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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국가주의와 한국인 디아스포라: 국경을 초월하는 음식 문화의 역동성에 관하여 2

2019-04-12 ~ 2019-04-12 /

이 글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코리안 디아스포라 국제 학술 컨퍼런스」 자료집에서 발췌되었습니다.

송창주(오클랜드대학교 교수)


IV. 조선족과 양꼬치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초국가주의적 음식 문화의 또 다른 예로는 중국 및 여러 지역의 조선족(Joseonjok) 양꼬치 산업을 들 수 있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양꼬치 식당은 조선족 이주민이 많이 거주하는 한국과 일본에 특히 많다. 그런데 양꼬치는 본래 조선족이 개발한 음식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 이 음식을 연변 지역의 조선족에게 처음 소개한 사람은 신장 지역의 위구르인이었다. 위구르의 보따리 상인들은 연변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자신들의 전통 음식인 양꼬치를 팔곤 했다. 이내 양꼬치는 조선족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일부 조선족 사업가는 양꼬치 가게를 하나 둘 내기 시작했다. 이후 양꼬치는 호프집이나 심지어 가라오케(karaoke)에서도 안주로 등장했다(위구르인은 무슬림이어서 술을 팔 수 없었다). 이렇듯 양꼬치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자 중국의 한족(Han Chinese)도 양꼬치 사업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양꼬치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들은 대부분 조선족이었다. 조선족은 먹고 마시는 문화가 매우 발달해있어 양꼬치 소비량이 다른 민족에 비해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다.

한편, 조선족도 처음에는 위구르인처럼 나무로 된 꼬치를 사용했다. 그러다 누군가 자전거 바퀴살을 꼬치로 사용하기 시작했다(연변과 오사카의 조선족 지인 증언). 그러자 조선족도 좀 더 전문적인 장비를 사용해 꼬치를 굽기 시작했고, 꼬치를 구워내는 과정 전체를 기계 설비로 바꾸기도 했다. 이러한 설비를 처음 도입한 것은 연변의 양꼬치 전문점 풍무(豊茂)였다. 이후 풍무 식당은 2011년 기계 설비를 좀 더 완성된 형태로 갖추었고, 현재 중국과 한국, 일본의 주요 도시에 수많은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오사카 남바 지역의 풍무 식당은 처음에는 아주 소규모로 시작했으나 현지 조선족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문을 연지 얼마 안돼 훨씬 큰 규모로 확장하기도 했다. 또한 처음에는 대부분의 손님이 조선족이었으나 지금은 한족과 일본 사람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조선족이 운영하는 수많은 양꼬치 식당이 현재 성업 중이다. 이처럼 조선족은 위구르인의 양꼬치를 다양한 혁신적인 방법을 이용해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를 이뤄냈다고 볼 수 있다.  


V. 고려인과 고려인 음식


오늘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중앙아시아 타슈켄트 지역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반 식료품 상점에서 김치나 나물 같은 한국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겉으로 봐서는 오늘날 한국인이 먹는 음식과는 좀 다르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들 지역에서만큼은 ‘한국 음식’으로 분류된다. 구소련 당시 현지인에게 가장 잘 알려져 인기를 끌었던 한국 음식으로는 김치와 미역무침(miyŏk much’im, 미역을 식물성 기름과 마늘, 기타 양념으로 무쳐낸 것), 가지무침(반 정도 익힌 가지를 네모 모양으로 잘라 식물성 기름과 기타 양념으로 무쳐낸 것), 그리고 당근무침(Koreiskiy markobiy, 당근을 잘게 잘라 식초와 소금, 식물성 기름으로 무쳐낸 것) 네 가지가 대표적이다.

고려인(Goryeo Saram)과 이들의 음식이 구소련 당시 현지인에게 확산된 데에는 고려인 이주와 관련해 다소 굴곡진 역사적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고려인은 러시아 극동 지역으로 처음 이주했을 때부터 러시아 현지인과 가깝게 교류하며 정착해나갔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연스레 서로의 음식 문화에 동화되어 갔다. 고려인은 러시아 사람이 즐겨 먹던 빵과 양배추, 토마토를 음식에 활용했고, 러시아인은 한국 음식에 흔히 사용되던 미역과 쌀을 먹기 시작했다. 당시 미역은 극동 지역 바다에 매우 풍부했지만, 러시아와 유럽인은 먹지 않던 해산물이었다. 그런데 고려인과 교류하면서 미역을 샐러드 형태로 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미역은 ‘바다의 양배추(marskoi kapusta)’라는 재미있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시작된 한국과 러시아 음식 교류의 첫 번째 단계인 셈이다.

두 민족의 음식 교류 두 번째 단계는 193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특징은 음식 교류가 이전에 비해 다소 느린 속도로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1937년 러시아 극동 지방에 거주하던 고려인은 당시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이곳에서 고려인의 음식 문화는 다시 한 번 변화를 맞게 되었고, 이들의 음식도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에게 소개되었다. 이들 민족 중에는 고려인과 함께 강제로 이주된, 당시 구소련의 지배를 받던 유럽 대륙의 여러 민족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면서 고려인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적인 음식 문화를 하나 둘 습득해나갔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음식 교류가 시작된 것이다. 예를 들어, 고려인은 우즈베키스탄의 대표 음식 플롭(plov, 필라프)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해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은 한국의 김치와 각종 나물반찬을 즐겨먹었다.

