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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다큐멘터리가 움직이고 있다

<공부의 나라> 최우영 감독 인터뷰

한국 다큐멘터리가 움직이고 있다


- <공부의 나라> 최우영 감독 인터뷰 -



20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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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 마켓 행사장 ⓒ최근모


한국 다큐멘터리가 움직이고 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상이 극장과 방송에서 선보이기 시작했다. 과거 방송국 중심의 한정된 소재의 다큐멘터리는 이제 정치, 노동, 자연, 개인사 등 사회문제 전반을 망라할 정도로 다양해졌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지상파 방송국에서 기획하고 소비되었던 마켓 시스템이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다큐멘터리 시장에 젊은 창작자들이 쉽게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촬영장비의 발전과 간편화 때문이다. 이제 누구나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자신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영상을 찍을 수 있다. 또한 세계와 연결된 인터넷은 개인이 외국의 마켓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지상파 방송국의 작은 창만 바라보던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은 더 큰 세상으로 향한 창문을 열기 시작했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개인이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제작하여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시스템은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때 한 젊은 창작자가 외국행 비행기를 탔다. 두려움 가득한 가슴 속엔 시골 방물장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시작은 방송국에서 쓸 10분 내외의 영상물이었다. 이 스토리로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한국에선 아무리 찾아봐도 지원해줄 기획 개발 시스템이 없었다. 반 포기 심정으로 외국 다큐멘터리 마켓을 두드려 본 것이다.


한국인도 관심 없던 산골 방물장수 이야기는 외려 외국에서 큰 반향과 지지를 얻게 되었다. 기적이었다. 그 외국인들의 지지를 통해 해외에서 투자를 받아 장편 다큐멘터리가 제작될 수 있었다. <내일도 꼭, 엉클 조>의 최우영 감독을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만났다. 해외 합작 다큐멘터리의 문을 연 그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한국 다큐멘터리 시장의 중요한 변화를 읽어보고자 한다.


▲ 마켓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투자자와 창작자가 활발히 만난다. ⓒ최근모


Q. 이곳이 유명한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 피칭* 행사장이군요. 외국인도 많이 눈에 띕니다. 다큐 감독님이라 촬영현장을 생각했는데 피칭 행사에서 뵙습니다. 다른 많은 국내외 감독님들도 이곳에서 피칭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알리고 있군요.


다큐 제작은 제작과 펀딩(투자)을 같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시에 진행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마켓 피칭에서 좋은 결과가 있으면 다른 마켓으로 연결이 됩니다. 메이저리그 스포츠 경기처럼 점점 더 큰 리그로 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피칭을 통해 다른 마켓에서 예산을 확보해야 진행하고 있는 작품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작과 투자가 동시에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에 모든 예산을 확보하면 가장 좋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합니다. 계속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피칭에 참가해야 합니다. 저와 같이 일하는 하시내 PD도 오늘 촬영이 있어서 그곳에 가 있습니다.


*피칭 pitching - 편성, 투자, 유치, 공동 제작 등을 목적으로 제작사, 투자사, 바이어 앞에서 기획 개발 단계의 프로젝트를 공개하고 설명하는 자리


▲ 피칭 행사를 마친 후 만난 최우영 감독 ⓒ최근모


Q. 촬영하다가 예산 확보를 위해 피칭 무대에 서고 다시 촬영하고, 정신없겠습니다. 극영화는 투자가 끝나고 촬영과 후반작업이 진행됩니다. 감독은 연출만 맡고 각 파트가 일을 나누게 됩니다. 그에 비해 다큐는 개인 창작자가 많은 일을 동시에 진행해야 되는 군요. 쉽지 않겠습니다.


다큐멘터리 제작 예산은 보통 3억에서 10억(외국 합작 펀딩)입니다. 작은 극영화 규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인 제작자의 멀티플레이가 필수입니다. 예산 3억에 제작기간을 평균 3~4년으로 잡는다면 창작자에게 이 돈은 결코 큰돈이 아닙니다. 이 안에서 인건비와 제작비가 모두 소비됩니다. 창작자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완성된 작품을 상영할 때 생기는 수익이 전부입니다.



