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디아스포라 국제 학술 컨퍼런스] 이산과 분단을 넘는 예술혼, 코리안 디아스포라 미술 2

2019.04.12 /

이 글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코리안 디아스포라 국제 학술 컨퍼런스」 자료집에서 발췌되었습니다.

박본수(경기도박물관 책임학예사)


3. 네 가지 키워드, 기억․근원․정착․연결


이번 전시를 기존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관련 전시와 차별화하기 위해서 취한 전략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이미 한국에 소개된 바 있는 작고작가와 원로작가보다는 현지조사를 통해 만나거나 소개를 받은 생존 작가 중에서 전시의 기획 의도에 맞는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였다. 두 번째로는 이주 1세대~2세대를 넘어 3세대~4세대로 맥을 잇고 있는 재외한인 동포 작가들의 세대별 연계성을 살피기 위해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청년작가들도 다수 초대하고자 했다. 덧붙여 말하자면, 한정된 전시예산과 준비시간으로 인해 초대할 수 있는 작가 수와 전시 규모를 제한적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으며, 선행된 코리안 디아스포라 전시에서 소개된 적이 있는 작가와 작품들도 재차 전시에 초대한 경우도 없지는 않다. 이와 같은 사정은 바로 세 번째의 전략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다시금 ‘아시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미술’이 가지는 주제의식과 시대정신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현지조사를 통해 만난 작가와 작품을 보면서 은연중에 깨닫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전시의 기획 전략 세 번째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주제의식과 모티브를 분석하여 크게 네 부분으로 전시 구성을 하고 작품을 배열했다는 점이다. 그 네 가지의 주제의식과 모티브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기억-근원-정착-연결’이며, 키워드와 함께 서술형 소제목을 붙여 ‘①기억(記憶), 이산의 역사 ②근원(根源), 뿌리와 정체성 ③정착(定着), 또 하나의 고향 ④연결(連結), 이산과 분단을 넘어’라는 네 개의 부분으로 전시를 구성하였다.

제1부 ‘기억(記憶), 이산(離散)의 역사’는 아시아의 재외 한인 이산의 역사에 대한 집단적이고도 개인적인 기억과 서사를 다룬 작품들로 구성하였다. 자발적이 아닌 타의(他意)에 의한 이주, 원치 않고 준비되지 않은 이산(離散)의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記憶)이 코리안 디아스포라 미술의 첫 번째 정수(精髓)였다. 1937년 소련의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사건을 그린 문 빅토르와 리 게오르기, 림 라나 작가의 작품과 1945년 광복 이후에도 귀국하지 못한 러시아 사할린 동포들의 비극을 그린 주명수 작가의 작품들이 주는 울림이 컸다. 여기에 하얼빈의 권오송 작가가 그린 안중근 의사의 의거 장면, 일본군 731 부대의 만행에 관한 그림은 한 편의 역사화로서 교훈을 준다.

제2부‘근원(根源), 뿌리와 정체성’은 해외 한인 동포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재외한인 동포는 민족적으로는 한민족에 속하지만 국가적으로는 다른 나라의 국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재일동포의 경우에는 일본으로의 귀화를 종용 당하거나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도 하지만, 이도저도 아닌 ‘조선적’이라는 무국적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혈통에 따른 국적과 거주지에 따른 국적의 불일치라는 이중적 상황과 현지에서 소수자로서 살면서 당하는 차별과 부조리함은 슬프고 서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를 떠나 이주를 시작한 증조부모나 조부모의 모습에서부터 부모와 가족을 그린 그림들, 자신의 자화상, 그리고 백두산과 제주도 같은 혈통적 조국 산하의 풍경, 탈춤이나 돌잡이, 제사와 같은 풍물과 전통적 관습 등을 그린 여러 동포 작가의 작품에서는 한민족으로서의 혈통적․문화적 정체성을 느끼게 된다.

