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여행] 실학박물관 추계답사

리뷰_해설사 답사기

실학박물관 추계답사


박물관 자원봉사를 시작한지 열 달. 두 번째로 가는 답사다. 소풍가는 기분과 홀가분함으로 만남의 장소 도농역으로 갔다. 김밥이 생각 이상으로 맛있었다. 박물관에서 준비한 답사지 참고자료를 읽고 감을 키운 후 눈을 붙인다.




눈을 뜨니 천안이다. 흥타령 축제 지역을 지나 도착한 첫 번째 여정, 홍대용 과학관이다. 건물이 깔끔하고 입구에 혼상, 소간의, 앙부일구 등이 배치되어 한눈에 천문을 나타냄을 알 수 있다. 앙부일구의 그림자가 우리 도착 시간(10시~11시 사이)을 잘 나타내고 있어 놀라웠다. 해설 선생님의 깨알 같고 세심한 해설을 들으며 홍대용 선생에 빠진다.


 


입구 첫 면에 선생의 53세 생애(고향을 찾았다 갑자기 중풍으로 돌아갔다며 짧은 생을 아쉬워 함)기 7가지 별 이야기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①가족 ②석실서원에서 12세부터 23년간 수학 ③스승이자 고모부인 김원행 ④벗으로 박지원과 박제가 ⑤35세 때 연행사 일원으로 연경에 가서 평생의 우정을 나눈 엄성, 반정균, 육비의 만남과 을병연행록의 기록 ⑥짧은 관직생활 ⑦지전설을 설파한 과학 사상을 별로 표현한 것이 이채로웠다.





* 해설자의 특별한 팁


선생 사망 시 아들이 20세로 어려 박지원 선생이 장례를 주관하는 데 이 때 중국에 부고를 돌렸다 하니 선생의 유명도가 청의 하늘 아래에도 있었고 북학파의 선구 역할을 했음을 단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더하여 ‘조선 최초의 지전설’의 제하에 시계모양으로 동서양 지동설을 연결한 것은 상당히 돋보였다. 별과의 대화를 하던 농수각과 혼천의, 지도와 그림으로 보는 연행기, 담헌 선생의 인간관과 자연관을 볼 수 있는 사상, 별을 말하는 「의산문답」의 인물균사상(사람과 금수 및 초목이 동등하다는 사상), 우주무한론, 역외춘추론(세계 안과 밖이 없으니 내 서있는 땅이 세계의 중심)은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에 충분했으며 사람은 일을 할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발언권이 있다고 주창한 것이 250년 전이었음에도 선생은 시대를 앞서는 선각자였음을 말해주고 있음이다. 이어지는 해설 선생의 「천상열차분야지도」 설명은 압권이었다. 만 원권 지폐 뒷면에 있는 ‘보현산 천문대 천체 망원경’에서 발견해서 이름 붙였다는 홍대용 별 이야기, 북두칠성 6번째 옆별이라는 ‘알코르 별’은 시력이 좋은 사람만 볼 수 있어 로마시대 용병 채용 시 시력검사로 이용되었다는 이야기는 관심과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좋은 해설을 해준 선생께 큰 박수를 보냈음은 지극히 당연했다.     







점심 식사 후 추사 고택을 찾았다. 고택은 선생의 증조부인 김한신이 건립한 18세기 중엽의 건축물로서 당시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란다. 현재는 충청남도에서 매수하여 충남유형문화재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원래 99칸 이었으나 지금은 사랑채, 안채, 문간채, 사당채가 존재한다.


