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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세계화시대 조선족 디아스포라와 그 정체성 2

2019-04-12 ~ 2019-04-12 /

이 글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코리안 디아스포라 국제 학술 컨퍼런스」 자료집에서 발췌되었습니다.

허명철(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Ⅲ. 조선족 디아스포라의 정체성


그렇다면 조선족의 세계적 이동성, 생존 전략, 국제적 나그네라는 특성은 과연 "나라를 잘못 만나 떠돌아다니는 사람(신혜란: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 이매진, 2016년, P.16)"들이기 때문이었을까? 이들이 잘못 만난 나라는 중국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처음부터 디아스포라로 만들었던 한반도(국가)를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현재 이동을 통해 선택한 거주국 또한 이들의 삶의 욕구를 만족시켜주고 있는 이상적인 나라인가. 어찌 보면 이동에서 이동으로 거듭하는 조선족의 디아스포라 선택은 이 모든 것을 모두다 부정해주고 있는 것 같다. 이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재이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날로 향상되는 삶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이동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이들의 생존전략인 것 같다. 어쩜 세계화란 열린 시대에 주어진 자율적인 인구이동의 혜택을 충분히 향수하면서 생존전략을 구상하고 실천하고 있는 조선족과 이들이 형성해 나가고 있는 디아스포라와 지속적인 유대적 관계를 유지하고 정책적인 후원을 제공하면서 하나의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한민족 디아스포라 연장선에서 조선족의 정체성을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당대에 진행되는 조선족의 디아스포라는 중국국적을 소지하고 중국의 소수민족신분으로 해외로 진출하고 있기에 이들의 디아스포라는 중국을 조국으로 좌표설정할 때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민족 아닌 국가좌표설정에 따라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의 디아스포라담론 역시 아이러니하게 진행되고 있다. 즉 역사적 좌표에 따르면 고국 땅을 되찾은 한민족성원으로 이미 개념적인 함의로 규정되는 디아스포라라고 정의하기는 인식론적인 혼란을 조성하게 된다. 오히려 중국의 입장에서 놓고 보면 이들은 해외로 이주 및 정착한 디아스포라이며 학문연구의 대상에서 일명 신화교로 명명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조선족을 재외동포로 간주하는 것도 현재 한국에서의 생활상황을 떠나서 중국국적 소지자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족은 여전히 해외, 즉 중국에 거주하는 한민족성원이기에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한 갈래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놓고 보아도 중국국적자인 조선족이 국적변경을 통해 한국인으로 되었지만 실생활에서는 여전히 조선족이란 신분을 지켜가고자 한다. 어찌 보면 해외에서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한국이라는 고국에 돌아와서 디아스포라와 결별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로 이동했던 디아스포라가 다시 고국의 문화에 적응해야 하고 법적인 차원을 떠나 한국인의 눈에 비치는 다문화구성원으로 되어 있는 신세이다. 현재 한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다문화정책을 놓고 보아도 역시 모순적이다. 조선족이 한국인과 결혼했을 경우 이는 기준대로 외국인과의 결혼이기에 다문화가족에 속하지만 조선족은 동포라는 이유로 다문화정책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다문화는 국가단위로 할 것인가 아니면 동포를 단위로 할 것인가 하는 기준의 변동에 따라 이들의 신분도 바뀌게 될 것이다. 즉 국가를 단위로 한다면 조선족은 다문화에 속하지만 동포를 단위로 한다면 동일문화에 속하게 된다. 다문화는 말 그대로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지향하는 것인즉 이러한 문화의 주체가 누구냐를 어떻게 구분하는가가 관건이다. 이 같은 원론적인 문제가 해결보지 못한다면 한민족의 디아스포라에 조선족이 포함되느냐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 논쟁거리로 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국가에서 제정하는 재외동포지원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상기 문제와 관련되는 몇 가지 개념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민족개념이다. 서구에서 근대 민족개념으로 사용되어 온 내션(Nation)은 겨레, 국민, 국가 등 복합적 개념이 어울려진 용어로써 정치적 영토와 관련되는 용어이다. 1903년 양계초선생은 내션을 민족으로 번역하여 중국에 소개하였으며 그 뒤로부터 중국에서 사용하는 민족이란 용어는 복합적인 개념으로서 “국민 + 민족”이다(《중국대백과전서》(민족권), 중국대백과전서출판사, 참조). 하지만 혈연성을 강조했던 동양에서의 민족은 “겨레”라는 의미를 더 많이 담고 있다. 20세기 60년대부터 서양에도 에드닉(Ethnic)이란 용어가 출현했는데 에드닉은 대체적으로 정치적공동체인 국가권이 미치는 역사적, 문화적, 혈연적 공동체를 지칭한다. 현재 학술계에서는 民族, 族裔, 族群이란 용어로 에드닉과 내션을 구분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명확히 구분되어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중공에서 권위적으로 사용되었던 민족개념은 스탈린의 내린 정의이다. 스탈린에 의하면 “민족은 역사상에서 형성된 공통된 지역, 공통된 언어, 공통된 경제생활 및 공통된 문화특징에서 나타난 공통된 심리의 기초위에서 발생한 역사적으로 형성된 공고한 사람들의 공동체(『스탈린전집』(중문판) 제11권, 인민출판사, 1995년, pp. 268)"이다. 스탈린의 정의는 민족에 대한 네 가지 요소, 즉 공동한 지역, 공동한 경제생활, 공동한 언어, 공동한 문화심리가 그 핵심으로 되고 있으며 동양적인 정서가 다분한 민족의 혈통조건은 배제되어 있다. 사실상 민족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독일의 학자 케루로이터가 지적했듯이 본질적으로 혈연에서 산생하고 일정한 공간의 생활가운데서 기틀이 잡히고 동일한 문화에서 형성된 공동운명체로서 혈연, 지연, 언어, 종교, 정치, 경제, 역사적 운명과 같은 객관적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주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민족정신, 민족의식, 민족감정과 같은 주관적 요소에 의해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정체성이다. 사실 원론적으로 접근해 보면 한 개 사회집단이나 민족의 정체성은 일반적으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정의되는 것이다. 정체성(identity)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던 에릭슨(Erik.H.Erikson)도 인간은 타자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간다고 주장한다. 어찌 보면 정체성이란 어느 개인이나 집단 등의 주체가 자기규정이나 귀속의식을 확인하는데 중점을 둔 개념이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형성되는 것이며 따라서 주체적인 자각과 노력에 의해 재생산될 수 있다는 주관적인 성향도 배제할 수 없는 것 같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정체성의 기본 핵은 개인과 집단 등 행위주체의 자아확인 혹은 귀속의식이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체성을 담론함에 있어서 정체성이 무엇인가 하는 정적인 연구도 중요하겠지만 시대적 상황과 민족구성요소의 변동에 따른 정체성변화에 대한 동적인 연구도 진행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타자와의 관계라는 논리에 따라 주체성을 논의한다면 조선족의 정체성문제도 타민족집단과의 관계라는 틀 속에서 규명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이렇게 놓고 본다고 할 때 조선족공동체구성원들이 지닐 수 있는 정체성은 다원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우선 중국 내 기타 민족과 구분되는 민족 집단으로서 조선족공동체로 상징되고 있으며 국적귀속이란 차원에서 본다면 중국공민이란 정체성도 지니게 되며 국민이란 점에서 중국 내 기타 민족과 동일하게 중화민족의 성원으로 된다. 다른 일면 역사적, 혈연적 근원과 문화적 맥락을 따진다면 또한 한민족이란 정체성을 부정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조선족은 타자의 선정에 따라 다원화한 정체성을 소유하고 하는 특수한 공동체적 존재인 것이다.

