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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밥'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1_작가 박 준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은 유례없는 팬데믹(pandemic) 시대, 어려움에 처한 문화예술계를 묵묵히 지켜온 작가들의 눈으로 코로나19를 이야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17명의 예술가가 바라본 코로나19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을 통해 일상 속에 새겨진 코로나19의 아픈 흔적을 함께 나누고 치유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며, 나아가 상처를 회복하고 포스트코로나를 향해 한 발짝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은 7월 24일(금)부터 8월 28일(금)까지 매주 월,수,금요일 지지씨(ggc.ggcf.kr)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밥'


박 준(작가)


아무리 반복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일도 그중 하나입니다. 집에서 혼자 밥을 지어 먹을 때면 차분하고 무엇인가 경건한 기분이 느껴지는데, 이와 달리 밖에서 혼자 밥을 사 먹을 때면 늘 불안하고 쫓기는 마음이 앞섭니다. 마치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나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과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난처합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외출했을 때 자주 끼니를 거릅니다.


혼자인 것은 잘못이 아니며 밥을 사 먹는 것도 당연히 잘못된 일이 아닌데 왜 저는 ‘혼밥’을 어려워하는 걸까요. 이유를 헤아려보자면 여럿입니다. 저는 타인의 눈치를 자주 살피는 성향을 갖고 있는데,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주변 상황과 사람들이 더욱 의식됩니다. 마치 문명 이전, 야생에서의 인류가 사주를 경계하며 식사를 하던 풍경처럼 말입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날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일의 진척이 느려 외출 시간이 길어졌을 때, 그래서 커다란 허기를 마주했을 때, 혼밥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절실하게 다가올 때, 저는 혼자 밥을 먹습니다.




혼자 을 먹어야 하는 날이면 저는 주로 패스트푸드점을 찾거나 분식처럼 비교적 간단한 음식을 먹습니다. 아무래도 눈치가 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음식점을 찾을 수 없는 경우라면 가급적 손님이 적어 보이는 식당에 갑니다. 천천히 길을 걸으며 그 동네에서 가장 한산한 식당을 찾습니다. 찾았다 싶더라도 단번에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는 법은 없습니다. 걷던 길을 다시 서성이며 한참 더 살피는 것이 보통입니다. 만약 점심을 먹어야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찾는 정오쯤이 아니라 오후 1시 반이나 2시 넘어 식당을 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쯤 가면 저처럼 혼자 온 사람들이 고요하게 각자 밥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편해지는 풍경입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브레이크타임을 의식해 조금 급하게 밥을 먹어야 할 수도 있고, 한바탕 손님맞이를 끝내고 늦은 점심을 드시는 식당 직원분들을 방해할 위험도 있습니다.


한 가지 슬픈 사실은 코로나19의 시기를 보내면서 혼자 밥을 먹는 일이 더 늘었다는 것입니다. 식사 약속이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또한 제가 다니는 직장의 점심 풍경도 변했습니다. 지난봄, 회사에서는 기존 정오부터 오후 1시가 아닌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로 점심시간을 확대했습니다. 어느 시간이든 각자에게 주어진 1시간가량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식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동료들과 함께 식사하는 일도 사라졌습니다. 회사 근처 식당에 가면 전과 달리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 늘었지만 이러한 장면이 마냥 반갑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가 어릴 때 보던 공상과학만화에서 주인공들은 음식이 아닌 캡슐 같은 것을 먹었습니다. 불고기 맛 캡슐이 있고 우동 맛 캡슐이 있고 딸기케이크 맛이 나는 캡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공상만은 현실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코로나19의 위협이 어느 정도 계속되더라도 말입니다. 이런 것은 문명이나 과학이나 발전이라 할 수 없을 테니까요.


먹는 일이 곧 사는 일 같기 때문입니다. 먹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지는 날에는 사는 일도 지겹고, 사는 일이 즐거울 때는 먹는 일에도 흥미가 붙습니다. 저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국어사전을 보아도 ‘먹다’와 ‘살다’는 이미 서로 만나 한 단어가 되어 생계(生計)를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먹고살다.’


앞으로도 저는 낯선 식당들에서 자주 혼자 밥을 먹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꼭꼭 씹어 먹다가 저처럼 혼자 있을 법한 이에게 으레 전화를 한 통 걸기도 할 것입니다. “밥 먹었어?”로 시작되어서 “밥 잘 챙겨 먹고 지내.”로 끝나는 통화.


[ 작가 소개 ] _ 박 준



작가 소개 _ 박 준


경기도에 거주하는 박준은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현재 출판사 창비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며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등 다양한 책을 펼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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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2020 ggc special feature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

    기간/ 2020.07.24(금) ~ 2020.08.28(금)

    참여필진/ 박준, 이억배, 안대근, 사이다, 스튜디오 김가든, 이소영, 김정헌, 계수정, 안상수. 한수희, 원일, 장석, 강은일, 허남웅, 김영화, 김도균, 유열

    책임기획/ 노채린(경기문화재단), 김채은(어라운드)

    기획총괄/ 황록주(경기문화재단 통합홍보팀장)

    제공/ 경기문화재단 지지씨, <예술백신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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