이제는 오래된 소망을 완수하여 후련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작업과정에서 실학박물관에서 연구비와 심포지움을 개최하여 연구팀에 도움을 준 일은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택리지》 뉴버전을 정리하는 추가사업을 진행 중이시라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택리지》 연구이후 그간의 조사과정에서 이번 정본에는 수록할 수 없었던 전혀 다른 《택리지》 버전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1910년경에 《택리지》를 풍수의 관점에서 재편집한 책들, 소략하게 되어 있는 자신이 사는 마을에 대한 정보를 상세하게 기록한 책들, 또는 전라도 같이 좋지 않은 지역에 대한 평가를 다시 반박하는 책들 등이 그것입니다. 이들 책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새로운 시각으로 정리한 《택리지》의 뉴버전으로 30여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를 정리하는 작업은 지금까지 진행해온 《택리지》 사업의 마무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학진흥사업의 연구비를 받아 3년동안 진행할 예정이고 그 결과는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되어 전 국민에게 공개될 예정입니다.






공동작업으로 정본사업을 계속하실 생각이시지요. 앞으로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향후에도 학생들과 공동세미나는 계속할 예정입니다. 번역되지 않은 책, 번역은 되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은 책 등 한국학에 가장 기초가 되는 자료를 선별하여 작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현재는 홍만종의 《시평보유》 이본 4종에 대한 정본사업을 학생들과 진행중입니다. 이 책은 번역되지 않은 시화집(詩畫集)으로 학생들의 한시 공부를 위한 좋은 텍스트라 여겨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차후 《한경지략(漢京識略)》에 대한 작업도 필요하지 않나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미 40여년전 번역되었지만 제대로 된 교감없이 진행되어 문제가 매우 많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잘 알다시피 조선시대 서울의 문화와 풍속을 이해하는 중요한 기본자료입니다.

저의 바람이 있다면, 연구를 같이했던 제자들이 다년간의 경험위에 향후 새로운 연구팀을 조직하여 정본 등 한국학의 기초자료에 대한 사업을 계속해나가기를 희망합니다. 그들이 능동적으로 자료를 찾아 연구를 적극적으로 해 나갈 때 한국학의 토대는 튼실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문학계의 중진이시자 우리 고전의 의미와 가치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 집필도 활발히 하고 계십니다. 인문콘텐츠 전문가로서 앞으로 연구의 방향은 어떠신지요?



한국의 인문콘텐츠는 한국사 분야가 가장 많은 소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의 분야는 기본적으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학문이자 늘 현재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문화사의 영역에서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가장 신뢰할만한 문화콘텐츠를 제공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18세기를 전후하여 생성된 우리 고전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의 연구에 관심이 있으며, 일련의 작업으로 <18세기 총서> 시리즈를 기획 출판하고 있습니다. 특히 내용별로 여행, 일상용품의 제작, 원예 등 새로운 문화와 분야에 대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어보고 싶습니다.





내년은 실학박물관 개관 10주년입니다. 내부적으로 향후 10년의 사업방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의 사업방향에 대해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실학박물관 홈페이지 들어가 보니 현재 진행하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매우 인상이 깊었습니다. 전시 부분은 실학자 인물 중심의 전시가 많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물관의 사업은 문학, 사학, 예술 등 제반 분야를 융합할 수 있는 종합적인 밑그림위에 기획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실학’이라는 개념에 함몰되어 범위를 좁히다 보면, 조선후기라는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났던 많은 문화적 현상들을 놓치게 되니까요. 개념에서 벗어나 관심의 영역을 확산하려는 생각과 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경기도라는 공간에 갇혀있지 않고 실학이라는 개념틀에 얽매이지 않는 접근과 주제의 개발을 제안해봅니다. 실학의 개념을 해체하여 다양한 주제에 접근해보고 다시 실학으로 종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전시 기획과 관련하여 동아시아 차원에서 접근해 보는 것을 제안해 봅니다. 한국, 중국, 일본 동양 3국의 세계지리·여성·생활 등에 대한 차별적인 시각을 회화와 도판을 통해 비교전시하는 방식은 어떨까요. 제가 일전에 네이버 화면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 18세기적 관점에서 일본과 중국, 유럽의 도판을 비교해 보면 문화의 차이와 인식의 다양성을 시각화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디자이너들은 항상 표현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라 재미있게 듣더라고요. 박물관에서 몇가지 주제를 정해 당대 인식과 지식을 표현한 도판 중심의 비교전시를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 안대회 소개글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로 대동문화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제34회 두계학술상과 제16회 지훈문학상을 수상했다. 옛 글을 학술적으로 엄밀히 고증하면서도 특유의 담백하고 정갈한 문체로 풀어내 독자들에게 고전의 가치와 의미를 전해왔다.

지은 책으로 《문장의 품격》, 《벽광나치오》, 《담바고문화사》, 《궁극의 시학》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한국 산문선》(공역), 《녹파잡기》, 《북학의》, 《택리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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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학박물관/ 뉴스레터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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