Q. 그럼에도 국내 독립영화 시장과 비교해봤을 때 예산 규모는 더 큰 것 같습니다. 외국 마켓에서 투자를 받으면서 제작 예산이 커지는 것인가요?


▲ <내일도 꼭 엉클 조> (제공: 최우영 감독)


예전 방송 제작 시스템에서 2개월에 3천의 제작비로 만들었다면 20개월을 기준으로 3억의 제작비가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단기간에 제작되는 다큐는 한계가 있습니다. 좋은 다큐는 오랜 관찰과 준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제작기간이 깁니다. 그만큼 제작비는 더 늘어나게 되겠지요. 10년 전 <내일도 꼭, 엉클 조>를 시작으로 해외 마켓에서 펀딩하는 일들이 하나둘 시작되었습니다. 2012년 <공부의 나라>를 벨기에 감독과 합작 프로젝트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해외 마켓에서 만난 인연으로 시작된 작업입니다. <공부의 나라>는 6억 원 정도의 제작비 투자를 받았습니다. 점점 투자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변변한 기획개발 제도가 없어서 해외 마켓의 문을 두드렸던 것인데, 이젠 외국에서 바이어와 감독들이 국내 다큐 마켓에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성과를 얻기 시작한 거죠. 2013년 <내일도 꼭, 엉클 조>를 개봉하고 바로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 작품을 공동 연출한 하시내 PD와 말이죠. 그게 더 큰 성과였습니다.(웃음)



Q. <내일도 꼭, 엉클 조>와 <공부의 나라>는 해외 투자 및 합작이라는 방법론적인 면에서 한국 다큐 제작방식의 중요한 변곡점입니다. 이런 경험과 자료는 기관이나 단체에서 아카이빙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 경험을 강연에서 최대한 나누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계가 있어서 글로벌 투자와 피칭에 대한 부분을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다큐 매거진 DOCKING'(http://dockingmagazine.com/) 이라는 웹진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시장에 대한 양질의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 하시내 PD가 '다큐 세계는 지금'(http://dockingmagazine.com/menu/contentsList/5)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올리고 있습니다. 해외 다큐 마켓의 펀딩과 관련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접하실 수 있을 겁니다.


▲ 다양한 해외 다큐 마켓과 프로그램에 참가하다. (제공: 최우영 감독)



Q. 외국 다큐 시장이 궁금합니다. 우리와 많은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 창작자가 외국 다큐 마켓을 두드리기 시작한 게 불과 10년이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요. 우물 안 개구리는 자신이 있는 곳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 합니다. 외국에 나가 작업을 해보니 어떤 점을 느끼셨나요?


2003년에 영국의 BBC는 5,6천 명 정도의 직원을 대량 해고합니다.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다큐를 공동으로 만들어 보자는 흐름이 유럽 전체에 생겨납니다. 적은 예산으로 여러 작품을 만들기보다 좀 더 큰 예산으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을 공유하게 됩니다. 유럽은 지금도 유명한 다큐 마켓이 많이 있습니다. 국내는 아직도 방송국의 영향력이 작용을 합니다. 그러나 세계 시장과의 소통의 문이 열렸기 때문에 변화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 <공부의 나라> 포스터 (제공: 최우영 감독)


기존의 많은 실력 있는 다큐 감독들이 해외 시장과 활발히 연계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와 함께 일하는 감독도 상당히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계약 조건 때문에 공표하지 않을 뿐이겠지요. 창작자에게 더 좋은 제작환경과 작품을 상영할 플랫폼이 생겨나는데, 기존 시장에 남아 있을 창작자는 없을 테니까요. 외국엔 창작자가 투자를 받고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는데 우리만 몰랐던 겁니다. 이제 많은 창작자가 그것을 알게 되었고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를 발판으로 여러 국내 다큐 작품이 해외의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하기 시작했습니다. BBC, NHK에서도 국내 다큐 작품을 방영하는데 국내 방송국이 좋은 작품을 방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죠.