선생의 어릴 적 '입춘첩' 관련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여섯 살 때 쓴 '입춘대길'이란 글씨를 월성위궁 대문에 붙였는데 초정 박제가 선생이 이를 보고 추사의 아버지에게 "이 아이는 앞으로 학문과 예술로 세상에 이름을 날릴 만하니 제가 가르치겠습니다"라고 해 훗날 초정선생의 제자가 되었다. 또한 일곱 살 때 번암 채제공이 입춘첩을 본 후 추사 아버지를 찾아와 "이 아이는 필시 명필로서 이름을 세상에 떨칠 것이오. 그러나 만약 글씨를 잘 쓰게 되면 반드시 운명이 기구할 것이니 절대로 붓을 잡게 하지 마시오. 그러나 만약 문장으로 세상을 울리게 하면 크게 되리라"고 했단다.


선생은 채제공의 예언처럼 글씨로는 세상에 이름을 날렸지만 제주도와 북청에서 유배생활을 두 번이나 하게 되니 운명이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선생은 7세 때까지 이곳에서 생활하다 8살 무렵 백부 김노영의 양자로 들어가 집안의 종손과 친부의 장손으로 이중 몫을 하며 살아가게 된단다.


사랑채는 남향이며 앞에 ‘석년(石年)이라 쓴 빗돌이 세워져있는데 그림자의 길이로 시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한 일종의 해시계란다. 사랑채에는 세한도 복제품이 걸려 있으며 대청기둥에는 추사의 글씨가 붙어 있다. 서쪽으로 안채가 배치됐는데 동향이며 입구(口)자 형태의 고택으로 이런 경우 나무를 심으면 곤(困가난할곤)자가 되어 나무는 심지 않는다고 한다.


마루 기둥에 낯익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선생이 세상 떠나기 두 달 전쯤 썼다는 예술 세계를 대표하는 명작이며 백미인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이다. 뜻은 “가장 좋은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이며, 가장 좋은 모임은 부부, 아들, 딸, 손자가 모인 것이다.”(석한남 글) 내가 선생의 글 중 가장 즐겨 읽고 탐닉한 내용이다. 안채를 나서 사당채를 지나 조금 떨어진 곳에 <화순옹주홍문>에 다가서 본다. 화순옹주는 조선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설명되어 있다. 옹주는 영조 둘째딸로 김한신과 혼인 후 38세에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따라 죽었으며 정조가 정절을 기려 열녀문을 내렸다. 현재는 불타 없어지고 주초만이 남아 억울한 옹주의 을씨년스러움을 보는 듯했다. 고택 쪽에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 묘>를 둘러보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드디어 마지막 여정인 수덕사에 당도했다. 처음 오는 고찰이라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이틀 전 불상 몸속에서 팔백여년 전 희귀불경이 나왔다는 보도가 더 흥미를 자아냈다. 입구부터 경내가 만산홍엽 그 자체였다. 실력이 있다면 화폭에 담고 싶을 정도이나 열심히 휴대폰 카메라로 간직했다. 경내 모든 풍광이 좋았으나 내게 불현 듯 닥아 온 스토리는 단연 <수덕사 관음바위 전설>이다.







그간 관심을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주목하는 것과 상통하는 흥미법이다. 내용은 이렇다. “백제시대 창건된 절은 통일신라시대에 대 중창 불사를 하게 되나 불사자금 조달이 어려울 때 묘령 여인이 공양주를 하겠다며 나섰다. 여인의 미모가 빼어나「수덕각시」라는 이름으로 소문이 퍼져 그를 보기위해 인산인해를 이루게 된다. 그 중 신라의 대부호이며 재상의 아들 <정혜>가 청혼을 하게 된다. 여인이 불사가 원만히 성취되면 청혼을 받겠다하자 청년은 가산을 기울여 10년 걸릴 불사를 삼년 만에 끝내고 낙성식을 갖게 되는데 대공덕주로 참석한 청년이 여인에게 같이 떠날 것을 독촉하자 옷 갈아입을 말미를 달라며 옆방으로 들어가 기척이 없어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니 다른 곳으로 사라지는 여인에 당황한 청년이 잡으려 하자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그 속으로 들어가는 그를 잡으려하니 버선 한 짝만 남기고 사람도 방문도 없어지고 크게 틈이 벌어진 바위만 나타났다. 갈라진 바위 사이에서 지금까지 봄이면 기이하게 버선모양의 꽃이 피고 있단다. 그 때부터 여인의 이름에 따라 수덕사라 부르게 되었단다. 관세음보살이 헌신한 후 들어간 바위를 관음바위라고 부르게 되었고 수덕각시 바위라고도 부르고 있단다.” 이것으로 흥분 속에 토하고 기대했던 오늘 답사 일정은 아름다운 모양으로 내일을 기다리며 마무리했다.


