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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초국가주의와 한국인 디아스포라: 국경을 초월하는 음식 문화의 역동성에 관하여

2019-04-12 ~ 2019-04-12 / 토론문

이 글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코리안 디아스포라 국제 학술 컨퍼런스」 자료집에서 발췌되었습니다.

이석인(목포대학교 교수)


이 연구는 서론에서 인간의 이주가 음식과 요리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민족집단 간의 음식의 소개는 일종의 문화적 교환이며 이주를 통해 촉진된다고 주장한다. 에스닉 음식 비즈니스 관점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중국, 일본, 태국의 디아스포라에 비해 한류 붐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국제 무대에서 열위에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한국의 전통 요리가 로컬과 글로벌 요리 문화와 섞이거나 협상하면서 대중화되거나 세계화된 잘 알려지지 않은 소수의 성공사례를 이 논문에서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 사례는 빈민가의 재일 코리안(자이니치)들이 생계를 위해서 일본인들이 소나 돼지를 도축하는 과정에서 버리는 내장(호르몬)을 구어서 먹던 빈민가 음식 호르몬 야끼가 인기있는 고급 음식으로 발달한 이유를 설명한다. 오늘날 호르몬 야끼는 야끼니쿠 음식점 뿐만 아니라 이자카야(술 종류와 간단한 요리를 제공하는 음식점)에서도 취급한다. 호르몬 야끼가 이렇게 고급화된 데에는 기술적, 문화적, 사회적, 기업가적 혁신 때문이다. (1) 1960년대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일본사회는 문화적 개방과 다원화가 진전되면서 이국적이고 익숙하지 않은 외국의 음식, 패션 등을 수용하게 되었다. (2) 야끼니쿠 음식을 구울 때 나는 연기와 냄새 문제를 연기없는 그릴 기술을 통해 해결하였다. (3) 호르몬 야끼 비즈니스는 그동안 저질의 고기를 질 좋은 고기로 바꾸고, 최신의 인테리어와 예술적인 회뜨기 기술을 선보이는 등 많은 요리의 개선을 이루어 왔다. (4) 재일 코리안들은 호르몬 야끼를 스테미나(정력) 음식과 콜라겐이 풍부해 피부에 좋은 음식으로 마케팅 하였다.

두 번째는 북아메리카, 유럽, 오세아니아 등에 살고 있는 코리안들이 일본 음식점과 스시 바를 운영하는 사례를 다룬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일본이 경제 재건을 이유로 해외 이민자 수를 줄였다. 언어적 문제 등으로 인해 코리안들은 주로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고수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했다. 뒤늦게 북아메리카, 유럽, 오세아니아로 이민 온 코리안들은 새로운 틈새시장을 찾던 중 90년대에 인기가 있던 일본 음식점 비즈니스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선택하였다. 그 이유는 (1) 일본 음식은 한국 음식에 비해 준비가 쉽다. 일본 음식은 여러 가지의 반찬이 필요 없어 비용과 노동력이 적게 드는 반면에 한국 음식보다 가격이 비싸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2) 일제시대와 같은 과거 역사 속에서 다양한 문화적 교환을 통한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유사성이 중요한 요인이다. (3) 한국인과 일본인의 신체적 유사성으로 인해 서양인들은 양자를 식별하기 어려우며, 그들은 일본 음식점은 일본인들이 운영할거라고 가정한다. 설사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음을 안다고 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4) 한국인들은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고객들의 입맛에 맞게 새로운 스시를 개발하기 위해 도전하는 경향이 있다. (5) 일본 음식점 비즈니스를 하는 한국인들은 거주국에 일본의 문화를 대변한다. 이것은 혼종성, 초국가적 기업가정신에 관한 흥미 있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세 번째는 조선족들이 신장 위구르족으로부터 배운 양 꼬치 비즈니스를 중국 등의 나라에서 운영하는 사례이다. 조선족들은 양 꼬치와 맥주를 곁들이거나 노래방에서 양 꼬치를 판다. 조선족들은 처음에는 나무 꼬챙이를 사용하다가 자전거 바퀴살, 나중에는 전문적인 바베큐 설비와 도구를 이용하였다. 처음에는 주로 조선족들이 고객이었으나 지금은 한족과 일본인들도 있으며, 한국에 사는 조선족들이 양 꼬치 음식점을 많이 운영한다.

