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천년 근대문화유산 답사] 성(聖)과 속(俗)의 공간, 오산로를 걷다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와 해방기, 분단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까지 격동의 시기를 보낸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역사 속에서 서울과 인접했던 경기도 또한 많은 근대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경기천년 근대문화 유산답사'에서는 경기도에 있는 근대문화를 소개하고 경기도의 역사와 정체성,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연경 연세대학교 공학연구원


오산(烏山). 까마귀가 많이 날아들어 붙여진 이름이라 하기도 하고, 오산천에 큰 자라(鰲)가 많이 올라와 오산(鰲山)이라 하던 것에서 같은 음을 가진 오산(烏山)으로 변경되었다 하기도 하고, 오산 동쪽에 있는 동탄면 오산(梧山)리가 있어 경부철도 건설시 역명을 오산(烏山)으로 정하여 오산(烏山)이라는 지명을 가졌다고 하기도 한다. 또한 홀로 외따로 떨어져 있는 고산(孤山)에서 ‘ㄱ’이 탈락하여 오산이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홀로 외따로 떨어져 있는 고산이란 오산시에 있는 옛 백제의 산성인 독산성이 있는 독산(禿山)을 의미한다고 한다. 정확한 지명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어쨌거나 오산이라고 하는 도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경부선 철도의 부설과 함께 ‘오산역’이 건설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오산역 환승센터



철도 위 입체 환승센터와 역전 풍경


수원과 평택 사이를 달리는 경부선 열차와 수도권 전철 1호선 철도 위에는 2017년 11월 오산역 환승센터가 개통되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철도 위 건설된 이 환승센터에서는 기차와 전철 뿐 아니라 시내버스, 시외버스, 광역버스, 택시 등 각종 교통수단들이 입체적으로 오고 간다. 공중에 뜬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들은 마치 20세기 초반 모더니스트들이 꿈꾸었던 거대 공중가로를 보는 듯하다.


철도개발과 함께 만들어진 도시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오산시 역시 경부선철로를 따라 남북으로 도시가 개발되었다. 오산의 원도심은 경부선 철도와 오산천이 만나는 인근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는데 이 일대가 현재의 오산동이다. 오산역 앞으로 나오면 경부선 철도와 함께 평행하는 오산로를 만난다. 이 길은 일제강점기에도 있었던 길로 1960년대까지 오산의 시가지는 이 길의 주변부에 머물렀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오산로와 철도를 가로지르는 동서도로가 만들어지고, 동측 부분의 시가지 개발이 이루어졌으며, 오산읍이 오산시로 승격한 1989년 이후에야 오산시의 시가지가 크게 확장되었다.



오산시 원도심의 변화과정 (사진출처:국토지리정보원, ngii.go.kr)


오산역 앞으로 나와 오산로를 따라 북쪽으로 걷노라면 오래된 시간의 켜들을 만나게 된다. 여전히 활발하게 영업하고 있는 수많은 다방들과 일제강점기 철도관사가 있었던 오산역 북측일대에 있는 오래된 여인숙들은 이 곳의 번화했던 1970-80년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멈추었지만 오랜 시간 영업했을 정미소와 유흥업소 등 철길과 오산로를 따라 오산시의 오랜 시간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오산로에서 여전히 활발히 영업중인 다방들과 오산로 서측의 여인숙들. 이제는 영업을 마쳤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오래된 정미소와 범상치 않는 외관의 유흥업소(오산사장)의 모습



상생을 꿈꾸는 전통시장, 오색시장과 오매장터


오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오산로 동측변으로 ‘오색시장’이라 쓰인 입구를 여럿 만나게 된다. 이 곳은 오산의 명물이라 할 수 있는 오색시장. 오산시의 중앙시장으로 불렸던 이 시장은 일제강점기였던 1914년 정식 시장으로 개설된 곳으로 2013년 시장 활성화 및 현대화 사업을 하면서 오색시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 후기부터 꽤나 큰 오일장이 서던 이 오색시장에는 현재도 3,8일에 오일장이 선다. 오일장이 서지 않는 날에도 오색시장은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며 활발하게 야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한편 인구 21만 중 외국인인구가 4천명에 이르는 오산인만큼 오산시장에는 중국식품이나 음식을 파는 상점들을 비롯하여 아시안 마켓 등 다국적 상품을 다루는 상점들까지 분포해 국제적인 분위기도 풍기고 있다.



