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행주대첩비 幸州大捷碑

경기도유형문화재 제74호




<행주대첩비>는 현재 2기가 전하는데 하나는 처음 세워진 구비舊碑이고, 다른 하나는 옛 비의 상태가 좋지 못하여 새로 세운 중건비이다. 1593년(선조26) 권율權慄(1537~1599)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602년(선조35)에 건립하였다.



<행주대첩비> 구비 원경, 2016 ©경기문화재연구원


오랜시간 풍화되어 비석의 글씨를 알아볼 수 없게 되자 1845년(헌종11)에 원문을 그대로 옮겨 다시 세웠다.비문에는 권율의 가문과 같이 좋은 가문에서 비롯된 인격과 덕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밖에 없었으며, 참모와 사병들이 그의 공적을 사모하여 비를 세우게 되었다는 건립취지를 밝히고 있다. 이어 권율이 1593년 2월 정예군 2,300명과 행주산성에 주둔하여, 일본군의 공격에 맞서 승리하고, 적군의 깃발과 투구·갑옷·무기 등을 노획한 전과를 기록하였다.


 

<행주대첩비> 구비 전·후면, 2016 ©경기문화재연구원


행주대첩비 초건비는 비개가 없는 원수형 석비로 비문은 최립崔岦이 짓고, 글씨는 한호韓濩가 썼으며, 두전頭篆은 김상용金尙容이 ‘元帥權公幸州大捷碑(원수권공행주대첩비)’라고 소전小篆으로 썼다. 비음碑陰은 사위인 이항복李恒福이 짓고, 김현성金玄成이 썼다. 전체적으로 마멸이 매우 심하여 부분적으로 수 십자 밖에는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다.


 

<행주대첩비> 중건비 전면,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중건비 후면, 2016 ©경기문화재연구원


행주대첩비 중건비는 비대碑臺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지붕 모양의 비수碑首를 얹은 모습으로, 비문은 대체로 초건비의 내용을 그대로 옮겼지만, 뒷면에 누락된 장군의 사적과 행주기공사중창기幸州紀功祠中創記를 추가 하였다. 조인영趙寅永이 글을 짓고 이유원李裕元이 글씨를 썼다. 행주서원 내에 건립되었던 중건비는 1970년대 충장사 앞으로 옮겨졌다가 2011년 행주서원 내 원자리로 이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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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조선시대

      규모/ 2기

      / 구비 높이 178cm, 중건비 높이 238cm

      재질/ 석재(대리석, 화강암)

      주소

      / 초건비-고양시 덕양구 행주로15번길 89

      / 중건비-고양시 덕양구 행주산성로 127-17

      지정일/ 1978.10.10

      소유자/ 국유

      관리자/ 고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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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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