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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60주년:학생들이 앞장선 반독재 민주화 투쟁

경기학통신_4(2020.04.21)

4·19 혁명 60주년 : 학생들이 앞장선 반독재 민주화 투쟁


2020. 04. 21.




  1960년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4·19 혁명이 일어난 지 60년이 되었습니다. 3·1운동이라는 전민족적 항쟁을 바탕으로 민주공화제의 기틀이 마련되고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지만 해방과 전쟁이라는 격동을 거치고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이 지속되면서 민주주의의 정착은 요원하였습니다. 1950년대 중반을 넘어가자 정권은 언론탄압과 정치테러, 날조 및 공작행위가 극에 달하였고 국민들은 점차 이승만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었습니다.


  1960년 3월 15일 치러진 정·부통령 선거에서 집권세력은 전국에 걸쳐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하였고, 이것은 결국 국민적 인내심에 불을 댕겼습니다. 선거당일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시위는 마산에서 한 고등학생이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경찰의 유혈 무력진압에도 불구하고 4월 19일 전국민적 투쟁이 정점에 이르자 이승만은 대통령에서 물러나 미국 하와이로 망명하였고,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었습니다.  


  4·19 혁명은 한국현대사 뿐 아니라 전 세계 민주주의 운동에서도 기억해야 할 일대사건이었으며, 특히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경기도에서도 학생들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3월 10일 수원시내 장안문 앞에서 약 200여 명의 수원농고 학생들이 “학원 내에서의 간접적인 선거운동을 배격한다” 라는 내용의 유인물을 살포하고 시위를 벌였고, 3월 13일에는 장날을 이용해 오산고 학생 100여 명이 학원 자유를 외치며 투쟁하는 등 선거 전부터 자행된 부정에 적극적으로 저항합니다. 선거 후 학생들의 투쟁은 더욱 격렬하게 전개되었습니다. 3월 19일 인천공고생 300명이, 4월 20일에는 수원 서울대 농과대학생 600여명, 인천사범학교생 300명이 “학원의 자유화와 민주적인 학생데모에 총을 쏘지 말라”고 외치면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여타 지역에서처럼 경기도(인천 포함)에서도 중·고교생이 먼저 시위를 전개하고 뒤이어 대학생들이 가세하는 형국이었습니다. 거리의 시민들도 열렬하게 성원해 주었습니다. 4월 23일에는 수원지역 대다수의 중·고등학생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26일에는 서울에서 내려온 학생들까지 합세하여 경찰서와 자유당 수원시당부를 파괴하는 등 이승만의 하야 선언 전까지 지속적인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중·고등학생들은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며, 반공체제 구축을 위해 각 학교마다 설치했던 학도호국단의 조직력을 활용하여 대대적인 시위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이때 전 세계가 우리의 효율성과 시민의식을 부러워하게 된 기저에는 바로 4·19 혁명을 비롯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노력이 자리 잡고 있음을 꼭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글 : 이지훈 경기학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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