네 번째는 중앙아시아에 김치와 나물 등 한국 음식이 시장에서 많이 팔리는 사례를 소개한다. (1) 한국인들이 극동 러시아 지역으로 이주한 초기에는 한국인과 러시아인들이 서로 가까운 곳에 정착해서 음식을 교환했다. 한국인은 빵과 양배추와 토마토를 알게 되었고, 극동지역 러시아인은 샐러드 형태로 미역 먹는 법을 배웠다. (2) 극동 러시아지역에 있던 한국인들이 1937년 중앙아시아인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추방되었을 때 그들의 음식이 소개되었다. 한국인들은 필라프 같은 로컬 음식을 배운 반면 중앙아시아 민족 집단들은 김치와 야채요리를 배웠다. (3) 1960년대 이후 한국 음식이 소련연방 전역, 특히 유럽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중앙아시아로 추방됐던 한인들은 스탈린 사망 후 공부와 직업 목적의 거주 이동을 허락받았다. 대다수 한인들은 모스크바와 같은 큰 도시로, 한인 학생들은 민스크와 같은 소도시로 직업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 한국 음식이 소련연방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4) 구 소련연방에 한국 음식의 세계화 이유는 독특한 음식문화를 포함한 소련연방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 소련연방 문화는 집단주의와 노동자 중심이 특징이다. 소련연방의 음식 문화 또한 그 시대의 일반적인 문화적 정치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다.

이 연구는 결론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초국가적 문화 실천과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다양한 음식 아이템들을 세계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음식은 항상 다양한 전통과 창조적 혁신이 만나는 현장이며,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경이로운 요리들을 창조하고, 혁신하고, 세계화하는데 탁월한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한다. 




이 연구는 한국 음식이 거주국 음식 문화와 교류하면서 대중화되고 세계화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초국가주의와 코리안 디이스포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참신한 논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첫째, 이주와 음식 문화, 코리안 디아스포라와 한국 음식 등에 관한 선행연구가 충실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용된 논문들도 주로 오래된 문헌들로 최신 연구흐름을 보다 심도 있게 고찰할 필요가 있겠다.

둘째, 서론에서 한류 붐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중국, 일본, 태국에 비해 해외 한인이 자신의 커뮤니티를 넘어서 한민족 음식 문화를 상업화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또한, 한류가 한국 음식을 국제 무대에서 보다 인기 있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도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없다. 예를 들면, 일본에 있어서 한류 붐은 90년대 후반 중년 세대들의 전유물이었던 1차 한류, 20년대 중반 10대~20대 청년 세대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한 2차 한류, 침체기를 거쳐 2017년부터 트와이스나 방탄소년단 등의 활약으로 다시 붐이 일어난 3차 한류 등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당시의 유행에 따라 1차 한류 붐에서는 대부분 삼겹살집을 하고, 2차 한류 붐에서는 막걸리집을, 3차 한류 붐에서는 치즈 닭갈비집을 하는 경향들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셋째, 첫 번째 사례에서 호르몬 야끼가 고급 브랜드로 성장한 이유에 대한 설명은 충실하게 되었으나 일본사회에서 재일 코리안 야끼니쿠 비즈니스가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영세한 코리안 야끼니쿠 전문점이 일본 대기업자본의 프렌차이즈점 등장으로 경쟁에서 밀려 폐업, 재일코리안 인구구조 변화(1세 경영에서 3D 중노동이라고 느끼는 후세들이 전수하지 않는 등 감소 추세), 일본 외식산업에서 야끼니쿠 비즈니스의 비중 등의 설명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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