제3부 ‘정착(定着), 또 하나의 고향’은 아시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가들이 조국을 떠나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세상에 정착하고 적응하면서 만나게 되는 시각적 대상을 그린 작품들을 보여준다. 또 다른 고향인 현지의 자연 풍경과 도시의 모습, 인물과 풍속, 역사와 종교 등은 그들 작품의 주제가 된다. 혈통적 조국이 아닌 거주국의 국민으로서 갖게 되는 국가․국토․현재에 대한 애정이 여러 작가의 작품에서 간취된다. 모든 예술은 풍토성을 띠는 것이 당연하므로 거주국의 관습과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거주국 미술계의 역사와 현대미술의 상황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제4부 ‘연결(連結), 이산과 분단을 넘어’는 동포 작가들이 한민족으로서의 민족의식과 한반도의 문화적․정치적 현상에 대한 관심을 투영하여 그려낸 작품들을 보여준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반도에 사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재외 한인 작가들에게도 남과 북의 대치 상황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한과 북한이 마주하는 대화의 자리가 자주 열려, 분단을 극복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확립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그림들이 꽤 많다. 특히 재일동포 작가들의 작품에 분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의 작품이 많아 보인다. 한편으로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이 조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한 관심과 공감을 표현한 작품도 더러 있다. 이처럼 아시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작품에는 이산과 분단을 넘어 ‘우리’로 연결되는 공통의 문화적 언어가 들어 있다.


4. 이산과 분단을 넘어


2018년 9월 20일 전시개막과 뒤이은 추석연휴를 지낸 후, 10월 4일부터 7일까지 4일간의 일정으로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을 한국에 초청하였다. 25인의 작가 중 21인의 작가, 그리고 포럼 발표자 등이 한국에 와서 전시연계 프로그램을 함께 했다. 10월 5일 국제학술포럼은 ‘아시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미술’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윤인진 고려대 교수는 기조강연인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현황」의 결론으로 “과거의 디아스포라가 가진 강제이주, 핍박, 고립, 단절의 부정적 이미지를 네트워크, 개발, 협력, 다문화, 창의성의 긍정적이고 현대적인 디아스포라의 개념, 즉‘긍정 디아스포라(Positive Diaspora)’로 전환해야할 때”라고 했다. 아시아 5개국 코리안 디아스포라 미술에 대해서는 윤범모 교수(일본), 김복기 교수(중국), 조성용 교수(러시아 사할린), 최 빅토리야(우즈베키스탄), 김 옐리자베타(카자흐스탄) 님의 발표가 전개되었다. 10월 5일, 오후 4시에는 전시의 공식 개막식이 열렸다.

개막식에서 작가 대표로 인사말을 하던 카자흐스탄의 리 게오르기 작가가 이 전시회의 포스터 이미지로 사용된 자신의 작품 〈이주〉를 경기도미술관에 기증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이로 말미암아 전시를 마무리하는 시점까지 13인의 참여 작가가 작품 기증을 신청했다. 일본의 이경조․박일남 작가, 중국의 유흥준․황철웅․황윤승․최길송 작가, 사할린의 주명수․조성용 작가, 우즈베키스탄의 림 라나․리 옐레나 작가, 카자흐스탄의 문 빅토르․리 게오르기․김 예브게니 작가가 그들이다. 114점의 출품작 중 13점은 11%를 넘는 비율이다. 이 작품들로 인해 경기도미술관이 ‘아시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미술’ 작품을 소장하는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 같다. 다시 한 번 기증 의사를 밝혀주신 작가님들께 감사드린다.

10월 6일 진행된 참여작가 워크숍은 ‘이산의 기억저장소와 분단의 현장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 관람, 파주 통일대교를 넘어가 비무장지대 안의 제3땅굴, 도라전망대, 도라산역 관광을 하고, 미군 시설을 개조한 캠프그리브스 유스호스텔에서 1박을 하며 저녁 프로그램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참여 작가들은 청명한 가을날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땅과 분단의 풍경, 아울러 맛있는 한국의 음식을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할 것이라고 했다. 전시연계 행사로 실행한 국제학술포럼과 참여작가 워크숍은 지난 3월 일본 출장 중에 도쿄에서 가진 조선대학교 리용훈 교수와의 회합에서 윤범모 교수가 제안한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만남과 친교의 장’, 이른바 ‘도쿄 구상’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뿌듯하고 가슴 뜨거운 기억으로 남는다.

케테 콜비츠(1867-1945)는 “교태와 치장이 예술의 전부가 아니다”고 했다. 타의에 의한 이산을 겪고, 각자의 위치에서 소수자로서 살아온 아시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작품 속에는 시련과 고통을 겪고 피어난 예술혼과 풍성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가의 미술이 이산과 분단을 뛰어넘고 한민족을 위한 축복과 번영의 매개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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