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상상캠퍼스

분더캄머 행사 모니터링 "넝쿨을 뜨다"

2019-10-05 ~ 2019-10-05 / [경기문화재단] 경기생활문화플랫폼

“우리는 뜨개질하러 도서관 간다!”



“철산동은 마누라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인 못사는 동네였어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동네의 모습이 떡하니 그림처럼 떠올랐다. 농담 같은 말이지만 너무 리얼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 말에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철산동에서만 들은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들었던 기억 때문이다. 물이 잘 빠지지 않는 지형에 수로가 적소에 없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임을 곧 이해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개발로 급 도시화된 상황을 장화 없이 다닐 수 있다는 표현으로 대변 되곤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경기생활문화플랫폼 사업 단체 <분더캄머>의 생활문화 현장을 둘러보기 넝쿨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은 철산하고도 4동에 있었다. 이 말은 광명시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동네라는 거다. 과장해 표현하면 하늘을 보고 운전대에 매달려 운전해 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될 듯하다. 철산동 일부 지역은 개발에 이어 재개발이 진행되었거나 되고 있지만, 철상4동은 지금까지도 개발 이야기가 진행 중이다.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떠나간 만큼 빈집은 늘어났다. 여기저기 붙어있는 현수막은 이런 마을 분위기를 알려주는 친절한 설명문 같았다.



넝쿨 어린이 작은 도서관에는 어린이들이 거의 없다. 경사진 마을에 빽빽하게 집들이 들어서 있는 마을에서도 산 위쪽에 위치한 넝쿨 도서관은 원래 아이들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이 부대끼는 나름의 문화공간이었다. 그러나 어린이 도서관에 어린이가 없다고 드러난 사실은 도서관 운영자 입장에서 참 곤혹스러운 현실이다.


<분더캄머>는 넝쿨 도서관과의 인연의 끄트머리를 생활문화플랫폼으로 연결했다. <분더캄머>는 재개발로 세워진 인근 아파트에 사는 김진 작가가 운영하는 단체다. 넝쿨도서관에서의 활동은 아이들이 아니라 성인들의 참여로 이루어졌다. 2년 전 인근 주민들과 이야기책 만들기를 하러 온 강사 선생님이 둘러메고 온 뜨게 가방이 기획을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 참여자 중 한 사람이 그 뜨게 가방 디자인이 예뻐 일주일새 비슷하게 떠서 둘러메고 왔기 때문이다. 모두들 한번 도전해 보고픈 욕망을 김진 작가와 강사 선생님이 덜컥 받아 든 것이다. 넝쿨 도서관 관장님은 동네 주민들 홍보에 나서주셨다. 뜨개질하러 오시라고....


마을에 사시던 왕년 뜨개방 주인은 순간 전문강사가 되셨다. 이름은 미(美) 선생님. 한 뜨개하시는 여든을 훌쩍 넘기신 할머니는 웬만해서 결석을 안 하시는 참석률로 몸소 참여자들을 독려하는 감독 할머니가 되셨다. 여기에 2년 째 되는 올해, 입소문으로 젊은 어머니들이 참여하면서 오랜 뜨개의 기술과 새로운 디자인을 접목해 신경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 젊은 어머니들은 동네학교 지역 아동센터에서 자기의 활동을 공유했다. 우리 마을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알고 지내는 취지에서 진행하는 지역아동센터 활동에 초대된 것이다. 물론 넝쿨 관장님의 추천으로 이루어졌지만, 초대된 분들은 아이들 앞에 서는 게 많이 떨렸었다는 후문이다. 별것 아닌 뜨개질로 별것 아닌 활동도 해보게 되었다는 얘기와 함께...



10월 5일 완연한 가을바람 불던 날, 뜨개 모임 장소는 내비게이션도 알려주지 못한 철산 배수지 쌈지공원이었다. 주말 등산객들이 오가는 곳이기도 하고 넝쿨 도서관과 가까운 곳이기도 하고 주차장이 잘 되어있는, 깔끔하게 잘 가꾸어진 공원이었다. 철산4동 마을잔치라는 부제가 붙은 이 행사는 특별한 행사가 있다기보다는 그동안 해왔던 활동을 공원 한가운데에서 주민들에게 선보이고 함께 뜨개질하는,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오가는 주민들이 엉덩이 붙이고 뜨개질을 같이 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갔다. 의미가 있건 없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찐 고구마와 과일과 떡을 먹으며, 지나가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아는 체하고 엉덩이 내려놓고 함께 떴다. 미선생님에게 배운 실력을 응용한 인형과 컵 받침, 수세미들이 공원의 지형지물 위에 전시되었고 판매도 이루어졌다. 뜨개 활동을 영상에 담던 또 한 명의 스탭은 녹색 책상을 중심에 두고 촬영을 해나갔다. 다 같이 뜨개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녹색 책상에 둘러앉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책상의 움직임은 뜨개 행위가 있기 전에 먼저 움직인 일종의 상징 오브제였다. 도서관 밖에서도 녹색 책상이 세팅되었고 곧 뜨개질 모임의 시작을 의미했다.


