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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나! 코로나19!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7_화가, 4.16재단 이사장 김정헌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은 유례없는 팬데믹(pandemic) 시대, 어려움에 처한 문화예술계를 묵묵히 지켜온 작가들의 눈으로 코로나19를 이야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17명의 예술가가 바라본 코로나19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을 통해 일상 속에 새겨진 코로나19의 아픈 흔적을 함께 나누고 치유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며, 나아가 상처를 회복하고 포스트코로나를 향해 한 발짝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은 7월 24일(금)부터 8월 28일(금)까지 매주 월,수,금요일 지지씨(ggc.ggcf.kr)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나! 코로나19!


김정헌(화가, 4.16재단 이사장)



나의 이름 ‘코로나19’는 문명을 자랑하는 인간들이 붙인 이름이다. 그들은 나에게 ‘우한폐렴’과 ‘코로나 바이러스’ 등 갖가지 이름을 들이댔지만, 나는 적어도 국제적 활동을 한다. 그래서 새로 얻은 ‘코로나19’라는 이름이 좋다. 나는 작년부터 중국의 우한 지역에서 활동했는데 그 지역의 조짐이 좋지 않아 거기보다 더 좋다는 옆 나라 대한민국과 일본 등으로 우리의 활동 영역을 옮겨 가는 중이다.


인간이라는 종은 우리 바이러스와 달리 글로 소통을 하고, 말하고, 상상하면서 문명을 이루어 왔다고 늘 자랑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나 같은 바이러스에는 인간들도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는 곧잘 믿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종교나 예술을 통해 다른 세상을 꿈꾼다고 떠든다.


▲ 김정헌 KIM Jungheun, 내 이름은 분홍, 2020,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73x91cm


사실 우리는 인류의 역사와 맞먹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생명체라고 자부한다.


우리는 몇만 년 전 인류의 선조라고 할 수 있는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이 공생하던 시기에 네안데르탈인에게 여러 가지 변장을 하고 침투해 그들을 지구상에서 멸종시킨 바도 있다. 그때부터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들이 멸종된 것은 다 우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상상한다. 또, 우리는 종교 집단을 선호한다. 그중에서도 이단이라 불리는 종교 집단을 더욱 좋아한다. 그들은 항상 노출되는 것을 꺼리고 은폐하거나 숨어서 종교 행사를 치르기 때문에 우리의 포교 활동에 더없이 안성맞춤이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이 꼭 붙어 앉아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우리가 옆 사람에게 건너가기란 누워서 떡 먹기나 마찬가지다. 거기다가 쩍하면 침을 튀겨가며 기도를 드린다. 그들과 우리의 포교 행태는 비슷하다. 일례로 그들은 다른 종교 집단에 몰래 숨어들어가 사람들을 이쪽으로 끌어오는데 이를 ‘추수’한다고 한다. 우리가 사람 몸속에 몰래 숨어들어 그 몸을 낚는 바와 똑같다. 그들과 우리는 일종의 ‘도플갱어’다. 우리들은 또한 침을 튀겨가며 싸움질하는 정치인들이나 그들이 내뱉는 말(혐오) 속에 몰래 숨어들어 포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거기까진 활동을 유보하고 있다. 곧 그들의 침 속에 숨어들어 우리들의 힘-코로나 바이러스로 포교(침투)할 방침이다. 침 튀기며 떠드는 자들이여 기다리시라.


몇십 년 전에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소설을 쓴 적이 있다. 바이러스로 눈먼 자들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우리도 아는 내용이다. 거기에는 눈먼 자들끼리 연대의식을 발휘해 엄청난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이 나온다. 그들은 앞이 보이지 않아도 상상력으로 이를 극복한다고 한다. 이외에도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페스트》라는 소설을 썼다. 쥐를 통해 전파되는 페스트는 우리보다 더 무섭다고 한다. 이런 문학가들의 결론은 보나마나 해피엔딩이다. 항상 인간들에게 우리 같은 바이러스를 이길(퇴치)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용기와 희망을 전파해서 우리들로선 정말 골칫거리다.


얼마 전까지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던 우리 바이러스들이 급하게 구조 요청을 보낸다. 여기 대구에서는 인간들이 서로 도와주면서 연대를 너무 잘한다는 소식이다. 그들은 기쁘겠지만 우리한테는 불쾌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의료요원이 부족해질 것 같으면 전국에서 서로 돕겠다며 의료인이 떼거리로 몰려온단다. 여기저기서 대구를 지원하기 위해 난리란다. 인간들의 연대의식과 협동정신은 우리 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앞날을 낙관하고 있다. 바로 옆 나라인 일본이라는 황금 영역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인간종이 만들어 놓은 올림픽이라는 인류의 체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걸 성사시키기 위해 우리들이 창궐하는 포교 활동을 될 수 있는 대로 숨기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숨김은 우리에게는 좋은 먹잇감이다. 그들이 감출수록 우리들의 포교 활동은 그 감춤 속에 스며들 수 있고 한꺼번에 창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활동 폭은 일본만이 아니다. 항상 침을 튀겨가며 연설을 하는 미국의 트럼프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친구다(그는 쩍하면 외국 대통령을 ‘친구’라고 부른다). 우리는 미국이 주도해 만든 ‘세계화’에 따라 전 세계에 진출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의 포교 활동은 인간의 자업자득이다. 그동안 인간은 이 세상을 얼마나 오염시켜 왔는가! 이는 스웨덴의 작은 소녀 툰베리가 잘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


▲ 김정헌 KIM Jungheun, 내 이름은 초록, 2020,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73x91cm


이제 무더운 여름이다. 기온이 오르면 우리 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에 우리들도 물러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힘들어하는 ‘마스크’도 넉넉하게 만들어 뒤집어쓰고 있으니 포교 활동하기가 쉽지 않다. 자 다들 여기서(한국) 떠날 준비를 하자. 이 글은 글 좀 쓴다는 김정헌(그는 아직 우리에게 포섭돼 있지 않다)을 빌려 인간 세상을 나, ‘코로나19’의 눈으로 본 알레고리다.  


[ 작가소개 ] _ 김정헌




작가소개 _ 김정헌


평양 출생. 미술대학교 졸업 후 민중미술 계열로 활동했다. 그림도 이야기가 들어가야지 그림다워진다는 그는 《이야기 그림 그림 이야기》 책을 만들기도 했다. 최근 《칼 폴라니》를 완독했고, 그중 “진정한 진리는 만유인력의 법칙이 아니라 새가 중력을 뿌리치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는 것.”이라는 한 구절을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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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2020 ggc special feature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

    기간/ 2020.07.24(금) ~ 2020.08.28(금)

    참여필진/ 박준, 이억배, 안대근, 사이다, 스튜디오 김가든, 이소영, 김정헌, 계수정, 안상수. 한수희, 원일, 장석, 강은일, 허남웅, 김영화, 김도균, 유열

    책임기획/ 노채린(경기문화재단), 김채은(어라운드)

    기획총괄/ 황록주(경기문화재단 통합홍보팀장)

    제공/ 경기문화재단 지지씨, <예술백신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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