어제의 좋은 감으로 일찍 일어나 산보하는 이, 스파하는 이 오늘을 준비하는 모습이 각양각색이나 또 다른 답사지의 기다림은 그저 좋다. 첫 여정은 홍주읍성과 홍주성역사관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축제가 한창인 듯, 각종 판매 부츠가 늘어져 있고 만발한 국화로 아치 등 모양을 한껏 꾸며놓았다. <홍주성 역사관> 해설 시간까지는 자유 시간. 주위국화와 단풍을 사진 속에 담으며 남문을 올라 망루에서 이어진 성곽 위를 거닐어본다.





홍주읍성 옥(감옥) 순교터를 둘러본다. 천주교 박해기간 113명의 순교자가 탄생한 곳이라는 표지 설명이다. 내부에는 태형 형틀과 옥사 1동을 재현시켜놓았는데 일행 중 일부는 가슴이 에려온다며 바로 나왔다. 이어서 해설사가 설명하는 역사관 관람이다. 대기 중에 눈에 들어온 문구가 “홍주지명 천년”이었다. 고려 초 ‘운주’라 불렀으나 1018년에 “홍주”로 고쳐 3군11현을 관할하게 하였으며 올해가 <홍주지명 천년의 해>라는 거다. 갑자기 <경기정명 천년의 해>가 연상되어 해설자께 경기도와 같다고 했더니 내용이 어떻게 되냐고 한다. 하여 “1018년 고려 현종 때 개경(송악) 주변 12개 마을을 묶어 경기라 하고 왕실과 수도를 보호, 지원하는 역할을 했으며 조선 건국 때 한성 주위로 옮긴 것이다”고 하니 흥미로운 사실하나를 배웠다고 고맙단다.



* 참고할 만한 해설


홍주는 조선시대 충청지역 4주(충주, 청주, 공주, 홍주)중 한 곳으로 유명 인물이 많이 났으며 천주교 박해와 홍주의병으로 유명한 곳이란다. 홍주는 이중환의 <택리지>에 “충청도에서는 내포 땅이 가장 좋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내포중심도시로 발전된 곳이다. 또한 홍주에서는 인물자랑을 하지 말라고도 한다는데 실로 나라를 위했던 역사 위인 분들이 많다. 고려의 명장 최영장군, 사육신 성삼문, 조선 유학자 남당 한원진, 독립운동가이며 시인 한용운, 청산리 전투 승리 김좌진 장군 등 이렇듯 존경 받는 분들이 많다보니 <홍성 인물 기획전>을 수시로 열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지하로 이어지는 역사관은 깔끔하고 잘 정돈된 느낌이다. 홍성의 위인 시대별 설명, 천주교 박해와 홍주 의병, 독립운동과 일제강점기 역사를 테마별로 구성을 했다.



그 중에서 실학박물관 인물과 연관되는 부분을 정리해본다. 먼저 다산 정약용도 감탄한 홍주목사 <유의>의 청렴함이다. 다산 선생이 금정 찰방으로 있을 때 부탁 편지를 보냈으나 답변이 없었다. 후일 그 연유를 묻자 “사적 편지는 대개 청탁편지라 읽지 않았다. 업무관련이라면 공문으로 보냈어야한다”고 질책했다는 내용이다. 다산 선생은 이 일화를 <목민심서>에 소개하고 있다는 내용. 이어 지봉 이수광에 대한 기록이다. 지봉 선생이 홍주 목사로 부임하며 읊은 감회의 시와 전임 목사와 주고받은 시가 소개되어 있다.


