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화화2017] 《이면 탐구자》

2017.12.15-2018.03.25 / 참여 작가 노승복 작업 연구


풍경이 된 몸, 몸이 된 풍경



임종은(독립기획자)



노승복 작가는 사진과 영상을 통해 작업세계를 확장해 왔으며, 특히 최근 사진으로 죽음과 묘지와 관련된 소재로 몇 차례 의미 있는 작품을 선보였다. 그리고 연속선 상에서 이 주제와 관련해 선감도, 제주도, 여수, 순천 등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과 흔적을 현재까지 연구조사 하고 있다. 애도하기 위해 공원묘지 앞에 놓인 조화가 자아내는 정서, 버려진 묘지의 다양한 장면과 일상, 미제 사건 속에서 사라진 이야기, 비극적인 역사 속 사연 있는 사람들의 지워진 흔적 등으로 작가는 수년 전부터 탐구하던 죽음과 묘지와 관련된 주제를 몇 가지 키워드로 수렴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다가온 복잡해지는 심경이나 질문으로 확장하면서 집요하게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으로 연결된 작품 <풍경이 된 몸_바디스케이프>는 안성시 미양면 배나무 과수원에 작은 산처럼 솟아 있는 몇 개의 무연고 무덤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번에 다루는 묘지에 대한 작품은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아무도 살피지 않는 무연고 무덤과 그 주위로 무심히 자리 잡은 과수원 풍경으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 (원래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제는 정체불명의 뜬금없는 무덤이 있는 ‘과수원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전작인 개인전 <풍경의 가장자리>(2015년)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각성과 작가의 당시 현실적인 상황,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물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작가가 삶을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노승복 작가는 전국의 공동묘지 17개 소를 직접 찾아갔다. 여기서 풍경과 대비되거나 생경한 조화를 이루는 묘지를 기록했고, 이 과정에서 추모의 의미를 담고 있는 가짜 꽃이 주는 낯선 기분을 회화적이면서 극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풍경의 가장자리>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안성시 미양면의 과수원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는데 묘지라는 소재를 다루는 공통점과 연속성은 있지만, 작가가 지금까지 본 묘지 풍경과는 다른 점을 직관적으로 느꼈다고 한다. 작가의 이전 작품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무연고 무덤이 매우 드문 것은 아님을 알고 있다. 하지만 농업생산 활동이 왕성한 과수원이라는 삶과 밀착된 장소와 묘지가 동시에 공존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낯선 기분도 부정할 수는 없다. 이 풍경이 펼치는 이야기는 작가에게 무덤 작업 시리즈를 다시 확장하고 탐색하도록 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는 2015년부터 이곳을 수시로 찾아가서 시간이 지나 계절이 바뀌고 풍경이 변할 때마다 충실하게 이곳을 촬영했다.


배밭 주인 농부 윤 씨는 평생 낮은 구릉을 깎아내고 개간하며 배나무를 심었고 과수원을 일구었다. 농부는 개간 과정에서 넓은 구릉 사이에 있는 몇 개의 무연고 무덤을 그대로 남겨두었고, 배나무 과수원은 50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조금씩 넓어져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성실한 농부가 만든 이 장소는 한눈에 담기에 상당히 넓은 범위로 조성되었다. 게다가 과수원 경작에 편리하도록 파고 깎아 땅의 높이를 낮게 해서, 결과적으로 나머지 공간인 무덤이 사람 키보다도 훨씬 높게 마치 작은 동산처럼 솟아나게 되었다. 그리고 예외 없는 자연은 자신의 생명력을 뽐내듯 한시도 쉬지 않고 이곳의 표정을 바꾸었고, 그 속에서 드러나고 또 숨겨졌다 나타나는 묘지의 이미지를 우리는 보게 된다.


 

풍경이 된 몸 Bodyscape , 2017, 디지털 비디오 설치 digital video installation, 8' 36"