Q. 강연을 통해서 본인의 해외 펀딩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강연을 들어보았는데 가진 지식을 모두 공유하고 나누어주는 것 같습니다. 다른 창작자가 해외 마켓이나 피칭 행사에 참가하게 되면 그만큼 투자에 대한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 해외 매체에 소개된 최우영 감독과 하시내 PD (제공: 최우영 감독)


10년 전, <내일도 꼭, 엉클 조>를 투자할 국내 시스템은 없었습니다. 기관의 공모에서도 산골 방물장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설령 투자를 받지 못 해도 외국 다큐 제작 방식이라도 배워 보겠다는 생각에 해외 마켓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외국인의 큰 호응과 지지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 일을 발판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내에 들어와 제 경험을 주위에 이야기해도 믿지를 않았습니다. 해외로 나가 우리들의 이야기를 팔 수 있다는 것을 알려야 했습니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국내의 좁은 시장이 아니라 해외에서 알리고 투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미 일본은 해외 시장에 참가하여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방송사도 해외 시장에 참가하고 있었구요. 개인 창작자들만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2017년에 박환성 PD의 죽음도 제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남아프리카에서 다큐를 제작하다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방송국의 제작비, 저작권 관련 불공정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상태였습니다. 줄어든 예산 때문에 무리하게 이동하다 일어난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 흐름과 변화는 앞서 가는데 제도가 뒤따라가지 못 하기 때문에 불행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제도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이런 일은 또 반복될 수 있습니다. 불행은 저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제도의 변화가 없다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불행입니다. 제 지식을 좀 더 알리고 공유하면 새로 진입하는 창작자들이 더 합리적인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저도 일을 하고 싶고요. 제도의 변화를 위해 제 지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제가 제일 힘들었던 것은 외롭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해외에서 경험했던 것을 얘기해도 예전에는 사람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말했던 부분이 일반화되었습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도 다양한 다큐 마켓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씬원'이라는 다큐 기획개발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상업화와 산업화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다큐 시장은 산업화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저도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10년 전 빈 좌석에서 시작했지만 자신의 자리를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모


제 사무실이 마포구 성산동에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다큐 제작자들의 작업실은 성산동을 중심으로 상수, 합정 부근에 주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 같은데 커뮤니티 마켓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혼자 작업할 수밖에 없으니 손이 필요할 때 서로 돕게 됩니다. 도움을 받은 쪽은 또 다시 도움을 주고. 그렇게 사람과 사람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Q.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요?


오늘 피칭한 작품이 독일 통일과 한국의 통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을 위해 해외에 계속 나가야 할 거 같습니다. 지금은 제주도에 있는데 서울도 오가야 하고 계속 작품을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합니다.




최우영 감독의 테이블에서 투자사와 배급사의 미팅이 시작되었다. 자리를 비켜주며 두발 자전거를 생각했다. 계속 페달을 밟아주지 않으면 자전거는 쓰러진다. 그는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있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데 한 작품에 3~4년이 걸리는 작업이 끝나면 이렇게 피칭장에 또 서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죠. 그런 작업이 반복되니까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계속 열심히 해야겠죠. 그 방법 밖에는 없으니까요."


그가 해외 마켓에 참가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10년 전과 비교해 지금의 한국 다큐 시장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제도 변화의 요구가 조금씩 수용되고 해외 시장의 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후, 한국 다큐 시장은 또 얼마나 발전해 있을지 궁금하다. 마지막을 최우영 감독의 말로 맺고자 한다.


“외국인들이 볼 때 한국 다큐는 휴먼쪽에 강하다고 합니다. K-POP처럼 우리 안에 ‘정(情)’이라는 강한 유전자가 있나봅니다. 이제 한국 다큐가 해외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한국 다큐가 한류의 한 축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젊은 창작자들이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다큐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제도의 변화만 뒷받침 된다면 세계 시장에서 큰 반응을 일으킬 겁니다. 세계 다큐 시장에 'K-DOC'이란 한류가 유행처럼 번질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 행사장 다리 난간에 매달린 잠자리가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모



최우영 감독 필모그래피

2015 <공부의 나라>

2013 <내일도 꼭, 엉클 조>

2012 <미스터 선거왕>

2009 <다큐프라임-삼동초등학교 180일간의 기록>

2008 <전설의 대물 돗돔을 찾아서>

2007 <영혼의 퍼포먼스 굿> 외


<공부의 나라>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ReachfortheSKYDoc/




인문쟁이 최근모

2019 [인문쟁이 5기]


반갑습니다. 가치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최작가입니다. 영화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과 전시를 좋아합니다.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스토리를 채굴하는 성실한 광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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