다음은 내가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나 관심 내용의 정리 부분이다. 첫째, 목사의 근무 공간인 동헌보다 객사가 더 중요했다는 사실이다. 객사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자를 새긴 나무 패)를 모시고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으며, 사신이나 중앙관리들의 숙소로도 사용된 곳으로 “임금의 공간”으로 간주되던 곳이란다. 당연히 관찰사가 일을 보는 동헌보다 격이 높았단다. 하여 홍주성도 객사는 43칸, 동헌은 22칸으로 지어졌다. 팁으로 하나 더. 탐관오리가 발생되면 전패가 사라진단다. 즉, 사또를 몰아내고자 할 때 전패를 내린단다. 둘 째, 학자의 심의가 논란이 되기도 해 크기를 통제했다는 사실이다.



남당 선생의 심의를 걸어 놓은 곳에 해설 선생이 등지고서며 설명했다. 본인 신체는 180cm이고 풍채도 보통 이상인데 내가 걸쳐도 크다며. 조선시대 키의 평균이 남자 150cm, 여자 140cm 이었다니 아마도 레드카페 위 지나는 것처럼 끌었을 거란다. 평민은 두세개를 만들 정도라 소매 품을 줄이도록 하거나 많이 만들지 못하게 했단다. 참고로 양반여성의 가채는 서울 집 한 채 값인데도 서너개를 만들어 가졌다고한다.


셋째, 진품명품 감정가격 15억 원(가치 80억 원)이라는 유물 「석천한유도」다. 이 유물은 1748년 화원 김희겸이 석천 전일상을 모델로 그린무인생활상과 문화사가 세밀히 반영된 것으로 얼굴은 초상화기법이며 전체는 풍속화로 문방사우와 무인이 좋아하는 넷(칼, 매, 말, 여인)을 소상하게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갑자기 숨이 멎는 듯 오그라들었다.







다음 들른 곳은 1800년 면천군수 연암 박지원이 세운 <건곤일초정>이었다. 골정지 한가운데 돌을 쌓아 작은 섬을 만들고 육각형 초정을 세워 건곤일초정이라는 현판을 걸었는데 두보의 시에서 따온 말이다.(설명 간판) 운치도 있고 연암의 유유자적함을 느끼며 단체촬영을 하고 아쉬운 부분은 다음을 기약하며 답사의 대단원을 마무리한다.



처음 참여한 1박2일 답사.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배운 소중한 체험이었다. 참여한 봉사자 선생님들의 배려와 넘치는 학구열이 돋보였다. 이동 중, 또는 막간을 이용하여 우쿨렐레와 하모니카, 서양피리로 감상적인 모습을 불러 주고 시사와 역사 내용을 들려주는 센스는 지식보탬 그 자체다. 알차고 멋진 내용으로 답사지를 선정하고 일정과 숙식 등 편의를 위해 아낌없는 배려를 해주신 박물관장님께 감사드리며 함께하신 박물관 모든 선생님들께 만족과 성심어린 봉사로 임하겠다는 모두의 다짐을 이글의 끝으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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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을 @안진희 @김수미 @조연성

    • 실학박물관/ 뉴스레터89호

      / 이강을(실학박물관 해설자원봉사자)

      편집/ 김수미(실학박물관 기획운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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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031-579-6000

      실학박물관 홈페이지/ http://silhak.ggcf.kr

      이용시간/ 10:00~18:00

      휴일/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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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실학박물관

    자기소개/ 실학박물관은 실학 및 실학과 관련된 유·무형의 자료와 정보를 수집·보존·연구·교류·전시하며 지역 주민에게 교육과 정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다목적 차원의 문화복합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건립한 국내 유일의 실학관련 박물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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