오산의 중앙시장, 오색시장


오색시장의 북측에는 주로 싸전이 늘어서던 오매 장터가 있는데 이 오매장터에서도 역시 3,8일에는 오매(오뫼)장터가 열린다. 오산에서 3.1운동이 열렸다는 오산의 중심 오매장터 일대에는 오래된 음식점과 방앗간과 기름집 등이 여전히 영업 중이지만 오색시장의 시끌벅적함에 비해서는 다소 조용한 편이다. 2016년에는 오매장터 일대에 창작스튜디오를 마련하여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문이 닫겨 있는 상황이다. 이 곳을 비롯하여 오색시장과 오매장터의 곳곳에서는 오산대 시각디자인 학생들과 같은 예술가들의 손길이 묻어난 공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오색시장 내부의 재기발랄한 상점 이름과 간판디자인 모두 이들의 작업으로 예술과 전통시장의 상생이 엿보인다.



오매장터 창작스튜디오와 인근 오래된 기름집



오색시장 속 성(聖)의 공간, 오산감리교회


오산역 주변의 유흥공간들, 그리고 오색시장과 오매장터의 상업공간들을 지나 오색시장 한 골목으로 길을 들어서면 성(聖)의 공간을 만나게 된다. 세속의 공간 속 묵직한 목소리를 내는 이 곳은 1905년 오산에 미선교사인 노블 밀러목사가 창립한 오산감리교회가 위치한 곳이다. 처음 오산감리교회가 위치했던 곳은 오산리 442-2번지로 1907년 초가 교회를 건축하였다가, 1934년 붉은 벽돌로 교회 건물을 신축하였다고 한다. 붉은 벽돌의 교회 건물은 1.4 후퇴 때까지 인민군 본부로 사용되다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한국전쟁 이후였던 1954년 교회는 그 위치를 현 위치로 옮기고 돌을 쌓아 현재의 교육관 건물을 만들었다.


오산감리교회


약 60평 규모의 자그마한 이 교회는 돌을 막쌓기하여 만들었는데, 한국전쟁 이후 여러모로 어려웠던 시기, 신도들이 오직 신앙심으로 돌들을 쌓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공지붕에 아치형의 출입구, 끝이 약간 뾰족한 아치형의 창문들, 단순하게 이중 사각형으로 쌓은 교회의 종탑 등 모든 요소가 간결하면서도 조화롭다. 비록 선은 삐뚤빼뚤하고, 아치도 완벽한 첨두아치를 만들고 있지 못하지만 이는 또 그 나름대로 이 교회만의 멋을 만든다.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이 교회를 쌓아서 만들었을 그들의 마음이 느껴져서일까. 교회를 이룬 두터운 벽들에서는 따스한 온기마저 느껴진다.



오산감리교회. 1952년 건축한 석조교회와 1982년 신축한 교회의 종탑, 그리고 석조교회의 아치창호들. 다소 삐뚤삐뚤하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운 돌건축


벽돌건물 뒤편으로는 1982년 신축한 3층 콘크리트 건물의 교회가 보인다. 인상적인 부분은 큰 종이 달려있는 조형성 강한 종탑. 현대적인 감각으로 디자인된 이 종탑의 저 종은 지금도 일요일 아침이면 울릴까? 일요일 아침, 시장이 고요하게 잠들어 있을 시간, 저 종이 울리면 성의 공간은 비로소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산의 원도심은 오래된 여인숙과 다방, 그리고 오래된 석조 교회가 공존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 공존의 중심에는 시장과 장터가 있다. 인구 21만의 도시 오산의 원도심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으며, 오산을 찾는 많은 이들은 오색시장을 찾는다. 2018년까지 오산시는 오매장터 일대에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오산역환승센터의 준공과 함께 오산역 일대의 변화도 진행 중이다. 이와 같은 변화들 속에서 오산시의 원도심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시간의 켜들이 소중하게 다루어지길, 그리하여 2018년 이후에도 오산로를 걸으며 오래된 시간의 켜들을 하나하나 발견해낼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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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경

    • 경기천년 근대문화유산 답사

    • 글, 사진/ 이연경 연세대학교 공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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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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