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조종암 朝宗巖

경기도기념물 제28호





<조종암>은 좁은 의미로 숭명배청崇明排淸을 의미하는 석벽 각자刻字와 ‛조종암기실비朝宗巖記實碑’를 말하고, 넓은 의미로는 이 곳과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대통행묘大統行廟 및 그 부속건물까지를 포함하여 지칭한다. 조종암은 1684년(숙종10) 경기도 가평군수 이제두李齊杜와 허격許格, 백해명白海明 등이 멸망한 명나라를 추모하고 청나라를 적대시한다는 존명반청론과 대명의리론에 입각하여 암벽에 숭명배청의 의미를 담은 글자를 새겨 넣은 곳이다.


조종암, 촬영일미상 ©가평군


조종암을 이곳에 새긴 연유는 바로 앞에 흐르는 조종천에 있다. 여러 번 굽이쳐도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가는 조종천처럼 명나라의 유교문화를 수호하려는 충성심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준 명나라의 은혜와 청나라로부터 당한 굴욕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毅宗의 글씨 ‘사무사思無邪(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를 새겼다. 이것은 공자가 『시경詩經』을 한마디로 평가한 말인데, 김상헌金尙憲이 심양瀋陽에 억류되어 있을 때 구해온 것이다.


사무사,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만절필동과 제조번방,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일모도원과 지통재심,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견심정,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조종암에는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준 명나라의 은혜와 청나라로부터 당한 굴욕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명나라 의종毅宗 글씨 ‘사무사思無邪’, 조선 선조의 글씨 ‘萬折必東(만절필동)’, ‘再造藩邦(재조번방)’, 조선 효종의 글씨 ‘日暮途遠至痛在心(일모도원 지통재심)’, 낭선군 이우朗善君李俁의 글씨 ‘朝宗巖(조종암)’이 암벽에 새겨져있고, 1804년(순조4)에는 이러한 유래를 적은 ‘조종암기실비朝宗巖記實碑’가 암벽 위에 세워졌다.



조종암과 조종천,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구의사는 병자호란 때 청에 잡혀갔던 봉림대군鳳林大君(후의 효종)과 합심한 인물들로 1645년(인조23) 대군이 귀국할 때 우리나라로 망명했던 이들을 말하는데, 1831년(순조31)에는 명나라 구의사九義士의 후손이 이곳에 와서 지방유림과 함께 대통행묘大統行廟와 구의행사九義行祠를 건립하여 명나라 태조와 구의사를 제향祭享했다. 이들은 모두 명나라를 숭상하고 청나라를 배척했던 숭명배청 사상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소중화小中華 사상과 대명의리론對明義理論은 조선후기 사상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조종암은 이러한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의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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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조선시대(1684년)

      규모/ 1기 / 지정구역 4,859㎡

      주소/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산176-1

      지정일/ 1975.09.05

      소유자/ 사유

      관리자/ 빙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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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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