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정수연

[문화플러스] 빼뻘 주름

2019-11-16 ~ 2019-11-16 / 2019 경기북부 문화예술공모지원사업



<빼뻘주름프로젝트>에 참석하기 위해 주최측에 집결장소를 물으니 마을 입구에 있는 식당 앞으로 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마을에 있는 유일한 식당이라는 둥 꽤 긴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한 마을에 식당이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식당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지?’ 의아해하며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정말로 식당이 마을의 관문처럼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일정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덕에 식당 앞에 서서 철조망이 처진 높은 미군부대의 벽과 마주하고 있자니 뭔가 여느 마을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2시가 되자 <빼뻘주름프로젝트>의 첫 순서인 <빼뻘주름 산책>이 시작되었다. 이는 마을을 걸으며 마을에 대한 설명을 듣는 프로그램인데, 인솔자인 작가는 그저 집결장소를 묻는 나에게 식당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듯, 마을의 집 하나, 상점 하나를 일일이 짚어가며 마을 사람들의 삶과 현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작가가 얼마나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자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우선 빼뻘마을의 유래에 대해 설명했는데, 이 마을은 1952년 미 2사단 포병여단 본부인 캠프스탠리가 들어섰는데 1960년 이후 정착자들이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독특한 이름인 ‘빼뻘’은 유래가 명확하지는 않은데 배나무가 많아 ‘배밭’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뺑’이라는 식물이 많은 일대라 ‘뺑밭’으로 불리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또한, 한번 들어오면 발을 뺄 수 없는 ‘뻘’과 같은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유래도 있는데, 한번 발을 디디면 빠져나가기 어려운 기지촌의 삶을 상징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는 감회도 함께 전했다. 하지만, 더 가슴이 아픈 것은 2000년대 들어 미군의 감축이 본격화되면서 점차 마을의 상권이 무너지고, 경제가 침체되면서 마을이 쇠락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 마을 곳곳에 빈 상점들이 즐비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군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던 가게들도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거닐면서 보니 마을 안에 음식점들도 몇 개 있었는데, 현재는 다들 문이 닫아 마을 입구에 있는 식당이 동네의 유일한 식당이 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또한, 미국보다 저렴한 가격에 양복을 맞춰 입으려던 미군들이 많아 빼뻘마을 안에 양복 가게와 원단가게들도 많았었는데, 그 역시 몇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폐업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그야 말로 마을의 존폐와 생계가 걱정되는 상황으로, 정부에 주민들의 생계보장을 요구하는 현수막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빼뻘주름 프로젝트>는 이러한 빼뻘마을의 현실을 직시한 작가가 마을 고유의 역사를 영상물로 기록하고, 마을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역사적 기억을 소환하여 현재의 시간과 연결시키고자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지난 1월부터 이 마을에 들어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때부터 마을의 어르신들을 한 분씩 찾아다니며 각자의 삶의 여정과 사연에 대한 기록물을 만들고, 상징적 의미가 있는 마을 곳곳을 찾아다니며 영상기록물을 제작했다. 특히 주안점을 두었던 점은 단순히 역사와 공간에 대한 기록물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지역민과의 삶과 맞닿게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었고, 각각 소외된 역사의 시공간 속에 머물러 있는 한사람, 한사람의 관계성과 소통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또한, 현재 이 마을이 처해있는 어려움을 바깥으로 알려 함께 다양한 문제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바람도 담아냈다.


이러한 <빼뻘주름 프로젝트>의 방향성은 킹클럽에서 이어진 <ㅃㅃ> 퍼포먼스 공연, <달부름, 뺑부름> 마을놀이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전문 예술인들을 섭외해 직접 제작한 영상물에는 마을의 역사와 공간의 상징성을 담아냈고, 퍼포먼스에서는 지역주민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였고, <달부름, 뺑부름> 마을 놀이에서는 주민들과 흥겨운 놀이마당 한 판을 벌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무대 한 쪽에 설치된 3개의 모니터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의 인터뷰 영상이 계속 상영되고 있었는데, 모니터 속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의 흥겨운 노랫소리에 자원봉사자들의 부침개 지지는 냄새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잔치집 분위기였지만 누군가 문득 모니터 속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헤드폰을 끼고 온전히 그들의 이야기에 들어볼 수 있도록 하였다. <빼뻘주름 프로젝트> 주최측은 미군부대가 들어서기 전 마을 일대에 가득했던 ‘뺑’이 정월대보름에 <달집 만들기>의 주요 재료로 쓰였다고 설명했다. <달집 태우기>는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함축하여 타올랐던 불로 마을사람 모두를 달집 앞으로 끌어들여 순수한 공동체의 놀이시간을 갖게 한다고 했다. 따라서 사라진 ‘뺑’이 마치 마을의 사라진 공동체의 놀이이자 기원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 그것을 부르고 찾고자 노력해왔다고 한다. 이런 노력은 사라져가는 빼뻘마을 공동체를 살려보고자 하는 이번 프로젝트 작업 여정과 매우 닮아 있는데, 그 여정의 끝에 뺑도 마을 공동체도 찾아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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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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