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기천서원지 沂川書院址

경기도문화재자료 제75호




<기천서원>은 1580년(선조13)에 여주목사 박승임朴承任이 유림과 논의하여 중종 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안국金安國(1478~1543)을 추모하기 위해 마생동馬生洞에 마암사원馬巖書院을 세운 데서 비롯되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08년(선조41)에 현 위치에 복원하였고, 1611년(광해군3)에 이언적李彦迪(1491~1553)과 홍인우洪仁祐(1515~1554)를 추가 배향配享하였다. 1625년(인조3) ‘기천서원’으로 사액을 받았으며, 1661년에 정엽鄭曄(1563~1625), 이원익李元翼(1547~1634), 홍명구洪命耈(1596~1637)가, 1708년(숙종34)에 이식李植(1584~1647)이, 1802년(순조2)에 홍명하洪命夏(1607~1667)가 추배되어 총 8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기천서원지 외삼문, 2016 ©경기문화재연구원


1871년(고종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었다가 1937년에 김영진 등 지역 유림 백여 명이 기금을 모아 사우를 중건하고 ‘모현사慕賢祠’라 하였다. 1979년에는 서예가 김충현의 후원으로 건물을 새로 짓고 기천서원으로 복구, 1987년과 1994년에 부속건물이 중수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서원은 남양홍씨 종친회에서 관리하며, 음력 2월과 8월의 중정일中丁日에 향사鄕祠를 올리고 있다. 


기천서원지 제향, 2017 ©여주시


제향祭享 인물은 초기에는 김안국, 이언적, 홍인우, 이원익 등 남인계를 제향하다가 점차 서인계 인물이 추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김안국은 기묘사화 이후 여주에서 ‘범사정泛槎亭’을 지어 후진을 양성하였고, 이원익과 이식은 계축옥사 당시 인목대비仁穆王后의 폐모론에 반대하여 여주로 유배된 이후 은둔하였다. 정엽은 여주목사 재임 시절 선정을 베풀었으나, 계축옥사 이후 벼슬을 버리고 여주로 낙향하였다. 홍명구, 홍명하 형제는 여주 출신으로 홍명구는 병자호란 때 평안도관찰사로 청나라 군사와 싸우다 전사하였고, 홍명하는 현종 대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기천서원지 사당, 2016 ©경기문화재연구원


경내 건물로는 외삼문, 동재와 서재, 내삼문, 사당 등이 있다. 외삼문에는 ‘입덕入德’, 동재에는 ‘보인輔仁’, 서재에는 ‘권선勸善’, 내삼문에는 ‘경행景行’, 사당에는 ‘기천서원’과 ‘숭도崇道’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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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조선시대

      규모/ 일원 사당 3×2칸 동·서재 3×1칸

      재질/ 목재

      주소/ 여주시 금사면 뒷머리길 11

      지정일/ 1987.02.12

      소유자/ 남양홍씨종친회

      관리자/ 남양홍씨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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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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