그렇게 아이들부터 할머니까지 제각기 물어보면서 가르치면서 무언가를 떴다. 이야기는 자연히 따라온다. 젊은 주부들은 아이들과 함께, 또 옆집 사는 아이들의 엄마를 초대해서 함께 떴고, 함께 이야기했다. 감독 할머니는 해가 정점에서 벗어나자 춥다고 내려가셨으나 못내 궁금하셔서 옷을 더 껴입고는 올라오셨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에게 경사진 언덕을 빠지지 않고 오르게 한 것은 무엇일까? 가르침에 허덕이며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배움, 살면서 터득한 나만의 소박한 주특기에 환호하는 곳, 어떻게 지냈냐고 안부로 시작하는 환대가 기다리는 곳이다. 나이보다 경륜이 귀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안다는 것이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게 된다.


이렇게 넝쿨 도서관에서, 따뜻한 날은 마을 나무 아래서 2년째 뜨개질 한다. 40대 주부에서 80대 어르신까지 모여서 배우고 가르치고 또 새로운 걸 발명하면서. 색만 달랐지 같은 꽃무늬의 수세미가 모양도 색도 다른 꼬꼬댁 수세미가 되고, 덧버선 뜨기 기술로 물고기 열쇠고리랑 거북이 공주 인형도 만든다. 아직 미선생님의 코바늘 가디건까지 이르지 못했지만 소지품 가방이나 컵 받침 정도는 너끈하다. 마을 축제에 나가 판매되는 수세미 매출도 쏠쏠하다.



자기 몫을 다하는 자리에는 의무도 생기고 책임도 따르고 권리도 생긴다. 각자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 함께 그 자리에서 자기 것을 드러낸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역량이자 원천이다. 틀리거나 맞는 것도 없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다. 그저 풀어서 다시 하면 된다. 도전해보고자 하는 발상이 동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로 남지 않는다. 성장해서 어른이 된다. 도서관이 원래 도서관이 아니었던 것처럼 마을이 바뀌어가면 이 공간도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 생긴 것은 성장하고 사라진다. 공간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어린이가 없다고 공간이 쓸모 없어지지 않는다. 단지 마을이 변하는 것에 마음이 아플 뿐이다. 모든 것이 아무개의 것으로 말해지는 지금 사회에서 누구라도 모여서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공간이 마을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부를 전하는 사람들이, 서로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마을 살이의 따뜻함이다.



뭐라도 되려면 코를 엮고 한 코씩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사는 것은 건너뛸 수 없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늙어가는 존재로서 인간이다. 젊었든 늙었든 몸에 새겨진 각기 다른 사건들로 차이가 생겼을 뿐이다. 각자가 통과한 삶의 지형들은 수다 속에서 드러나고 서로 조금씩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리라. 젊은이부터 노인까지 한데 모이는 것이 이상해진 지금, 넝쿨 도서관에서의 그 이상한 모임이 지속되길 바란다.


※ 경기생활문화플랫폼 사업 안내 (하단 링크 참조)

http://ggc.ggcf.kr/p/5d8b82367048904d2c0c8637


2019 생활문화 취재단

○ 작 성 자 : 민병은 (2019 경기생활문화플랫폼 사업 컨설턴트)

○ 소 속 : 지혜로운 봄 대표


생활문화 취재단은 '경기생활문화플랫폼'과 '생활문화 공동체(동호회) 네트워크'의 사업 현장을 취재하여

경기도내 생활문화 현장을 더 많은 도민들에게 전달 및 공유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글쓴이
경기상상캠퍼스
자기소개
옛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부지에 위치한 경기상상캠퍼스는 2016년 6월 생활문화와 청년문화가 함께 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울창한 숲과 산책로, 다양한 문화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경기상상캠퍼스는 미래를 실험하고 상상하는 모두의 캠퍼스라는 미션과 함께 새로운 문화휴식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