셋째는 조국과 국가이다. 조선족은 이주민과 그 후예들로 구성된 민족공동체이기에 국가귀속에 대한 자아정립에서 부딪치게 되는 문제가 바로 조국과 국가에 대한 해석이다. 중국의 경우 조국은 “자기의 나라”, “내가 살고 있는 나라”로 해석되고 있지만(《현대한어사전》참조) 한국에서는 조상 때부터 살아온 나라, 민족의 일부 또는 국토의 일부가 떨어져 다른 나라에 합병되었을 때 그 본래의 나라로 해석된다.(《국어사전》) 따라서 조선족에게 있어서 상이한 시각에 따라 상이한 조국이 생긴다. 즉 중국의 논점에 따르면 조선족의 조국은 중국이지만 한국의 논점에 따르면 조선족의 조국은 한반도이다. 조국이란 단어에 “조상의 나라”란 뜻이 담겨 있지만 개체 성원들이 소속되어 있는 민족의 생존과 발전에 필요한 물리적 공간과 생태자원뿐만 아니라 본 민족의 언어문자, 생활습관, 역사문화와 심리소질 등 사회문화적 자원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자원에 대한 공동한 향수와 전승은 세대간의 생사와 혈맥을 같이 하는 의존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조국에 대한 비할 바가 없는 사랑과 두터운 정을 산생하게 한다. 따라서 조국에 대한 사랑은 정감의 발로로서 자발성적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근대적 의미에서의 국가는 일정한 영토를 보유하며, 영토 내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을 가진 집단이며 국가에 대한 감정은 공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가 안받침 되는 강압적인 일면이 더 짙은 것이다.