이후 1960년대에 이르러 고려인의 한국 음식은 러시아 전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 기간을 음식 교류의 세 번째 단계로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고려인이 기타 러시아 지역, 특히 러시아에 속한 유럽 지역으로 활발하게 이주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1953년 스탈린의 사망 이후 러시아에 해빙기가 찾아오면서 고려인에게도 완전한 자유가 주어졌다. 이제는 어디로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주해 마음껏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이때부터 대다수의 고려인은 여러 명이 무리를 형성해 각종 채소를 재배하는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러한 농사 방식은 코봉질(kobongjil)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Kwŏn & Khan 2004; Kim 1993; cf. Kim 1983). 또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 키예프 등 대도시로 떠나는 고려인도 있었고, 일부 학생은 민스크, 리가, 카잔, 오데사 등 소도시의 학교로 진학하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구소련의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원하는 곳에 취업해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고려인의 삶의 터전은 러시아 전역으로 확대되었고, 자연스레 이들의 음식 문화도 함께 퍼져나갔다.

이처럼 러시아에서의 한국 음식 전파는 고려인의 이주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한국 음식이 널리 확산될 수 있었던 데에는 또 다른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음식 문화를 포함한 러시아의 독특한 문화다. 일반적으로 러시아 문화는 노동자 중심의 집산주의 문화로 대표된다. 이와 함께 국민을 억압하는 역사가 오랜 시간 반복되었다. 내ㆍ외부적 정치 상황에 따라 탄압의 정도는 차이를 보였지만 국민들은 대체로 자유로운 삶을 누리지 못했다. 이러한 탄압은 스탈린의 독재(1927-1953) 당시 극에 달했고,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국민들은 레닌(Lenin) 시절보다 더 혹독한 탄압을 견뎌야 했다. 그럼에도 이 시기 러시아의 문화 수준은 급속히 발전해갔다. 러시아 사람들은 노동자 중심의 집산주의 문화를 바탕으로 강제 이주해온 여러 민족과 교류하면서 기존의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켜 나갔다. 더욱이 급속한 산업화는 이러한 문화 발전을 이끌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cf. Service 1999).

그런데 이러한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과 전반적인 문화는 러시아의 음식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우선, 자발적으로든 강제적으로든 여러 곳에서 이주해온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러시아 음식은 마치 다양한 국적의 음식을 섞어놓은 듯한 모습으로 발전해나갔다. 또 농업을 비롯한 기타 산업이 집단적인 형태를 띠면서 자연스레 여럿이 모여 점심을 먹었고, 이는 배식 위주의 식당 음식이 보편화되는 통로가 되었다. 러시아 음식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수프 형태, 특히 양배추를 비롯해 다양한 채소를 끓여 만든 수프가 발달했다는 점이다(Glants and Toomre 1997). 가정에서는 러시아 전통 음식을 먹긴 했지만, 대개 쉽게 구할 수 있는 몇 가지 재료만 사용해 간단하게 만들곤 했다(Kittler 2008; Mack & Surina 2005). 더구나 20세기 중반 서구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즐겨 먹던 바나나, 감귤주스, 파스타 같은 음식들이 당시 러시아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1980년대 후반 즈음부터 조금씩 공급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융합된 결과 러시아의 음식 문화는 독특한 형태로 발전해나갔고, 구소련 붕괴 후에는 더욱 빠른 속도로 변화해갔다(Ekström et al 2003).

현재 서울의 동대문과 전남 광주 등 일부 지역에서는 고려인 후손들이 고려인의 조리 방식을 재현해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VI. 결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날 한국인 디아스포라는 초국가주의에 기반한 문화적 태도, 즉 이국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방식과 자세로 다양한 음식을 개발해 전 세계에 널리 확산시켰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복잡하고 때로는 격동적인 이주의 역사와 더불어 이주 지역 현지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재일 한국인은 생계형 음식으로 호루몬야키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으나 이후 몇 가지 창의적인 방식으로 변화를 주면서 이 음식은 일본 전역에서 누구나 즐기는 대중적인 음식으로 발전해나갔다. 구소련 체제의 고려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제적으로, 또 자발적으로 러시아 각지로 이주하며 살았던 고려인은 이주 지역 현지의 음식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한국 고유의 음식도 널리 확산시켰다. 또 서구 국가의 한국인 이민자들은 일본의 스시를 세계화 하는데 일등공신이기도 했다. 여기에는 현지인의 입맛을 반영해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의성과 더불어 한국인 특유의 기업가 정신도 큰 몫을 했다. 이와 함께 중국의 조선족은 위구르족의 전통 음식 양꼬치에 다양한 혁신을 적용해 양꼬치 산업의 실질적인 강자로 우뚝 섰다. 특히 이들은 설비 전체를 기계화함으로써 싸구려 길거리 음식이었던 양꼬치를 고급 식당 음식으로 발전시켰다. 요컨대, 한국인 디아스포라는 국경을 초월하는 삶의 태도와 방식으로 한국 음식을 전 세계에 확산시킨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사례는 기업가로서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혁신적 성공을 나타낼 뿐 아니라 격동의 세계 자본주의 역사에 결코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온 이들 디아스포라의 모험적 태도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초국가주의에 기반한 문화적 태도는 세계화와 초국가주의라는 개념이 이들 디아스포라에게 일종의 해방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는 음식의 세계화 영역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음식은 다양한 전통과 창의적인 혁신이 만나 융합될 수 있는 유연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디아스포라는 기존의 음식에 창의와 혁신을 더해 또 다른 음식을 만들어냄으로써 이를 전 세계에 성공적으로 전파시켰다. 세계 각지의 이웃들은 이 음식을 맛있게 즐겨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디아스포라가 타민족의 고유 음식을 훔친 것일까? 글쎄, 음식에는 국경이 있을 수 없다. 음식을 조리하는 방식이나 먹는 방식을 국경에 따라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Mintz 1996). 민족 고유의 음식도 국경을 초월한 다양한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창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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