작가는 이제 무덤일 수도 있고 과수원일 수도 있는 풍경을 조망하고 원경의 장면을 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먼저 넓고 높낮이가 다른 시점을 촬영할 수 있도록 여러 최신 장비인 드론. 오스모 .디에스엘알. 달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오랜 기간 만들어진 과수원 풍경과 기묘하게 생긴 무덤을 효과적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상은 편집을 통해 5개의 채널로 만들었다. 5개의 화면은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담아 풍경을 교차하기도 하고 한 번에 보여주기도 한다. 다양한 촬영 방식과 다섯 개의 채널로 구성된 영상 작품은 묘지에서 전작과는 다른 느낌을 받은 작가의 인상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것을 통해 과수원의 전경과 무덤으로 사이로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시점의 변화, 거리감의 교차와 인간의 시야를 넘어선 확장된 장관 등을 역동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사람의 생애를 기준으로 볼때 오랜 세월의 흔적과 노고를 목격하고, 자연의 무심한 이치를 인간의 척도를 초월하여 조망하게 된다. 이것은 전시장에서 풍경과 몸의 접점을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로 한 번 더 성취된다. 영상이 상영되는 화면이자 커다란 오각형 전시공간이 관람객의 몸을 둘러싸게 된다. 그들은 풍경을 관찰의 거리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감각의 장소로 느끼게 될 것이다. 관람객들은 배나무와 묘지가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고, 영상 속에서 하얀 배꽃의 추상적이고 장식적인 화면을 보며 시각적인 유희를 느끼고 매료될 것이다. 순간적으로 추상화처럼 보이다가 화면은 곧 과수원의 생생한 이미지로 환원된다. 이 장면은 노승복 작가의 사진 작업 <1366프로젝트>를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은 폭력에 시달리고 매를 맞아 상한 여성의 몸을 색면추상처럼 보여준 것인데, 사회 고발적인 주제를 우회적인 이미지로 표현했다. <풍경이 된 몸_바디스케이프>도 과수원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장면이 순간 추상화되고 마치 패턴처럼 보이면서, 사계절을 미적이고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첨단 장비는 높고 먼 풍경을 한눈에 보기 위한 거리를 제공했지만, 우리는 어느덧 노승복 작가와 작가가 발견한 과수원 속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게 된다. 이 풍경의 이면에는 자신의 일생을 바쳐 과수원 가꾼 윤 씨 농부 부부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농부는 배나무 과수원을 개간하는 수고로운 일생을 보냈고, 그 속에 그의 삶을 채웠다. 누군지 모르는 죽은 이의 누운 자리를 고스란히 남겨두고 배나무로 나머지 자리를 채워갔다. 그리고 이제 세월이 흘러 농부는 늙고 병들었으며, 이번 가을에는 그의 장성한 아들이 그 과수원에서 탐스러운 배를 수확하고 있다.



풍경이 된 몸 Bodyscape , 2017, 디지털 비디오 설치 digital video installation, 8' 36"


사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을 배회하지만 우리는 철저히 삶과 경계를 가르고 살며, 무덤을 만들어 추방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봉분은 죽음을 기억하게 하고 한편으로 그 삶을 지운다. <풍경이 된 몸_바디스케이프>는 죽음이라는 금기의 주제를 다루면서 생경하거나 자극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평범한 농촌에서 볼 수 있는 배나무 과수원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등장한다. 죽음에 대한 선정성 없는 영상장면은 죽은 자의 장소가 숨겨졌다가 드러나는 것으로 전개된다. 무덤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고 남겨두는 죽음에 대한 금기가 만든 풍경은 자연스러울 뿐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의 장소인 무덤은 영상 작품 속에서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담담하게 드러나고 숨겨진다. 그것은 배꽃을 피워 찬란하고 여름 녹음으로 빈틈없이 빽빽하게 우거지며, 배나무에 열매가 달리고, 사람들이 열매의 효율적인 성장을 위해 종이로 정성스럽게 싸고 덮어주는 장면이다. 잎사귀가 떨어지고 흰 눈이 내려, 앙상하게 나뭇가지만 남은 곳에 고라니가 총총 지나가기도 한다. 당연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 만물의 변화만이 이 무덤을 엄폐하고 드러내기를 반복한다. 꽃으로 뒤덮이거나 무성한 초록색 잎사귀에 가려진 무덤과 배나무 과수원의 생명력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보인다. 다만 자연이 동식물의 생태를 통해 은유로 보여주는 생의 주기는 우리 관념 속에서 상정된 삶과 죽음 사이 표식으로써 무덤을 드러냈다 감출 뿐이다. 이 풍경은 농부의 평생의 삶과 그 과정으로 높게 돋우어진 무덤이 드러낸 역설의 장면이다. 시선에 따라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또 이 오묘한 무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는지조차도. ■ 임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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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생화화2017 이면탐구자

      기간/ 2017.12.15~2018.03.25

      장소/ 경기도미술관

      관람시간/ 10-18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 주최/ 경기문화재단

      주관/ 경기도미술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경기도

      협찬/ 삼화페인트, 산돌구름

  • ggc

    글쓴이/ 경기도미술관

    자기소개/ 경기도미술관은 경기도가 지원하고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도립미술관으로서,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한 현대미술작품의 수집, 동시대적이고 창의적인 기획전, 그리고 관람객과 경기도민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는 미술관입니다.

  • g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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