하지만 과경이주를 통해 타민족국가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달리 경험될 수 있다. 왜냐하면 국경은 그 자체가 국가권력의 배타적 영향력의 표식이자 동시에 “국적”을 가르는 기준이며 민족사회를 구분하는 하나의 “경계”이기 때문이다(김태만:「재중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트라우마」, 황유복 외:『글로벌조선족문화네트워크와 문화산업연구』, 아시아경제문화연구소, 2012). 특정된 지리적 원인으로 조선족선인들이 한반도에서 중국동북지역으로의 월경행위는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이루어지었지만 월경 후 새로이 삶의 터전을 가꾸고 타민족과의 접촉 속에서 스스로의 자아정체성에 대한 확인을 외부로부터 강요당하거나 또는 스스로 “나는 누구냐”하는 자아검열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주민 특히 불법이민자의 신분으로 중국에서 삶의 터전을 가꾸어 왔던 조선족선민들이 초기 주류사회에서 배척당하고 재산과 생명안전이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했던 주요한 이유는 개인적인 원인을 떠나서 민족 또는 국적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른바 고향 또는 “조국”을 떠나 이국타향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오는 심리적 갈등과 괴리이다. 이러한 갈등과 괴리를 경험하면서 조선족이민세대들은 스스로의 자의식에 기초해 “이민자 의식”을 습득해가게 되며 자아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민족교육에 주력하면서 자발적 "크레올(creol)화(크레올(creol)이라는 용어는 유럽식민통치시기 그 의미는 달리 해석되어 왔지만 대체적으로 “식민지에서 태어난 순수 백(흑)인종”을 지칭하는데 본문에서 그 외연을 확대하여 천입지에서 태어난 민족구성원을 지칭)"에 의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 온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형성된 정체성은 단지 중국내에서 조선족집단 결속을 위한 것이었을 뿐 한민족과의 경계를 쌓기 위해 형성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현재 재한 조선족과 한국인과의 문화적 갈등과 일상에서 경험하게 되는 문화적 차이성은 지역적 사회적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서로 다른 민족집단이 영위해 가는 민족문화의 차이성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한반도에 있는 한민족과 중국내 조선족은 국적이 다르지만 동일민족임은 양 국가의 정부차원에서도 이미 공감을 형성한바 있다. 이에 대한 유력한 증거가 바로 한국에서 조선족을 상대로 실시했던 방문취업제도이라고 할 수 있다.


Ⅳ. 나오면서


근대화라는 세계적인 물결에 뒤늦게 가세한 한민족의 근대화이행에서 특징적인 것들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일 것이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해외로 이주하기 시작한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역사는 이미 150년의 역사를 넘어서고 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독일, 캐나다를 비롯하여 세계 각지로 진출한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이미 700만 명을 넘는 귀중한 자산을 축적하였고 한민족의 문화를 세계 곳곳에 확산 및 정착시켰다. 한민족의 초기 초국가적인 이동과는 달리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디아스포라는 1차적인 이동과 정착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이동에서 이동으로 이어지는 순환과 반복 속에서 완성되어 가고 있으며 자신의 옛 삶의 터전으로의 귀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담론하고 있는 디아스포라는 단순 한 개 생활공간을 떠나 다른 생활공간으로 이주하는데 그치는 이동만이 아닌 특정 생활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세계를 활무대로 하는 민족확산이다. 단 이러한 이동 속에서 이동되지 않는 것은 바로 마음 속 깊이에 간직되어 있는 고향의식이나 고국에 대한 애정이다.

중국 근대역사의 격변을 몸소 체험하고 자신들의 지혜와 의지로 삶의 터전을 다져오고 현지화를 이룩하여 중국의 한 개 소수민족으로 성장한 조선족집단은 오늘날 중국에서 180만 명으로 구성된 민족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이동 속에서 자신들만의 특유의 디아스포라문화를 창출해 내고 있다. 지역적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국가를 초월하며 다국적인 가정경영의 책략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이들 조선족에게 있어서 디아스포라는 아픔만 아닌 일종의 보다 나은 삶의 선택일 수도 있다. 현재 조선족은 비록 문화적으로 현재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과 상이한 양상을 보여 왔고 생활방식에 있어서도 상당한 차이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중국의 한 개 소수민족으로 있는 조선족은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과 동일민족이라는 사실이다. 이 같은 본질주의적 동질성과 표상화되어 있는 괴리성은 우리들에게 더 이상 혈연과 문화에 연연하면서 민족을 담론하고 정체성을 규명하는 것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음을 시사해 준다. 우리가 하나의 민족정체성을 영위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공동의 역사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고 우리들의 가슴 깊이에 잠재되어 있는 집단 "무의식"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혈통과 언어 그리고 국적과 관계없이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감과 경험이야말로 민족정체성의 핵심이라 하겠다(서경식 저, 임성모 이규수 역,『난민과 국민 사이』,돌베개, 2006, p.142 참조). 한국에서 정의되고 있는 재외동포는 한국국적을 소유한 재외국민(외국에 영주하거나 단기간 또는 장기간 체류하는 한국인)과 외국국적을 소유한 한인, 그리고 무국적의 한일을 포함한 해외에 거주하는 모든 한인을 가리킨다. 1999년 12월부터 시행된 <재외동포의 출입국 및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즉 재외동포법에 의해 배제되었던 조선족은 개정안에 따라 재외동포라는 법적 지위는 획득하였고 "조선족은 우리의 미래일 수도 있다(신혜란,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 이매진, 2016년, P.13)"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연장선에서 조선족을 바라보고 조선족이 이룩하고 있는 디아스포라를 하나의 자원으로 간주하고 글로벌시대 우리민족의 위상을 제고시킬 수 있는 파워로 간주한다면 이들 디아스포라들이 모일 수 있는 하나의 구심점, 마음의 안식처를 구축하고 제공해주는 것이 우리들이 당면한 과제인 것 같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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