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정수연

[문화플러스] 판소리 뮤지컬 콘서트 "재인별곡"

2019-07-31 ~ 2019-07-31 / 2019년 경기북부 문화예술공모지원사업


경기도 연천군에 위치한 재인폭포에는 줄타기에 뛰어났던 재인과 그의 아내 이야기가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옛날 재인이라는 탁월한 줄타기 광대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미모의 아내가 있었다. 어느날 고을 원님이 우연히 그의 아내를 보고 반한 나머지 재인에게 폭포 위에서 줄을 타게 한 후 줄을 끊어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의 아내에서 수청을 들게 하였는데, 그 아내가 수청을 드는 척하다가 그 원님의 코를 물어뜯은 뒤 혀를 깨물고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부르게 되었고 이 마을은 절개를 지켜 원님의 코를 문 그의 아내가 살았다 하여 ‘코문리’라고 불렀는데 후일 어음이 변화되어 고문리(古文里)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번에 공연된 <재인별곡>은 연천군과 경기문화재단, 창작전문프로덕션 엠제이플래닛, 지역예술단체 예술문화단 놀패가 힘을 합쳐 이 이야기에 연극적 상상력을 덧붙여 창작한 ‘판소리 뮤지컬 콘서트’이다. 원님의 코를 물고 자결한 사건을 두고 저승에서 염라대왕이 재인의 아내를 천국으로 보낼 것인지 지옥으로 보낼 것인지 재판을 벌이면서 시작되는 이 콘서트는 부정한 권력과 욕망에 대한 풍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당차게 전달하는 여성상을 보여주며 지역 설화에 머물지 않고 이 시대의 보편적이고 시의성 있는 주제와 연결시켰다.


일반 뮤지컬과 달리 콘서트를 표방한 만큼 연주자들을 무대 위에 배치하여 음악과 효과음을 라이브로 연주하게 하였고, 배우들은 재담과 연기로 스토리를 끌고 가면서 라이브 공연을 통해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였다. 놀패는 작곡가 김승진과 소리꾼 김봉영, 배우 유정민의 조합을 통해 판소리, 랩, 나레이션, 비나리, 코러스까지 지금까지 시도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극음악’을 시도하였다고 이 작품을 소개하였다. 각 장르별로는 익숙한 판소리, 뮤지컬, 콘서트이지만, 이 세 가지를 결합시킴으로써 관객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신선하고, 낯설지만 자연스럽게 호응할 수 있는 공연으로 탄생시켰다. 출연자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정극을 하다가도 연주자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다가도 정색을 하며 극으로 돌아가는 것도 콘서트 형식의 뮤지컬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였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예술문화단 ‘놀패’는 2006년 4월 ‘극단 마당’으로 창단된 단체로서 지역 안에 잊혀가는 문화·예술의 본질을 찾고 현재적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에 땀을 흘리기 위해 모인 예술활동가들의 집단이다. "내일 활동계획은 지역주민과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마당을 펼치는 것이고, 창작의 방향은 지역의 삶과 그 이야기를 예술로 풀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고 자신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작품 역시 이러한 방향성을 반영하여 연천 지역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재창조하여 현재화한 예술콘텐츠로 개발하였고, 세대를 아우르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지역 문화인프라를 형성한 예라 할 수 있다. 7시에 시작하는 공연장에 들어서니 대기실까지 안개가 낀 듯이 뿌연 느낌이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 에어컨을 세게 틀어서 그런가 했는데, 배경이 저승이다 보니 분위기를 내려고 일부러 무대에 효과를 넣은 것이다. 또한 재인이 줄타기를 할 때는 폭포에서 날리는 물안개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였다. 스토리와 음악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무대의 조명이 물안개와 어울려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무대를 만들었다.


이날 공연에는 약 150여명의 관객들이 공연을 관람했는데, 단순히 관람하는 형식이 아니라 출연진이 관객들에게 말을 걸거나 질문을 하거나 추임새를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관객들을 공연에 관여시켰다. 관객들은 적극적으로 이에 호응하였고, 무대를 보다 능동적으로 즐길 수 있었다. 적은 출연진과 무대 세팅, 의상을 바꾸지 않고도 스토리를 무난히 끌고 가는 것도 인상 깊었다. 염라대왕 역을 하던 연기자가 바로 재인을 연기하고, 원님을 연기했지만, 재치 있는 대사와 소품을 활용해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그런 설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여기에 연주자들의 새소리, 물소리, 폭포 소리가 더해지고, 적절한 조명과 영상이 더해지면 단조로운 무대지만 다양한 공간으로 연출이 가능했다. 꽉 짜여진 스토리와 무대는 아니지만 지역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했듯, 관객들 역시 스스로 상상력을 더해 극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한 점이 좋았다. 이 공연은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져 갈 수 있는 지역의 설화를 문화콘텐츠로 발전시켜 문화상품으로 개발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젊은 문화예술인들에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였고, 시대와 장소를 망라하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발전시켜 모두가 즐길만한 콘텐츠를 만들어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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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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