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 삼남길 10구간 소사원길

평택 원균장군묘 ~ 안성천교

<경기옛길-삼남길>


 삼남길 10구간 소사원길

평택 원균장군묘 ~ 안성천교



# 10구간 소사원길


소사원길은 칠원을 거쳐 경기도의 남쪽 끝까지 이어집니다. 새마을운동 모범마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칠원에서는 물맛이 훌륭하다하여 인조임금이 벼슬을 내렸다는 옥관자정을 볼 수 있습니다. 평택의 자랑인 배꽃 만발한 들판을 지나면 대동법시행기념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대동법시행기념비에서 미륵불을 보고 소사벌을 건너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인 안성천교에 이르게 됩니다.






# 대동법시행기념비(김육대동균역만세불망비), 평등하고 공정한 조세정책의 시작!




대동법은 각종 세금으로 바치던 공물들을 쌀과 포목으로만 내도록 통일한 조선시대 조세 개혁 정책입니다. 조선 전기에는 세금을 땅에 붙는 세금인 조(租), 균역과 요역을 말하는 용(庸), 지역 토산물을 세금으로 내는 조(調). 즉 조용조 제도를 세금 정책으로 채택했는데요. 후기로 갈수록 군역(군대), 요역(노동), 토산물을 세금으로 내는 공납의 비리가 심각해졌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군역과 요역을 지기 어려운 백성들은 떠돌이 난민이 되었고, 토산물을 내는 공납은 비리가 심해져 백성들이 도저히 납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폐단을 해결하기 위한 조세 개혁 논의는 선조 대에 처음 시작되었으나 대지주로 이루어진 기존 기득권층의 반발과 조선의 열악한 통신, 운송체계의 한계로 인해 쉽게 정착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최초 시행부터 완전 정착까지 거의 100년의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100여년의 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이 대동법을 정착시키고자 노력했는데요. 그 중 한 사람이 잠곡 김육입니다. 김육이 경기도에서만 시범적으로 시행되던 대동법을 삼남지방으로 확대하자고 주장한 덕분에 충청 지방까지 대동법이 확대될 수 있었습니다. 충청도의 백성들은 잠곡 김육 선생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그는 유언으로 아들에게 절대 부조를 받지 말라고 했는데, 유지를 받아 아들은 일체의 부조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육에서 은혜를 갚고 싶었던 충청도의 백성들은 부조 돈을 모아 그의 덕을 기리는 비를 만들고자 조정에 건의했습니다. 조정은 이를 수락하고 “김육대동균역만세불망비”를 세웠던 것이지요.


이 비는 본래의 명칭보다는 대동법시행기념비로 더 잘 알려졌고,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글 출처: 경기옛길 이야기책)



# 경기도 남단, 역사의 현장 소사벌의 안성천교






대동법시행기념비에서 여행자를 안내하는 미륵불을 지나면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인 소사벌의 안성천교에 이르게 됩니다. 소사벌의 안성천교는 안성천을 사이에 두고 충청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어 경기도의 관문 구실도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이 곳 소사벌은 큰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소사벌에서는 동아시아의 운명을 결정지은 두 번의 큰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 중 첫 번째가 정유재란 중인 1597년에 일어난 ‘소사벌 대첩’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명나라와의 휴전 회담이 결렬되자 다시 조선을 침공하여, 진주와 남원을 점령하고 삼남대로를 따라 평택으로 진출합니다. 끝난 줄 알았던 전쟁이었는데 다시 시작된 왜군의 파죽지세에 조선이 혼란에 빠졌지요. 전쟁의 향방을 결정할 위급한 상황에서 명나라 군대는 급히 출동하였고 소사벌에서 일본군을 대파하였습니다. 소사벌 대첩의 승리로 일본군의 북상은 저지되었고 남해안을 휘젓던 수군도 소사벌 대첩 열흘 뒤에 그 유명한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하였습니다.


이 두 번의 패배로 왜군은 더 이상 북상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결국 전쟁에서 패하고 맙니다. 동아시아를 지배하고 싶었던 일본의 야욕이 소사벌에서 좌절된 셈입니다.


소사벌에서 있었던 큰 전투 중 두 번째는 흔히 ‘성환 전투’라고도 하는 청일전쟁 중 일어난 ‘소사벌 전투’입니다. 1800년대 후반 조선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던 청나라와 일본은 결국 1894년 7월 풍도에서 벌어진 해전을 시작으로 청일전쟁에 돌입합니다. 풍도해전은 선전포고 없이 일본군의 기습으로 인해 벌어진 전투로, 청나라 군대는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는데요.


이 싸움 이후 일본과 청나라 간의 2차전이 소사벌에서 벌어집니다. 첫 교전은 아교 다리 부근에서 벌어졌습니다. ‘애고 다리’라고도 불렀던 아교 다리는 지금의 안성천교에서 동쪽으로 떨어진 지점에 있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청나라 군대는 매복 작전으로 일본군 정찰대를 전멸시켰습니다. 이후 소사벌과 안성천 등지를 중심으로 양측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교전에서 승리한 것은 청나라 군대이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기선을 잡은 것은 일본군이었습니다. 결국 한나절 만에 청나라 군대는 500여 명의 사망자를 내고 패퇴합니다. 청나라는 평양으로 후퇴하고, 일본군은 끝까지 추격해 평양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얻어냅니다.


결국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하게 되었으며, 중국 중심의 전통적인 동아시아 질서는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후 반세기 동안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했던 제국주의 일본의 야심은 바로 소사벌 전투에서 시작된 것이죠. 수난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후손들에게 교훈을 말해주는, 소사사원길입니다. (글 출처: 경기옛길 이야기책)






삼남길 10구간의 스탬프는 옥관자정과 대동법기념비에 있습니다. 약 100여 km에 이르는 삼남길의 여정은 평택 안성천교에서 끝이 납니다. 이후의 여정은 경기도를 벗어나 충청도로 이어집니다. 15개의 삼남길 스탬프를 모두 모으고 완주자가 되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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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 이야기책/ 신창희, 남찬원 저

      담당/ 윤소영 선임연구원, 장미 연구원, 박정화 연구원, 서조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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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학연구센터

    자기소개/ 경기도의 과거와 미래를 기록하다! 경기학연구센터는 경기도의 정신문화,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조사, 연구, 보존, 전승, 활용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범주에 해당하는 자체 사업 외에 외부 기관의 위·수탁, 보조, 용역사업을 수주 받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의 문화유산에 대한 아카이브 구축 및 관계 기관과의 네트워킹 등으로 경기도의 정체성 규명과 확립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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